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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이야기는 좀 지저분하다.

비가 오는 날이다. 기분이 우울하다. 사실 기분이 우울한 이유는 꼭 비가 오는 것에 있지만은 않다. 새벽 4시에 신문을 돌리는 오토바이의 굉음소리에 깬 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라는 속담을 따르자면 벌떡 일어나서 그 신문이라도 챙겨 읽었으련만 천장만 쳐다보고 있었다.

- 천장을 쳐다보면 대학교 1학년 때가 생각난다. 당구 30. 좀 열심히 칠걸. 이런 걸 사자성어로 표현하자면 '후회막심'.

그런데 꼭 일어날 때가 되면 졸리더라. 7시를 넘기고 일어나 헐레벌떡 바쁜 준비를 했다. 버스정류장에서 거금 1만원을 투자해 버스카드를 충전하고 우산을 펼치기가 귀찮아 한 두 방울의 비를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42번 좌석버스 도착. 날쌘 몸을 움직여 첫 번째로 탑승. 한숨 자볼까. 그러나 이수교차로를 지나 반포를 지나도 잠이 오지 않는 거다. 결국 이태원 넘어 남산 3호터널에 들어와서야 겨우 잠을 청했다. 명동을 지나 광화문에서 내리니, 졸릴 수밖에. 잠이 부족한 아침, 비까지 내려 더욱 울적하다.

울적한 날은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좀 오랫동안 쳐다본다. 비가 와서 부시시해진 머리결도 정리할 겸, 다짐을 하는 거다. "우울해하지 말고 기운찬 하루를 보내자." 그렇게 마음속으로 최면을 걸고 있는데, 화장실에서 소리가 난다.

- 남자화장실에서도 요즘 비슷한 현상일 거야.

회사의 여자화장실은 칸이 세 칸이다. 한 칸은 비었고 두 칸에 사람이 들어가 있었다. 요즘 날씨가 덥다보니 사람들이 찬 음식을 많이 먹었나보다. 화장실은 그들의 울림소리로 요동친다. "꾸룩꾸룩.." "우지직.." 첫번째 칸에서 꾸룩꾸룩 소리가 난 뒤 물 내리는 소리가 나면, 또 그 옆에서 우지직 소리가 난 뒤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이걸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서로서로가 주고받는 조화된 멜로디?

-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서 정말 훌륭한 음악 한 곡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런 현상도 엽기적인 걸까.

발레에는 '파드되'라는 것이 있다. 파드되(Pas de deux), 불어다.
'파(pas) =스 텝(step), 드(de) =~의(of), 되(deux) =둘(two)'을 의미하는 '파드되'란 두 명의 스텝이란 뜻으로 '2인무'를 가리킨다.

- 근데, 발레의 '파드되'가 대변소리 - 사실 설사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언어의 순화 - 와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

'파드되'는 주로 클래식 발레에서 남자 무용수와 여자 무용수가 서로 들어올리고 돌고 하면서 고난도의 테크닉과 조화(調和)를 보여주는 것이다. 화장실에서 나는 대변소리가 꼭 발레의 '파드되'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 칸칸의 완벽한 조화음.

- 예술적 영감은 먼 곳에 있지 않은 것 같다.

화장실에서의 조화로운 대변소리, 그리고 발레의 '파드되'를 연상시키는 음악이 있다. 찰리 해이든(Charlie Haden)과 팻 매쓰니(Pat Metheny)가 1997년 발표한 앨범 'Beyond The Missouri Sky'에 수록된 'Our Spanish Love Song'이라는 곡이다.

정말 끝내주는 두 명의 재즈 기타리스트 찰리 해이든과 팻 매쓰니는 이 곡에서 서로의 기타연주를 주고받는다. 어쿠스틱기타와 베이스기타가 만들어내는 그 조화음, 그리고 그들의 손길이 기타줄을 쓸어 내릴 때의 살아있는 테크닉과 완벽한 파트너쉽. 그래서 그럴까? 'Our Spanish Love Song'이라는 곡은 거듭 '둘'의 조화를 느낄 수 있게 해 이렇게 비가 내리는데도 외롭지 않게, 울적하지 않게 만든다.

비가 내려 흐릿한 날, 몇 번을 반복해서 들어도 질리지 않는 정말이지 멋진 곡이다.

덧붙이는 글 | * 앨범에는 총 13곡의 음악이 수록되어 있으며, 모든 노래들이 다 감미롭습니다. 특히 영화<시네마천국>의 엔리오 모리꼬네의'러브 테마'와 '메인 테마'를 챗 매쓰니와 찰리 해이든, 두 기타리스트의 감성으로 들을 수 있어 더욱 반갑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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