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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부는 태권도 바람'으로 화제가 되었던, 한국인 김갑식(55. 이태원체육관) 관장과 그의 프랑스인 제자 '프레드릭 후베(41)'가 지난달 말에 극적인 재회를 했다.

지난 6월 27일부터 7월 2일까지 열렸던 "2001코리아오픈춘천국제대회"에서 나란히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이들 스승과 제자의 만남은 단순한 사적인 재회가 아닌 공식 석상에서의 당당한 등장이라, 이를 지켜본 많은 태권도인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2001코리아오픈춘천국제태권도대회" 조직위원회는 이미 인기 국제경기로 자리매김한 자신들의 이벤트의 레벨업을 위해서 경기 운영의 달인인 김갑식 관장을 대회의 경기담당 총책으로 위촉한 것이다.

비록 국제경기라 할지라도 국내에서 개최되는 대회는 '대한태권도협회' 관련자가 파견되었던 전례를 감안하면 현직에서 물러난 그의 중용은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제자 '프레드릭'은 '세계태권도연맹' 공인심판원 자격으로 대회 겨루기부문 심판원으로 배정된 프랑스태권도협회 사절로 입국한 것이다.

'프랑스에 부는 태권도 바람(1,2편)' 기사가 나간 후, 3편의 취재를 위해 이들의 재회를 손꼽아 기다리던 기자에게 지난 6월 25일 뜻 밖의 긴급제보가 들어 왔다.

"프레드릭이 한국에 입국해서 이미 이태원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는 희소식이었다. 헐레벌떡 달려가 그를 보자마자 포옹을 했다. '이태원체육관' 관장실에서 즉석 인터뷰를 청했다.

프랑스 제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프레드릭'이었기에 '영어 & 불어'를 고려할 필요도 없이 한국말로 그를 인터뷰하였다.

"우리 김갑식 관장님 멋쟁이입니다"로 시작된 그의 첫 인사는 역시, "우리 김갑식 관장님 멋쟁이"라는 말로 끝날 만큼,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그가 운영하는 프랑스 '까를로스 스포츠센타'는 나날이 번창하여 현재, 태권도 수련생만 7백명이 넘는다고 한다. 지금도 자신의 제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느냐?"는 질문에 "프랑스 제자들의 집에는 스스로의 이름을 한글로 적은 액자가 기본으로 걸려 있다"고 자랑을 늘어 놓으며 "한국의 태권도"와 "한국인 스승 김갑식 관장"에 대한 초심을 나눴다.

'프레드릭 후베'는 30대 초반 이었던 지난 1982년, 흰색 태권도복의 매혹에 끌려 뒤늦게 태권도를 시작한 전형적인 외국인의 경우다. 노란띠(7급)를 취득한 후, 그는 막연히 종주국을 동경하다가 이듬해에 한국을 방문했다.

방한 즉시 국기원을 방문하고, 종주국 태권도 1번지를 찾은 순간부터 자신의 운명이 뒤바뀌는 것을 스스로 직감한 그는 국기원의 머릿돌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후, 곧바로 국기원 사무처를 찾았다. "선생님, 이 곳에서 태권도를 배우게 해주십시오." 프레드릭은 국기원 자체에서도 태권도를 지도하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 때, 국기원에서 소개해준 체육관이 이태원체육관이었다. 프레드릭과 스승 김갑식 관장과의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첫 만남에서 김관장은 벽에 걸린 관훈(예절과 태도, 믿음과 의리, 참고 견딤)을 번역해주며, 태권도 지도에 앞서 올바른 정신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들의 첫 만남은 길지 못했다. 두 달간의 엄격한 합숙수련을 마친 프레드릭은 아쉬운 작별을 하며 본국 프랑스로 떠난 것이다.

그러나, 스승과 제자의 만남은 그때부터였다. 2년 후인, 1985년 프레드릭은 30여명의 일행을 대동하고 스승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2년 전에 했던 것처럼 30여명의 일행 모두가 체육관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두 달간의 합숙운동을 했다. 훈련이 끝날 무렵, 프레드릭은 국기원 유단자 심사에서 초단을 획득했다.

프레드릭 개인으로서는 가장 인상 깊은 한국에서의 기쁨이었다. 두 달 후, 합숙 훈련이 끝나던 날은 체육관에서 김관장 내외가 준비한 즉석 "불고기 바베큐잔치"가 벌어지는 가운데 송별식이 거행되었는데, 이는 2년 후, 다시 볼 전야제 성격이 강했다. 왜냐하면, 격년 그 날이 되면 어김 없이 이태원체육관은 프랑스판이 되었기 때문이었다.<프랑스에 부는 태권도 바람(제1편) 요약>


인터뷰 내내, 영락 없는 한국인 같은 그의 면면에 감동할 무렵, 김관장의 부인인 양인옥(53) 여사가 들어왔다. "딸 낳았데요, 부인 '세실리'가...셋째 딸을.." 남편인 김갑식관장보다도 '프레드릭'을 더 잘 챙기는 양인옥 씨는 셋째 딸 때문에 함께 내한 하지 못한 그들의 가족들이 보고 싶었는지... 프랑스에 있는 프레드릭의 가족에 대해 자랑해주기에 바빴다.

프레드릭은 올 2월 2일에 셋째딸 '티리'를 얻었다고 한다. "큰아들 디미틀리(13), 둘째아들 롤리(5)에 이어 한 식구가 더 늘어났다"는 것이다.

새생명 탄생을 축하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시계를 보니, 저녁 8시를 가리켰다. 서둘러 기념촬영을 시작했는데, 체육관에는 동안 수련을 했던, 예멘 대사 가족 등이 본국으로 떠났다고 하는데도, 러시아대사관 자녀 등... 외국인 수련생들이 많이 있었다. 언필칭, 국제태권도대회의 대기실에 있는 듯한 착각이 될 정도였다.

기자는 뒷 날인 6월 26일 오전 8시에 스승 김갑식 관장과 제자 프레드릭이 춘천에 함께 간다는 말을 듣고, 이태원에서 함께 출발하기로 약속한 후, 체육관을 떠났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김관장은 자신이 '2001코리아오픈춘천국제대권도대회' 스탭이라는 사실을 기자에게 숨긴 채, 내일 프레드릭을 바래다주기 위해서 춘천에 간다는 언질만 주었다.>

덧붙이는 글 |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2001코리아오픈춘천국제대회'에서 보여 준 스승과 제자의 훈훈한 휴먼스토리를 소개 하려고 합니다. 처음 '프랑스에 부는 태권도 바람(1),(2)편을 기사화 했을때, 기자는 무척 걱정을 했습니다. "역효과가 나면 어떻게 하나..괜히 점잖은 분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막상 기사가 보도된 후, 태권도의 각 분야에서 지지가 넘쳐 났습니다. 그 와중에 뜻 밖에 춘천국제대회에서 마주친 '스승과 제자'의 한마당은 가슴뭉클한 휴먼드라마 그 자체였습니다. 4편에서 그 미담을 자세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아울러, 본 기사를 장기간 올려주신 <태권넷 방송>에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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