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980년 5월 24일, 서대문 형무소에서는 한 인물에 대한 사형집행이 이뤄졌다. 당시 군사고등법원에서 사형 확정판결을 받고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된 그는 나흘 후, 광주민주항쟁이 한창이던 5월 24일 전격적으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판결문의 죄목은 [내란목적의 살인죄].

그로부터 정확히 21년이 흐른 오늘,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한 공원묘지. 군데군데 정으로 훼손되고 본드로 덧칠해진 비석과 묘 주위로 약 5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길고 가파른 산길을 숨차게 올라온 이들의 대부분은 나이 60을 넘어서는 초로들이었지만 묘 앞에선 한 없이 '어린' 이로서의 예를 다하며 묘 주위에 둘러섰다.

한 인사가 마이크를 잡고 운을 뗐다. '시간이 좀 늦었습니다. 지금부터 고 김재규 장군 21주기 추모식을 거행하도록 하겠습니다'.

<10. 26 재평가와 김재규 장군 명예회복 추진위원회>의 집행위원장인 김범태 씨가 진행을 맡은 이날 추모제에는 당시 김재규를 변호했던 이돈명 변호사, 강신옥 변호사, 양동일 변호사 등 당시 변호인들과 함세웅 신부를 비롯해 김승훈 신부, 효림 스님 등 종교계를 대표하는 인사들도 다수 참석했다. 이들 사이로 간간히 일반인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특히 매년 이 행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왔던 <송죽회>(전남 광주)의 회원들도 어김없이 이날 행사에 참석했다.

애국가대신 '산자여 따르라'를 합창하는 것으로 시작된 이날 추모제에서 당시 변호를 맡았던 강신옥 변호사는 인삿말을 통해 "김재규 장군의 깊은 뜻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그는 국민들 사이에서 ‘패륜아’로만 평가 받고 있다. 오히려 박정희에 대한 정부차원의 지원이 이뤄지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며 "김재규 장군이 비록 법적으로는 ‘내란목적 살인죄’로 사형을 당했지만 역사의 재판에서는 정의가 바로설 것임을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진 추모사에서 김승훈 신부는 "하늘이 도운 장군의 희생이 우리 나라의 민주화를 이루는 밑거름이 되었다"라고 말한 뒤 "그러나 아직 이 세상은 악과 죽음이 지배하고 있다. 하루 속히 악의 무리들이 사라지고 거룩하고 착한 이들이 다스리는 세상이 다가오기를 염원한다" 고 말했다.

김승훈 신부의 묵도가 이어지고, 함세웅 신부가 사그러드는 향로에 향가루를 간간히 뿌려주는 가운데 30도를 넘는 더운 날씨는 어느덧 참석인사들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을 맺히게 했다.

분향을 마친 한 참석인사는 "국민의 정부 들어 실시되고 있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비추어 볼 때 김재규 장군의 10.26 거사가 당시 박정희 유신독재의 연장을 막고 민주화를 앞당기는 데 기여한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민주화의 초석을 다지는 데 기여한 10.26 거사의 의미에 대해 올바른 역사적 재평가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한 인사는 "오늘 김재규 장군의 추모제에 참석하러 간다"며 과거 민주화 운동을 함께 했던 동료들에게 말하자 "박정희의 독재에 일조하고 자신이 섬기던 왕을 살해해 지탄을 받는 그의 묘에는 뭐하러 가느냐"라고 했다며 그가 겪은 미묘한 현실을 이야기했다.

그는 이어 "솔직히 자신을 심하게 타박하는 그들의 김재규 그리고 10.26에 대한 인식과 현실에 답답함을 느낀다"며 동료들에 대한 실망감을 기탄없이 털어놓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인사들은 특히 망치와 본드로 심하게 훼손된 김재규 장군 묘비석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송죽회>의 회원인 김석형 씨(77세)는 "이 묘비는 91년도에 우리가 아주 극비리에 세웠다. 그러나 5년 후에 누군가에 의해 심하게 훼손되기 시작했으며 심지어 비석의 갓은 떼어져 버려졌다"라며 안타까움을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김재규 장군에 대한 올바른 재평가가 이뤄지고 나라에 의해서 새로운 비석이 세워지길 바란다"면서 "그간 김재규 장군이 겪어온 상흔의 과정을 되돌아보기 위해 현 비석을 그대로 보존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추모식을 마친 참석자들은 햇볕을 피하기 위해 마련한 천막그늘 안에 모여 앉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상도동 성당의 신도들이 마련한 도시락을 들며 그간 못다 나눈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이날의 추모제 행사를 마쳤다.

애증이 엇갈리는 김재규에 대한 오늘날 우리 사회의 평가 작업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김재규에 관련한 당시의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고 있다 해도 접근이 쉽지 않다. 또한 그와 함께 했던 주변 인물들이 한사코 그에 대한 증언을 피하는 상황이어서 더욱 그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김재규 재평가 작업을 어렵게 만드는 큰 장애물은 죽은 박정희에 대한 국민적인 향수가 강한 오늘 날, 그를 살해한 김재규는 ‘패륜아’라는 강한 국민적 불신감이다.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서 민감하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김재규 평가. 하지만 진실을 찾기 위한 역사의 조심스런 발걸음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