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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새 역사교과서에 대한 우리나라의 수정요구가 거부된 이후 요즈음의 한일관계는 그야말로 악화일로를 넘어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는 듯하다.

정치권과 각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연일 일본에 대한 강경한 대응을 촉구하는 성명,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바로 이러한 때에 한국이 좋아 현해탄 건너 온 한 일본여성이 한국남자와 결혼을 한다면서 주위에 축복을 바라는 청첩장을 돌리고 있다.

한때 일본에서 육상선수 생활을 하다 이러저러한 연유들로 고통의 세월을 보낸 후 한국사람이 좋아 한국에 살기로 작정하고 이 땅에 발을 내딛은 마도카. 이제는 한 마라토너로서 국적과 민족을 떠나 땀 흘리며 열심히 달리고 있는 그녀가 7월 22일 역시나 마라토너인 김근남씨와 결혼식을 올린다. 두 사람의 뜨거운 러브 스토리를 따라가 본다.

마도카씨가 김근남씨와 사귄지는 이제 석달째라고 한다. 지난 4월 29일 인천공항 개항기념 하프마라톤에 함께 참가를 하면서 서로에게 남다른 감정을 가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남자로서가 아니라 코치로서 만났어요. 제가 뛰는데 조언도 해주고 도와주는 그런 사람이죠. 하지만 그렇게 같이 훈련도 하고 계속 만나다보니 어느새 다른 감정이 생기게 됐죠" 수줍은 웃음소리를 내며 마도카씨가 그때를 회상했다.
암만 그래도 사귄지 만 석달도 되기 전에 결혼식을 올리는 것은 좀 이른 것이 아닐까. 여기에 대해서는 근남씨가 해명을 한다. "저는 느낌이라는게 중요합니다. 오래 만났고, 늦게 만났고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사람이란게 그런거 같네요. '이 사람이구나'라는 그런 느낌, 그런게 느껴졌어요"

이런 느낌을 가지면서 결혼까지 하게 된 이 커플의 연애는 어떨까. 앞으로 모든 분들은 이들을 국내 최초, 세계 최초의 '국제 마라톤커플'이라고 불러주길 바란다. 이들의 연애는 마도카씨의 말을 빌리자면 "아침에 일어나서 같이 뛰고, 점심 먹고 같이 훈련하고, 저녁에 또 달리는" 바로 달리기 자체라고 한다. "우리는 연애라고 다른거 없어요. 맨날 훈련만 해요". 마도카씨는 너무나 태연히 이렇게 이야기하며 뭔가 핑크빛을 기대했던 기자를 무안하게 만들었다.
"마라톤이 힘든 운동인 만큼 힘들 때 옆에 함께 있는 사람이 그만큼 소중해요. 그런 면에서 근남씨랑 함께 뛸 때는 힘들어도 괜찮고, 그래서 더욱 빨리 가까워지고 남다른 감정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마라톤은 제가 선수가 아니더라도 나중에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어요. 그런 만큼 선수생활이 끝나고서도 근남씨랑 함께 달릴 수 있겠죠"

이 진한 땀내 나는 사랑을 하는 커플은 '한국땅에서의 일본, 일본에서의 한국'이라는 현실 문제에 대한 해법도 솔직담백하고 명쾌했다. 한국에서 한국인의 아내로, 며느리로, 나중에는 어머니로 살 건데 어떤 문제가 없겠냐는 질문에 마도카씨는 "물론 어려운게 많아요. 힘든 부분도 있고, 하지만 제가 한국에 올 때 여기서 살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왔고, 그게 제가 원하는 거니깐 힘들어도 열심히 살아야죠. 또 이런 부분에서 힘들 때 마라톤 쪽에서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라며 담담히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지난 1월 일본인을 구하다 아까운 목숨을 잃은 고 이수현씨를 배우고 싶단다. 그때 마도카씨 역시 마음이 아팠다며 비록 크게 생각하는건 아니지만 마라톤을 열심히 하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한국 사람들에게 그런 인상을 심어 나름대로 한일교류와 친선에 이바지하고 싶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 마도카씨는 한국인으로 귀화하는 것까지 이미 마음의 준비를 마친 상태다.

김근남씨는 더 솔직한 얘기를 했다. 자신이 판단컨대 마도카의 기본 실력은 대단한 수준이고 전성기의 기량을 회복하면 국내 최정상을 달리는 여성 마라토너 못지 않은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면서 꼭 실업팀에서 뛰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전했다. 그러나 "귀화를 2년 뒤에 할 수 있답니다. 하지만 이미 마도카의 나이도 있고 그 부분이 많이 걱정돼요"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두 사람의 결혼에 대해서 양가의 부모님들은 어떠한 반대도 없이 흔쾌히 오히려 좋아하며 승낙했다고 한다. "전혀 문제가 안됐습니다. 본인 의사가 중요한 거죠" 근남씨의 간단한 대답이다.
이렇게 축복 속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두 사람이 신혼여행은 안간단다. 놀란 기자가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전지훈련'으로 대체했다고 한다. 정말 하늘이 아닌 '마라톤이 맺어준 커플'이라 안할 수 없다.
"9월 춘천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그 다음 동아마라톤도 준비하고 있고요. 그래서 신혼여행 안가요. 한국에 뛸 수 있는 좋은 곳이 많으니깐 찾아서 갈거예요"(마도카)
"아마 태백으로 갈 겁니다. 8월에 태백에서 실업육상대회가 있거든요. 그래서 시합 참석차 신혼여행을 대신한 전지훈련차 1주일간 갈 예정입니다"(김근남)

이 세상 어떠한 이색커플에 뒤지지 않는 예비부부다. 하지만 그들의 색다름에는 끈끈함이 묻어 있다. 땀 냄새가 묻어있고, 솔직함이 배어있다. 두 사람의 앞날에 행복만이 가득하길 모든 분들과 함께 축복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국내 최초의 마라톤(달리기)전문지인 "Runners Korea"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요즘 한국사회에 불고 있는 마라톤과 관련된 더 많은 정보들과 끈끈한 땀내음 가득한 소식들을 홈페이지에 들어오시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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