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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결속 저해와 품위를 손상하고... 직장협의회의 설립 및 가입을 선동 선전하여 법령을 무력화시키는 등 지시 명령을 위반하고...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경찰관 네티즌 윤리강령 위반 및 품위를 손상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조사를 거부하고... 경찰조직의 개혁·발전에 역행하고, 조직의 위신실추 및 결속을 저해하였으며 감찰·지휘권을 훼손함으로써 중점정화대상의 비위혐의가 있음>

<위와 같은 혐의자의 비위는 국가공무원법 제56조 성실의 의무, 제57조 복종의 의무, 제63조 품위유지의 의무를 위반하여, 같은법 제78조 제1항 제1,2,3,호에 해당되므로 징계의결 요구>


인터넷을 통해 일선 경찰의 애로사항과 발전 의견을 활발히 개진하다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징계를 받아 파면당한 한 경찰관의 항변이 사회의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직 부산 금정경찰서 지령실 차재복(37) 경사. 어떤 이들은 그를 '너무 앞서나간 개혁적 인물'로 파악해 요즘 한창 인기를 모으고 있는 드라마 <여인천하>의 조광조에 빗대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개혁적 인물'이란 칭송을 터무니없는 것으로 여기며 "나는 일선 경찰일 뿐"이라고 못박았다.

"사람들은 나를 완전히 앞서나가는 개혁적인 인물로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그냥 경찰을 사랑하는 일선 경찰관일 뿐입니다. 만일 내가 개혁적인 인물이라면 우리 (경찰)조직은 진짜 퇴보된 조직일 것입니다"

차 경사의 말은 '개혁적인 인물'이고, 똑똑한 사람이기 때문에 탄압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일개 '말단 경찰'일 뿐인 자신의 목소리조차 너그럽게 들어주지 못할 만큼 경찰조직이 경직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조직결속 저해, 품위손상, 직장협의회 선동, 조사 방해... 파면

차재복 경사는 본명보다 '차돌이'라는 필명으로 유명하다. 그는 2년 전부터 인터넷을 통해 경찰 발전을 위한 활발한 의견 개진을 해오고 있었다.

작년 7월부터는 경찰관들의 인터넷 동호회 사이트 <폴네티앙>을 운영하기도 하며, 개인 홈페이지 등을 통해서도 '수사권의 독립', '경찰관 직장협의회' 등에 관한 많은 글을 썼다. 한때 <폴네티앙>의 회원수는 1400여명에 이를 정도로 경찰 내부에서 많은 호응을 얻었다.

차 경사는 또 부당한 징계를 받았다고 생각되는 동료 경찰관들을 위해 모금을 하는 등의 오프라인에서도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 나갔다. 차 경사가 이번에 받은 '파면'조치 역시 <궁예가 된 서장님>이라는 글로 감봉 처분을 받은 충주경찰서 안모 순경을 돕기 위해 <대통령 비서실>을 비롯한 <경찰청>, 언론사에 글을 올린 것이 발단이 됐다.

그러나 경찰 조직에서는 안 순경을 돕기 위해 올린 글 외에도 그 동안 차 경사가 인터넷에 올린 글 모두를 문제삼고 나왔다. 이미 오래 전부터 차 경사와 <폴네티앙>을 주목해왔던 것이다.

"안 순경에 관한 민원은 충북경찰청으로부터 '조치하겠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곧 경찰 내부에서 감찰 조사가 나왔다. 민원인으로서 답을 이미 받았는데, 경찰이라는 신분 때문에 감찰 조사가 나왔던 것입니다. 당시 감찰반에서는 그 동안 내가 썼던 글 모두를 차곡차곡 모아놓고 있었습니다."

차 경사에 따르면, 당시 감찰조사는 단순한 '안 순경에 대한 민원 조사'가 아니라 인터넷 검열을 통한 '경찰관 개인 사생활의 침해'이자 '통제'였다. 차 경사는 '이런 조사는 받을 수 없다'며 조사 받기를 거부했다. 감찰조사를 거부하던 차 경사에게 '조사방해'라는 징계사유가 따라붙었고 결국 지난 10일 파면됐다.

나머지 조직결속 저해, 품위 손상, 직장협의회 선동 등의 징계 사유는 모두 차 경사가 써왔던 그 동안의 글들을 분석해서 나온 것이다.

부산경찰청의 징계이유서를 보면 조직결속 저해 등의 혐의가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혐의자의 개인적 시각으로 타 경찰서장의 부하직원에 대한 적법 처분을 "썩은 칼"로 비하하여 조직 결속 저해와 품위를 손상하고... (안모 순경 민원 신청)

... 같은해 6. 7. 17:10경 경찰인터넷 동우회 홈페이지인 <폴네띠앙>에 "전국 공무원 결의대회를 주목합시다" 라는 제목으로, 같은날 발표된 전국 공무원직장협의회총연합 정책소장의 "전국 공무원 결의대회에 적극 동참합시다" 라는 담화문과, 같은 연합위원장 차봉천의 '90만 공무원 동지들에게'라는 담화문을 혐의자가 직접 퍼 옮겨 게재하여,

불특정 다수의 경찰관 네티즌들에게 법률상 가입이 불가능한 직장협의회의 설립 및 가입을 선동하거나 관심을 상기시키는 행위를 함으로써 상부의 지시명령을 위반하고... (직장협의회 선동)

... "권총으로 대가리에다가 구멍을", "간신배질을 하는 놈"등의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경찰관 네티즌 윤리강령 위반 및 품위를 손상하고... (품위손상)


그러나 이런 검찰관의 조사 결과에 대해 차 경사는 명백한 "사생활 침해"이자 "언로(言路) 탄압"이라고 반박했다.

"<폴네티앙> 가입자들 중에는 경찰이 아닌 경찰 가족 등 민간인도 있습니다. 그러나 경찰측에서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게시판을 검열하고, 급기야 폐쇄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또 <폴네티앙>과 관련해 활동을 한 사람들을 조사하고 주의나 경고를 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직장협의회? 노조하자는 게 아니다

차 경사는 또 검찰관이 징계사유로 지적한 <경찰관 직장협의회>와 관련해 "일선 경찰관들의 직무 수행을 위한 협의회를 생각한 것"이라며 "결코 노조를 하자는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경찰 윗선에서는 직장협의회를 마치 강성 노조처럼 바라보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일선 경찰들이 생각하는 직장협의회는 말 그대로 직무수행을 위한 협의회를 구성해 보자는 것입니다. 일선 경찰들의 애로사항을 건의하고 풀 수 있는 조직을 말하는 것입니다. <폴네티앙>에서 협의회에 관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90% 이상이 찬성했습니다."

차 경사의 주장은 경찰관 직장협의회를 통해 '경찰 수사권의 독립'이나 '효율적인 수사를 위한 현실성 있는 법안 개정' 등 그 동안 일선 경찰들이 느껴왔던 애로사항을 풀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경찰 조직은 현재 매우 위축되어 있습니다. 검찰의 눈치를 봐야 하고, 현장에서는 분명 의심이 가는 사람도 '월권행위'가 될까봐 불심검문이나 임의동행조차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제대로 된 수사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경찰의 '월권'은 분명 통제되어야겠지만, 그렇게 위축된 경찰은 결국 복지부동하게 되고,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현재 차 경사는 행자부를 상대로 소청 심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차 경사는 "행자부에는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차 경사는 행자부의 소청심사가 끝나면, 사법부의 행정소송까지 준비해 "끝까지 해볼 참"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차 경사의 소식을 들은 전국의 일선 경찰관들은 차 경사를 돕기 위한 계좌를 개설해 경제적인 측면에서 지원하고 있다. 통장을 개설한지 3일만에 차 경사의 통장에는 400만원 가까운 돈이 모였다.

"도와준다고는 하지만, 모두들 쉬쉬하고 있습니다. 모금 활동 자체도 징계사유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산경찰청에 제출한 <소명서>를 통해 "동료의 아픔을 같이 한 것이 죄가 되었습니다"고 밝힌 차 경사는 이번 일로 인해 경찰 내부에서도 곧은 소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이번 일로 인해 경찰조직 내부에서, 경찰 발전을 위해 노력하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인터넷에서 활동하던 '경찰의 대변자들'은 없어졌다고 봐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 내부의 누가 인터넷으로 쓴소리를 하겠습니까..."

덧붙이는 글 | 차재복 경사가 그 동안 쓴 글들은 차 경사 개인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차재복 경사 홈페이지 http://chadorii.com.n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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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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