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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찰 노릇 하려면) 미군 병력이 파견된 분쟁지역에서 발생한 적대행위로 무고한 민간인이 죽을 수도 있다. 설혹 그 책임이 미군에 있다 해도 법정에 서도록 좌시할 수는 없다."

국제형사재판소(ICC)라는 게 만들어집니다. 국제사회의 공동 상설법정으로 98년에 유엔이 창설 협약을 채택했고 현재 36개국이 비준했습니다. 60개국이 비준하면 자동으로 창설되기 때문에 내년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죠.

문제는 미국입니다. 범죄 여부와 상관없이 무조건 국제 법정에서 미군을 기소하지 못하도록 '특권'을 주지 않으면 유엔분담금을 내지 못하겠다는 움직임이 미국 의회에서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돈줄을 죄어 국제사회를 위협하고 나선 셈이죠.

미 하원 공화당 지도자들이 ICC 기소대상에서 미군을 제외시키는 '미군보호법(American Service Member's Protection Act)'에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동의하지 않을 경우 체납된 유엔분담금 5억8000만달러의 지불 승인을 유보하겠다는 방침을 통보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16일 보도했습니다.

오는 9월 유엔총회에서 연설할 부시 대통령의 '체면'을 위해 약 10억달러에 달하는 밀린 유엔분담금 가운데 2차분인 5억8000만달러 지급이 조속히 집행되기 바라는 행정부를 난처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또 부시 행정부 들어 교토의정서 탈퇴, 미사일방어(MD)체제 강행으로 국제사회의 '왕따'에 직면한 미국이 일방적, 고립주의적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최근 행정부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기도 합니다.

과거 전쟁범죄 단죄 문제와 관련, 2차 세계 대전 직후 뉘른베르그 국제군사재판소와 도쿄 극동군사재판소는 '승자의 재판'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구 유고 및 르완다 전범법정은 한시적이라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전쟁범죄, 집단학살, 반인륜죄를 다루는 상설 ICC의 필요성은 대부분의 국가가 인정하는 부분이죠.

문제는 '세계 경찰'을 자처하며 분쟁지역에서 활동하는 미군이 기소될 가능성이 적지않다는 점입니다. 각국 전범 추적에 수백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거는 미국이 유독 자국 군인에 한해 예외를 인정해달라는 것은 모순되지만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비롯, 미 보수파내 강경한 ICC 반대론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포린 어페어즈 7-8월호에서 "범죄인의 국제법정 회부는 국가의 개별 주권을 해치고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죠.

미국은 지난 해에는 각국에 대표단을 보내 "미군 병력이 파견된 분쟁지역에서 무고한 민간인들의 죽음에 미군의 책임이 있다해도 법정에 서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며 "미국을 예외로 인정, 미군에게 소추 면제권을 줘야 한다"는 주장을 편데 이어 급기야 유엔분담금을 무기로 내세운 거죠.

이미 미 하원은 지난 5월 유엔 인권위 회원국들이 미국을 54년만에 이사국에서 내쫓은데 발끈, 내년에 이사국으로 복귀되지 않으면 2004년 회계연도 유엔분담금 2억4400만달러 지급을 유예하기로 결정, '돈줄'을 무기로 이용한 전력이 있습니다.

ICC를 자국 주권을 침해하는 국제 인민재판소로 치부하는 미국 보수파들에게 '미군보호법' 통과는 인권위 문제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국제사회에서 '헤이그 침략법'으로 비난받는 '미군보호법'은 *ICC를 비준한 비 나토회원국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지원 중단하고 *ICC의 미군에 대한 소추가 면제되지 않을 경우 미군의 유엔 평화유지군 활동 금지시키고 *ICC에 의해 수감된 미군 석방을 위해 미 대통령의 군사력 동원 승인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개인적으로 이 법의 내용에 당혹스럽더군요).

최근 세계 인권단체인 앰네스티는 미국을 '인권의 걸림돌'로 비난하며 대표적 이유로 ICC 반대 움직임을 지적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31일 일단 ICC 협약에 서명했습니다. 유엔이 2000년까지 서명 않을 경우, 향후 ICC 설립 및 운영 논의에서 배제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일단 서명은 해놓았지만 미국 의회가 ICC를 비준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보입니다. 미국은 지난해 우리나라에게도 ICC 반대 입장을 지지하라고 요구했었죠. ICC 창설이 구체화되면 '국제 여론전'은 더욱 재미있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가 메일진으로 발행하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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