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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1일 인천송도해수욕장에서 공연 중인 동춘서커스단 제2공연장을 찼았다. 늦더위의 기온 만큼이나 뜨거웠던 그 날의 환호는 '컴퓨터'라는 가상의 공간에 익숙한 젊은들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볼거리였다.

울산에 공연하는 동춘 제1극장과는 달리 주로 국제부 단원들이 출연한 동춘 제2 극장 무대는 중국팀(남11명, 여11명)의 이국적인 재주에 관객들은 마치 '외국 관광지'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고 할 정도로 다채로운 볼거리가 선보이고 있었다.

객석을 왼쪽으로 끼고 무대 뒷편에 있는 분장실로 들어서자 15세 안팎의 중국 청소년 곡예사들이 서투른 우리 말로 인사를 건넸다(입국 직 후 부터 기자와 앞면이 있던 터라 이방인(?) 곡예사들은 언제나 기자만 보면 반가움의 시선을 보낸다).

즉석해서 한 곡예사를 불렀다. 소녀 곡예사 왕얜사(15 중국 산동)였다.

곱상한 얼굴에 초롱초롱 한 눈빛이 돋보이는 왕얜샤는 주연으로 무대에 나서는 재주만도 4가지(보조출연 2가지)나 되는 수준급 곡예사다.

9살이었던 지난 1995년에 곡예단에 입문한 왕얜샤는 3남매 중 차녀로
중국 산동 출신 인데 차세대 중국 서커스의 주역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곡예사 중 한명이다

리쩐창(58 중국산동녕진잡기단) 단장은 왕얜샤가 총명해서 재주를 배우는 속도가 빠르며 훈련 초기에 엄습하는 "지옥체험(고비)도 무난히 넘긴 경우"라고 극찬했다.

특히, 곡예사들은 관객들이 적을 때, 의욕을 잃는 모습이 역력한데 왕얜사는 예외라고 한다. 늘 밝은 표정으로 최선을 다하고 "공연이 끝난
이 후에도 늘 솔선수범 하는 모범 단원"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왕얜샤와의 일문일답이다

- 한국에 온 소감은
"처음에는 두려웠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을 자주 대하니까 친숙해졌다. 한국이 발달한 나라이니까 배울 점도 많은 것 같다."

- 곡예사가 되어서 제일 보람이 있던 때는?
"관중들이 많이 들어와 박수를 보낼 때이다.

- 가장 어려웠을 때는?
"고공에서 거꾸로 엎드려서 재주를 부리는 것인데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 늘 긴장된다."

- 앞으로 하고 싶은 재주는?
"현재 연습 중인데, 훌라후프와 외발자전거이다."

- 언제 곡예사가 되었는가
"9세때인 1995년 이다. 만 6년이 되었다."

- 의상이 여러가지 인데 무슨 색을 좋아하나?
"깨끗한 이미지의 흰색과 파란색을 좋아한다."

- 좋아하는 음식은?
"주로 과일이고 사과와 수박을 좋아한다고 한다."

- 재산목록 1호는?
"'돈'이다. 가정이 풍부하지 못해서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싶다."

- 나이가 있는데, 고국이 그립지 않은가?
"공연이 끝나고, 개인 연습과 샤워 등을 마치면 새벽 1시 인데 잠자리에 들기 전에 부모님과 언니, 남동생 생각에 눈물을 흘린적도 많다. 공연 중에 부모님 연세의 어른들을 보면서 그리움이 복받칠 때도 많다."

- 앞으로의 계획은?
"어차피 곡예를 시작했으니 세계 최고의 곡예사가 되는 것이다. 한국에 있는 동안 좋은 친구도 만났으면 좋겠다. 한국이 이렇게 발전된 나라 인줄 몰랐다."

덧붙이는 글 | 중국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처럼 우수 곡예사는 '인민배우'라는 특별 예우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국 전역에서는 서커스를 배우려는 지망자가 넘쳐 나는데, 현재 동춘 국제부에 초청된 중국 서커스팀만도 3팀이나 됩니다. 이 중 왕얜샤가 소속된 중국 산동녕진잡기단(단장 리쩐창)은 기존의 서커스단에서 독립한지 만 4년이 된 단체로 단장을 위시해서 총(남11명, 여11명)23명의 단원들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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