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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통해 경찰 개혁의 목소리를 높이다 파면당한 부산 금정서 차재복 경사 사건을 정점으로 경찰 조직에 사이버 감찰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6월 말 부산에서 근무하는 한 형사는 경찰청 홈페이지에 익명으로 차재복 경사 사건과 관련해 경찰 수뇌부와 감찰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전화벨이 울렸다. 부산 감찰반이었다.

"글을 올린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전화가 왔습니다. 분위기가 안 좋으니까 차재복에 관한 글 올리는 것을 자제하라고요. 소름이 쫙 끼치더라고요. 제가 익명을 쓰긴 했지만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필명이었습니다. 감찰은 그 필명이 저인지 알고 있었던 거예요. 전화를 끊고 바로 제 글을 모두 삭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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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은 비단 차 경사가 근무했던 부산에서만이 아니다. 서울·경기·충북·창원 등 전국적인 현상이다. 경기도에서 근무하는 한 형사는 지난 7월 11일 경찰청 홈페이지에 역시 익명으로 지휘부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가 경기도 감찰부장에게 전화를 받았다.

"그는 젊잖게 말했어요. '왜 그런 글을 올리느냐, 폴네티앙(인터넷 경찰 동호회)이라고 아느냐, 거기 회원이냐'. 딱 드는 느낌이 아, 무슨 불순한 조직으로 바라보는구나였습니다."

전화만이 아니라 직접 불려가 조사를 받은 경우도 있다. 서울의 한 형사는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가 감찰에 세 번 불려갔다.

"감찰에서 이랬습니다. 왜 자꾸 그런 글을 올리느냐고요. 왜 국가의 틀에서 벗어나려고 하느냐, 자중하라. 경찰생활 오래 하고 싶으면 튀지 않는게 상책이라면서 제2의 차재복이 되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있으라고 했습니다."


"제2의 차재복이 되기 싫으면 조용히 있어라"

지난 7월 12일 인터넷 경찰 동호회인 '폴 네티앙'이 폐쇄됐다. 폴네티앙은 2000년 7월 이동환 경감이 '깨끗하고 당당한 경찰'을 모토로 전국 경찰관을 대상으로 개설한 비공개 인터넷 동호회로서 1년만에 1100여명이 가입하는 등 비간부 경찰들의 큰 호응을 받아왔다.

폴네티앙이 폐쇄된 12일은 차재복 경사의 파면을 두고 경찰 내부가 한창 시끌시끌할 때였다. 시샵을 맡고 있던 이 경감은 왜 폐쇄됐냐는 질문에 "강제로 폐쇄된 것이 아니라 자진 폐쇄한 것"이라고만 답했다.

하지만 기자는 취재도중 '경찰관의 아내'라고 밝힌 e-메일을 한통 받았다. 그는 폴네티앙이 폐쇄된 과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경찰은 인터넷으로 겨우 트인 경찰관의 언로(言路)를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때부터 동호회내에서 감찰들의 (폴네티앙) 가입이 줄을 이었습니다. 우리도 같은 경찰관이니까 좋은 경찰 같이 해 보자고…. 그리고 그들이 동호회내의 게시판에서 지극히 사적인 의견들을 프린터해서 보고용으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들이 줄줄이 감찰 조사를 받으러 가게 된 것입니다.

시샵인 이동환 경감의 입장에서는 폴네띠앙 내부에서 나오는 감찰과 비감찰의 상호 비난과 줄줄이 이어지는 감찰조사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감찰의 내부 스파이 행동을 감지한 후 감찰들을 (동호회에서) 강퇴(강제 탈퇴)시켰습니다. 그러고 난 후 회원의 가입과 탈퇴를 결정할 수 있는 부시샵과 시샵에게 (경찰회원들로부터) 전화가 오기 시작합니다. '참지 못하고 (감찰에게 자신의 ID와 비밀번호를) 불었습니다. 저를 강퇴 시켜주십사….' 감찰들의 작전이이지요."

취재결과 차재복 경사 사건을 즈음하여 감찰들의 대거 폴네티앙 가입도, 그 뒤 줄 잇는 감찰조사도, 강제 탈퇴 후 감찰이 강요를 통해 다른 사람의 ID와 비밀번호를 얻어내 폴네티앙을 감시했던 것도 모두 사실이었다.

결국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깨끗하고 당당한 경찰'을 표방하며 비간부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었던 인터넷 경찰 동호회 폴네티앙은 '자진 아닌 자진 폐쇄'되기에 이른다.

"깨끗하고 당당한 경찰. 정말 구미 당기는 이야기가 아닌가요?" ⓒ 오마이뉴스 이종호


경찰관 아내의 e-메일

인터넷에 대한 감찰의 감시는 비단 폴네티앙 뿐만이 아니다. 지난 6월 초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순경이 PC방에서 '감찰에 근무하는 한 경찰이 금품수수를 한 혐의가 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폭로 글을 올렸다. 하지만 결과는 금품수수에 대한 조사가 아니었다. IP추적을 통한 '발신지' 추적과 PC방 탐문을 통한 '발신자' 추적이었다. 결국 글을 올린 젊은 말단 순경은 파면되기에 이른다. (그후 그 순경은 행자부에 소청을 거쳐 다시 복직된다.)

또한 지난 4월 서울의 한 순경은 경찰과 민간인이 함께 가입할 수 있는 다음(www.daum.net)의 인터넷 까페에 조직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가 동료 경찰의 아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글을 올렸냐고 묻더라고요. 그러면서 얼른 지우라고. 서울청에 있는 경찰에게서 들었는데 그곳에 오르는 글까지 감찰에서 본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가 감찰에 불려갔다는 다른 형사는 기자가 전화를 하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감찰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고 이야기합니까."

기자가 아무리 설득해도 그는 끝내 믿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인터넷에 조직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가 감찰에 불려갔다온 그는 이렇게 주위에 보이지 않는 감찰을 의식했다.

취재 도중 기자가 만난 모든 경찰은 "기사화 하는 것은 좋지만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게 해달라"고 신신 당부했다. 그들은 "감찰이라는 조직은 일개 경찰 한명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든 조직"이라고 말했다.


마음이 변한 경찰 수뇌부

7월 18일 오전 9시25분, 기자는 경찰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주민등록번호를 기입한 후 '차돌이(차재복 경사의 필명)는 복직되어야한다'는 제목으로 1539, 1540, 1541번 세 개의 글을 올려봤다. 그런 글을 올렸던 이유는 '경찰관의 아내'가 이메일을 통해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한번 테스트 해 보시지요. 경찰청 홈페이지에 '차재복 경사의 징계 재고해 보아야 한다'라는 제호로…. 몇 분 만에 삭제되나 한번 해 보세요."

딱 6분. 그 글이 흔적도 없이 삭제되는데는 6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현재 경찰청, 서울청, 부산청 등의 자유게시판은 아주 조용하다. 표면적으로는 '아무 일'도 없지만 그 속에는 '많은 일'이 있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불고 있는 경찰 조직 내부의 분위기와 사이버 감찰에 대해 "경찰 최고위층의 뜻"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무영 경찰청장의 경찰개혁 조치 중 가장 높이 평가받았던 것이 인터넷을 통한 조직의 언로를 텄던 것"이라며 "그래서 활력을 찾았던 조직에 사이버 감찰 바람이 부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그의 생각에 변화가 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경찰 내부의 감찰 분위기는 떠오르고 있는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총연합(전공련) 문제와 관련이 있다"면서 "전공련이 공무원 노조를 주장하며 정부와 대립하는 와중에 비간부 경찰들이 인터넷 상에서 경찰직장협의회를 거론하기 시작하자 고위층에서 '앗 뜨거'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관의 아내'는 최근 경찰 내부 분위기에 대해 e-메일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요즘의 경찰에게 옛 순사 기질을 발휘해 알아서 기고 알아서 엎어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누를 수록 그들의 뜻을 꺾을 수는 없습니다.

깨끗하고 당당한 경찰. 정말 구미 당기는 이야기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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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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