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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에게는 잔인한 달이 4월이지만, 서민들에게는 잔인한 달이 5월이다. 5월 5일 어린이날, 5월 8일 어버이날, 5월 15일 스승의 날 행락철을 맞은 각종 행사와 모임으로 5월은 하루하루가 빡빡한 날이다.

지난달 통계청 발표 자료에 따르면, 소비 주도는 IMF 이전의 소득수준을 유지하는 상위 10%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서민들은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주머니 사정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고 가계빚과 세금은 늘어나 생활비 부담 가중으로 주부들이 참다못해 부업전선으로 몰려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 정도면 각 쇼핑몰의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가정의 달 선물제안 광고문구에 신경을 쓰기도 싫지만 그래도 연례행사인 이날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요즘 어린이들은 선물 중에도 현금선물을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금을 주면 평소 갖고 싶은 선물을 자기가 맘대로 사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돈만 있으면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황금만능주의적 사고방식이 어린아이까지 깊숙히 침투해 있다.

어린이날이 지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어버이날. 필자는 이런 날들은 좀 없어졌으면 한다. 이날에만 얽매여 어린이들을 즐겁게 해주고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형식적인 날이 더 이상 지켜져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기야 평소 바쁜 생활 속에서 자식과 부모에게 마음먹고 사랑을 베풀기가 힘든 만큼 이날을 특별한 날로 정해 그 동안 못다한 배려를 다하는 날로 보면 이날은 의미가 있는 날이다. 요컨대 이날은 평소 자녀에게는 부모 노릇을 제대로 못했거나 부모에게는 자녀로서 봉양을 다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날 하루만이라도 하기 싫어도 의무적으로 잘하라는 날이다.

따라서 평상시 자녀와 부모에게 잘하는 사람들은 이날을 특별히 신경쓸 필요없이 평소처럼 하면 아무런 부담이 없을 것 같다. 평소 부모나 자녀에게 잘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날은 양심의 가책을 받는 날로 보여진다. 효자는 1년 365일 부모를 봉양하고 부모의 아가페적 사랑은 5일 어린이날을 초월, 365일이 매일 어린이날이다.

요즘은 효도와 자녀 사랑이 과거처럼 돈없이는 제대로 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만큼 돈의 위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한 칼 마르크스 지적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정신적 구세주는 신이고 물질적 신은 돈이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돈은 보이지 않는 신이요, 마력인 것이다.

돈이 뭐길래. 평소 그렇게 불만이 많던 부모와 자식들에게 돈만 풍족히 주면 모든 게 풀려 나가기 쉽다. 여기서 돈은 더 이상 물질이 아니라 정신이다. 돈에 따른 물질적 봉양은 이미 정신적 봉양으로 둔갑해 있는 것이다. 물론 돈으로 할 수 없는 효도와 봉양도 있겠지만 이는 철저한 자본주의사회 안에서는 힘들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움직이는 것 자체가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 가만히 앉아서 효도와 봉양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게 현실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대로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이 없으면 (효도는커녕) 죽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항상 양면이 있는 법. 현실이 아니더라도 일부 반자본주의자들은 이렇게 주장할 것이다. "돈으로 하는 공양과 효도는 효도 중에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돈의 마력과 위력이 갈수록 기세를 떨치는 상황에서 돈없는 서민들에게는 한줄기 희망의 빛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이 희망은 자본주의와 황금만능주의시대에는 제대로 실현되기 힘들거나 실현될 수 없기에 계속해서 하나의 희망사항, 영원한 이상으로 남을지 모른다.

옛부터 우리 조상들은 날을 많이 정해 지켜왔다. 생일도 그중 하나이다. 가난해서 평소 국도 못끊여 먹다가 이날은 미역국을 끊여 가족들과 함께 나눠 먹는다. 이는 요즘 생일이 아니더라도 가끔식 하는 가족 외식에 해당된다. 그리고 어른들의 생신이면 동네 사람들을 초청, 마련한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다.

이같은 시절에는 생일이 꼭 필요했고 평소 아버지를 도와 힘든 일도 해야 했던 어린이들을 위한 어린이날, 그리고 이들이 벌이는 어버이날 잔치 등은 나름대로 의미있는 날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날이 너무나 많다.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블랙데이, 로즈데이, 빼빼로데이... 수도없이 생겨나는 이런 날들이 많이 생기는 만큼 의미는 퇴색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3.1운동을 계기로 1922년 어린이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고 어린이의 행복을 도모하기 위해 시작된 어린이날은 이미 본래 취지를 상실했다.

그럴 바에야 필자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물론 5월의 청소년-가정의 달 기념일과 행사를 모두 한날로 통폐합, 온가족이 하나되는 '5월의 향연'으로 승화됐으면 한다. 이것이 5월 가정의 달, 청소년 달의 본래 취지일 것이다. 지금 가정의 달은 아들과 부모 중간에 있는 '샌드위치 세대'에게는 고통의 달이고 잔인한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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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갖자"는 체 게바라의 금언처럼 삶의 현장 속 다양한 팩트가 인간의 이상과 공동선(共同善)으로 승화되는 나의 뉴스(OH MY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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