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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파문이 쉽게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정부는 지난달 30일 일본 정부에 전달할 재수정 요구안을 확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안에는 ▲임라일본부설의 기정사실화 ▲한일합방의 강제성 호도 ▲식민통치 및 태평양 전쟁 정당화 ▲종군위안부 기술 축소·은폐 등 40여개 안팎의 항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치권도 민주당 일본역사교과서 왜곡시정대책특위가 정부 대책반과 논의를 시작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고, 조만간 국회도서관과 광화문 지하철 역사 안에서도 전시회가 열릴 예정이다. 계속해서 일본 고위 관료들의 망언과 과거 왜곡이 반복되는 시점에서 초대 대통령이자 항일독립운동가였던 이승만 전대통령의 저서를 살펴본다.

이것은 무서운 책

지난 54년 이전대통령의 오른팔였던 이기붕 전부통령의 아내이자 신여성을 대표했던 박마리아는 한권의 번역서를 내놓는다. 빛바랜 표지의 <일본내막기>(日本內幕記)라는 책이 바로 그것.

이책의 원작은 이전대통령이 미 망명시절인 지난 40년, 현지에서 집필한 으로, 프란체스카 여사는 "출판이 됐던 41년 초엔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같은 해 12월 8일 미국이 진주만 기습을 당하게 되면서 서점에서 매진이 됐으며 영국에서도 발간이 됐다"고 술회한다.

일본에 대한 강한 반발과 증오로, 날카로운 지적이 돋보이는 이 책을 번역한 박마리아가 훗날, 친일행적으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는 것 역시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54년 발간된 이후 이 책은 33년이 지난 후인 87년, 다시 한 번 세상에 나온다. 한국전쟁 직후 발간에 도움을 줬던 이종익(연세대·명지대교수역임, 현 방콕국제학교교장) 교수가 최근의 표기와 현대어에 맞춰 <일본군국주의실상>(나남)이라는 제목으로 재발간한 것.

박마리아도 <일본내막기> 역자 끝부분에 "끝으로 이 책을 번역하는데 내 손발이 되어 도와준 젊은 재사 이종익 군의 노고를 이곳에서 다시 높이 사는 바이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교수도 불행했던 이전대통령의 일생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지,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런 순간이 기쁘기보다는 처량하고 마음이 언짢다. 나라를 위하여 일생을 바쳤을 뿐 아니라 그는 항일투쟁의 선봉에 섰고, 카리스마적 정치지도력을 발휘하여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리승만 박사! 그 말년이 장기집권에서 온 정치의 부패와 그의 독선으로 다시 조국을 떠나야 했던 그였으나 우리는 역사에 남을 그 행적과 공적을 덮어 버려서는 아니된다"

그러나, 정작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한 시민단체와 재야 역사학자들은 이 책의 최초 번역가인 박마리아의 행적에 대해 차가운 시선을 던지고 있다. 일제 치하 YWCA간부직을 두루 역임하며 '징병제 실시에 감개무량함을 설파하는 등 친일행적이 노골적이었다는 것'.

친일논란이 있는 인물을 가장 가까이에 두고 국정에 임했던 이 전대통령의 친일 청산 작업이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던 이유중의 하나엔 바로 이런 것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이 책의 간행사엔 이전대통령 저서의 중요성을 최초로 인식한 명사가 펄벅 여사였다며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이것은 무서운 책이다. 나로서는 이것이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으나, 진실임을 밝히지 아니할 수 없음이 두려운 일이다. 사실 일본에 정복된 나라의 시민으로서 리박사는 오히려 지나치게 온건하다. 그는 이곳에 공포상을 그린 것이 아니라 다만 그곳에서 일어나는 현실을 말하고 있으며 또 물적 증거를 제시하였을 뿐이다. 만약에 극동에 있어서 일본이 계획하는 '새로운 질서'에 관하여 권위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는 곧 한국인들뿐이리라."

역자인 이교수도 "우리들이 <나치즘>의 소산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온갖 흉계의 구실과 망상이 히틀러의 탄생 이전에 이루어진 일본의 정책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 책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일본의 '선민의식'

그럼 일제의 군국주의가 최절정에 달할 무렵인 1940년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이전대통령의 저서로 들어가보자. 그는 일찍부터 정신력의 가치를 높이 인식하고 국민정신교육에 전력을 다함으로써 전쟁심리의 발전에 있어 일본이 그 어떤 나라보다 발전해 있다고 평가한다.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가치관이 단순히 제황과 국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 백성들 또한 신격의 일부분이라는 것. 따라서 신의 후손인 일본 국민은 그 용감성에 있어서나 지성에 있어서 다른 어떤 국가나 민족들보다도 뛰어나게 우수하다는 '선민의식'이 팽배해 있다고 당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일본의 모든 어린이들은 ▲일본 제황이 유일한 신의 지배자이며 ▲일본이 유일한 신의 국토이고 ▲일본 국민이 유일한 신의 국민이기 때문에 세계의 빛이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믿음을 갖고 자라왔다는 것. 이런 신비주의로부터 츨발하여 일본은 극단적 애국심으로 결합된 특수한 전쟁심리를 발전시켰고, 이 정신은 긍지 높은 전사의 민족을 만들어냈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이와 함께 이 전대통령은 당시 일본 군사교과서에 서술된 진무덴노의 조칙에 나와 있는 "우리는 전세계를 혼돈과 폐허로부터 구출하려는 신탁을 받고 있기 때문에 전영토에다 우리의 수도를 건설할 것이다"라는 부분을 그 대표적인 사례로 들고 있다.

일본의 야심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미국 내 선전사업이 가장 중요하다는 그의 대미의존적인 해결책에선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지만, "무엇을 위하여 그들이 이와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당신들은 생각하는가? 그들은 말로써는 태평양 지역에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그와 같은 짓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 까닭은 거대하고도 기계화된 군대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를 지배할 운명을 지니고 있다고들 믿고 있기 때문이다"는 이전대통령의 결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새롭다.

독도 점유권과 교과서 왜곡 파문을 계속 반복하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가입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본에 대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대책을 마련해야만 할까.

"전쟁이 아닌 평화를 위해 이 책을 썼다"면서도 "목적 여야를 불문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론자들은 제5열과 같이 위험하고 파괴적이라고 말할 때에는 그에 대한 이유가 충분히 있다"고 과격한 일성마져 주저하지 않던 이전대통령의 강경한 입장 표명은 현재에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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