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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세무조사를 둘러싸고 여야간에 끝없는 설전이 계속되고 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세청'을 방문하는 등 강하게 압박해가고 있고, 민주당도 세무조사의 타당성을 알리는 '홍보'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이런 상황속에서 정작 본질 문제인 '언론개혁'에 관한 화두는 어느 새 깊은 늪 속으로 사라진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정가 안팎에서 제기돼 왔었다. 지난 19일엔, 새롭게 언론문제를 재조명해보는 두 개의 의미 있는 논의의 장이 펼쳐져 관심을 모았다.

<화해와 전진>이 주최한 '정기간행물등록 등에 관한 법률개정에 대하여'라는 포럼과 한반도 재단의 '언론개혁과 한국의 미래'포럼이 그것. 현장에서 나온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한다.

이 달 초 수련회를 갖고 새로운 각오를 다진 <화해와 전진> 4차 포럼엔 여야 국회의원과 언론학자, 시민단체 대표, 변호사 등이 참여해 '정간법 개정'을 놓고 열띤 논의의 자리를 가졌다. 이와 함께 역시 포럼 소속 의원이기도 한 민주당 김근태 최고위원의 한반도 재단은 '언론의 공정성, 투명성, 건전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방안 모색'이라는 부제로 2차 포럼을 열고, 향후 언론개혁이 어떻게 진행돼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지혜를 모았다.

'침묵의 카르텔'

19일, 오전 9시 30분. 프레스센타 19층 기자회견장엔 여야를 대표하는 민주당 심재권 의원과 한나라당 심규철 의원, 성유보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약칭 민언련) 이사장과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약칭 민변) 안상운 변호사가 나와 향후 있을 '정기간행물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언론개혁시민연대와 민변이 국회에 제출한 '정기간행물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신문사의 소유지분 제한과 편집권 독립 보장 등을 담고 있으며, 현재 국회에 계류 중에 있다.

포럼엔 민주당 정대철 최고위원, 한나라당 이부영 부총재 김덕룡 의원이 참석했으며 함세웅 신부, 임재경 전 한겨레신문 편집인 등 포럼 관계자 등도 자리를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혹독했던 시절,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했던 신문이 최근 들어선 상대적으로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는 반면 자본의 속박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며 "특히 재벌은 충분한 사회적 권력을 소유하고 있는 만큼 언론 권력까지 점유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교수는 신문사의 영향력 크기에 따라 지분비율을 달리할 것을 제안하며 특수관계자의 범위를 더욱 엄격히 하고 주식 상장이나 정간법 개정을 통해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편집권 독립 문제와 관련해서도 그는 ▲노사 동수의 편집위원회 구성 ▲편집규약 및 윤리강령 제정 등을 제안한 뒤 ABC 제도 정착, 공동판매제 등도 공감대 형성과 논의의 장을 거쳐 모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첫 토론자로 나선 심재권 의원은 세무조사가 조세행정의 일환이자 언론개혁의 중요한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참뜻이 있다고 밝힌 뒤 "기사 정정 요구 가능 기간을 현 1개월에서 3개월로 연장해야 하는 등 독자의 권익을 고려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심 의원은 또 사견임을 전제로 "소유지분 제한이 옳은 방향이긴 하지만 위헌의 소지가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며 "정기 국회에서 정간법 개정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라면 이 조항은 유보될 수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처럼 한 신문의 시장 점유율을 30%로 제안하거나, 수입 중 광고수익 비율이 25%를 넘지 않는 신문에 대해 법적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도 장기적으론 필요할 것이라는 게 심 의원의 제안.

사회를 맡았던 이영자 교수의 "민주당은 정말 언론개혁 의지가 있는가? 당 내부적으로 도출된 내부 방침은 존재하는가? 정말 정치적 의도는 없었는가?"라는 질문엔 "언론개혁의지는 폭넓게 있어왔다. 당 차원에서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문광위 소속 의원들 사이에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대통령이 남은 임기동안 언론개혁을 이뤄내야 하겠다는 욕심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결코 정략적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고 심 의원은 답했다.

야당측 토론자로 나선 심규철 의원은 "이번 언론 개혁 문제는 '언론 자유 보장'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해야 한다"며 "국세청이 독자적으로 조사를 못한다는 점에서 그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의구심을 나타냈다.

이어 그는 "사주의 편집권 참여는 별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기자들의 몫인 '내부자율'에 맡겨야 한다. 소유지분과 영향력 있는 신문의 지분을 제한하자는 주장도 소유권 소급 입법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하지만 "주인 없는 신문사들이 앞으로 과연 경영에서 성공할 수 있겠는가? 이 신문사들이 친정부적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반면 사주가 있는 신문사들은 반정부적이고 사주가 없는 신문사들은 친정부적"이라는 발언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자 "독자적인 독자층을 확보하는 등 한겨례 신문도 나름대로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한다. 다양함을 존중하자는 의도에서 한 말이다"며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성유보 민언련 이사장은 "현재 몇몇 언론들이 자신들의 저항을 마치 전체 사회의 목소리인 듯 주장하는 것은 민주주의적 다원화 보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을 몰라내려는 전체주의적 파시즘에 지나지 않는다"며 "우리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것을 반대하면서 언론자유를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봉건적 발상이다. 독재시대의 시스템을 뜯어고치고 인적 청산에 나서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개정안을 제출한 민변의 안상운 변호사는 김교수의 주제발표에 대해 "신문 판매 시장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ABC제도나 공동 판매제와 같은 강제적인 법적 제도보다는 부가세 면제를 통해 무가지 배포 및 불공정 관행을 없앨 수 있다"고 반론을 폈다.

이어 그는 "현재의 '정기 간행물 등록법'이라는 명칭보다는 독자의 권리를 중시한다는 측면에서 '정기 간행물의 기능 보장과 독자 보호에 관한 법'으로 명칭을 바꿔야 한다"고 제안한 뒤 "시민단체도 단순히 특정신문에 반대하는 차원을 넘어 본질에 대한 진지한 검토를 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날 토론회엔 당초 예정됐던 신문편집인협회 관계자가 나오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화해와 전진>포럼의 한 관계자는 "정간법 개정에 관해 내부적 논의를 거쳐 국회 통과를 모색할 예정이다"며 "필요하다면 자유투표제까지도 염두해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정했던 권-언관계

오전에 열린 <화해와 전진> 포럼에 이어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에선 한반도재단이 주최한 '언론개혁과 한국의 미래'라는 포럼이 열렸다. 한반도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근태 최고위원은 인사말을 통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언론개혁 문제는 국민적 통합으로 가는 진통의 시기에 생기는 것이다. 이 뜨거운 쟁점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며 "향후 우리 미래가 희망적일 것인지, 아니면 갈등과 분쟁으로 갈 것인지가 여기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편집권 독립과 투명성·공정성 담보가 오늘 직면한 언론의 문제다"며 "정쟁이 아닌 진정한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는 토론의 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포럼 개최의 의의를 설명했다.

다음은 이 포럼에 참석했던 토론자들의 주요 발언 요지다.

방정배 성균관 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작금의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한 쟁투사항은 기존의 부도덕하고 부정(不正,不貞)한 권-언관계가 건전하고 정상적인 권-언 관계로의 변동에 수반되는 몸부림이자 고통이다. 언론권력은 임기가 없고, 견제되거나 감시 받지 않는 동시에 투표로 선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치권력과 차이가 있다.

그러나, 강력한 언론은 강력한 환경 감시자를 의미하기에 강력한 힘을 가진 언론을 나무랄 필요는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부도덕한 집단에 의해 장악되거나, 부정하고 비리가 많은 언론이 권력의 횡포와 부패를 비판할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신문은 재력경쟁이지 논조경쟁이 아니다. 중소신문과 큰 신분이 경쟁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신문제값받기 운동, 유통구조 개선 등을 통해 언론개혁을 이뤄나가야 한다.

김경근 언론대학원장

언론개혁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말잔치로 오도하지 말고 정간법 등을 서둘러 심의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언론개혁은 정치적 타협의 대상이 돼선 안되며 신문구조가 안고 있는 자체모순을 올바로 인식하고 해결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신문 값을 대폭 인상해야 한다 ▲경제 부수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발행부수가 많으면 오히려 권위지나 유력지가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소유·경영·편집구조의 한계는 시대적 추세에 맞게 설정되어야 한다 ▲발행인은 신문의 이념을 명확히 천명하고 독자가 자신과 맞는 신문을 구독하는 풍토가 정착되어야 한다 ▲편집권 독립 개념이 명확하게 설정되어야 한다 ▲언론사 노사간의 신뢰가 확립되어야 한다 등을 제안하고 싶다.

이미경 의원

현재 한국언론이 누리고 있는 자유는 다분히 87년 시민항쟁의 성과에 힘입어 타율적으로 주어진 것이기에 책임의식이 결여되어 자칫 방종으로 흐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찌 보면 YS의 하나회 숙청과 DJ의 권언유착 근절은 두 분이 민주화 투쟁을 이끌어 왔던 분으로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성숙을 위해 남긴 역사적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최장섭 서강대 대학원 원장

편집자의 윤리성, 사주의 올바른 철학이 요구된다. 전문성을 위해 올바른 미디어 교육도 필수적이다. 또한 언론의 전문성을 위해 ABC제도의 현실화나 실질적인 옴버즈맨 제도 도입 등도 도움이 될 것이다. 금번 일련의 사태가 '언론의 재갈물림'이라는 의혹 제기를 불식시키면서 정부와 사주에 의한 양대 파워 구도의 갈등과정에서 한 단계 질적으로 성장한 언론의 수혜자가 궁극적으로는 일반 국민이었으면 한다.

김주언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

언론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언론발전위원회의 설치와 정간법 등의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 정간법 개정은 현업 언론인들이 진정한 신문개혁을 위해 활동할 수 있는 법적인 장치를 만들어주는 데 의의가 있으며 신문개혁의 실질적인 몫은 현업 언론인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한반도 재단> 포럼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언론개혁 문제가 진흙탕 속에서 본질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논의의 장은 의의가 크다"며 "야당측 의원이 참석하지 않아 아쉬운 점은 남지만 관련 학계 인사들의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됐다. 여야 모두 제자리로 돌아와 '언론개혁'이라는 본질적 문제를 놓고 해결 방안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기대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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