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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라디오헤드의 신작 'Amnesiac'을 대하면서 필자는 여러 모로 혼란스러움을 느껴야 했다. 작년 'Kid A'를 냈을 당시 이들은 후속앨범에 대한 암시를 공공연히 해온 터라 본작의 음악적 색깔이 어떠할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대중성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도 없는 분위기의 이 앨범에 무슨 이유로 국내의 음악팬들이 반응을 하는 것일까?

바로 이들의 데뷔곡이자 지금까지 라디오헤드에게 망령처럼 따라붙는 'creep'의 영향력 때문이다. 사실 라디오헤드의 음악이 급격히 일렉트로니카로 변모했다고 하지만 이들은 이미 95년 'The bends', 97년 'OK computer'를 통해 서서히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로의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Kid A'와 본작 'Amnesiac'인 것이다.

필자가 이번 앨범을 통해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전작 'Kid A'에 비해 한결 부담을 덜은 듯한 유연한 느낌이 앨범 전체에 감돌며 듣는 이들에게 결코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다는 것, 반면 'Kid A'에서 보여준 실험적인 사운드가 더 진전되지 못한 채 'OK computer'의 그늘에 가리워져 있는 것이었다.

이번 앨범에서 주목해 들을 곡으로는 'Pull pulk revolving doors', 'Knives out', 'The morning bell amnesiac'을 꼽을 수 있다. 이중 'Pull pulk revolving doors'의 경우에는 거친 노이즈와 음성 변조를 들려주는 곡으로 'Kid A'에서 보여준 파격적인 사운드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몇 안되는 곡이다. 반면 'Knives out', 'The morning bell amnesiac'은 현악기 사운드에 비중을 둔 곡들로 97년작 'OK computer'의 잔형이 남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앨범의 질을 논하기 이전에 좀더 생각해보자. 과연 국내 록밴드가 이런 류의 음악을 한다면 통할까? 흔히 얘기하는 한국인의 정서에 와닿을 만한 멜로디도 전혀 들어 있지 않은 본작이 왜 이토록 화제인 것인가?

본작은 전작 'Kid A'의 연장선상에 있는 앨범이라는 데에 의미를 둘 수 있을 뿐 그다지 대단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 없는 앨범이다. 하지만 라디오헤드는 이번 앨범을 통해 한 가지 분명한 수확을 거뒀다. 그것은 'Kid A'의 이질적이었던 사운드를 자신들의 것으로 팬들에게 각인시켰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들은 본작에서 이러한 자신들의 음악적 이미지 확립에 더 큰 비중을 뒀다고 봐야 할 것이다. 더 이상 'creep'의 잔재는 기대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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