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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사진이 있다.
공장이 보인다.
그리고 나체의 남자.
그는 심하게 고개를 흔들고 있다. 얼굴을 볼 수가 없다.
벗은 게 창피해 얼굴을 가린 것일까? 착각은 자유.

공장과 나체의 남자 사이, 무엇이 밤의 정적을 깨는 것일까?


4월 18일(금)부터 24일(화)요일까지 인사동 하우아트갤러리에서 '지성배 사진전'이 열린다. 그가 전시한 사진의 주제는 'Human Refinery', 즉 '인간정제소'라는 의미다.

국가 1급 보안 시설의 어느 공장, 밤, 그리고 작가 지성배.
빛이 없는 밤, 인공의 빛 사이로 작가는 옷을 벗고 공장의 파이프에 기대어 선다. 무엇이 그를 그곳에 있게 했을까?

그가 작품을 제작한 의도는 기계장치, 즉 공장이라는 '문명'에 종속된 인간, 즉 '지성배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함이다.

문명 속에서 인간은 무엇인가? 주체적이지 못하고 부품으로 전락한 인간의 절망과 고뇌와 소외를 호소하기 위해 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공장의 맥박 속으로 뛰어들었다. 사진 안에는 공장의 파이프라인과 작가 지성배의 심장이 함께 꿈틀댄다.

그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육체에 관한 습작>을 보게 되었고 그가 구성하고 있던 이미지와 상당히 가까움을 느꼈다. 그래서 부분적으로 베이컨의 그림들을 접목시켰지만, 단지 부분일 뿐, 베이컨은 육체를 가만두지 않는다. 지성배는 유난히도 추웠던 지난 겨울, 청명한 밤하늘이 나타남을 기다렸다가 자신의 숨죽은 육체를 카메라에 노출시켰다. 살아있는 것은 그의 얼굴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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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중인 사진,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 지성배
그가 얼굴을 움직여 지운 이유는 존재가치의 상실 때문이다. 기계속에서 자연적인 '나'는 없다. 다분히 인위적이고 조작적인 '내'가 존재할 뿐이다. 그는 "생각이 많으면 기계는 돌아가지 않는다. 나를 지움으로써 내 존재를 항변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는 셀프 콘트롤 방식으로 촬영을 했다. 촬영노출 시간을 1분 30초에서 2분 사이로, 조리개를 f/22로 조인 후, 자신이 위치해야 할 그 곳으로 뛰어가 출연까지 완성했다. 그는 f/22로 조리개를 조린 이유에 대해 차가운 기계성을 드러내기 위해서였고, 조리개를 조여서 시간이 늘어난 만큼 작가가 사진 속에 위치해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임을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을 벌었다고 한다.

지성배의 사진은 보는 이들을 문명의 이기 속에서 탈주시키며 밤의 정적 속으로 미끄러지게 한다. 자연의 빛이 내리쬐는 인간의 낮시간은 문명 그 자체이다. 컴퓨터를 마주하며 전화기와 팩스, 온갖 기계에 둘러싸여 '생존'의 목적 아래 많은 것을 잃고 또 잃게 한다.

밤은 어떠한가? 어두운 밤을 환기시키는 인공의 빛은 없어야 한다. 빛이 있는 한, 인간은 문명과 떨어져 있을 수 없다. 최면, 혹은 숙면의 시간에 인공의 빛이 가득하다. 인간은 면(眠)할 수 없다. 그래서 언제나 깨어있는 인간.

인간의 고독은 깨어있음으로 인해 발기하는 것이 아닐까?

밤, 어둠이 가져다주는 사색의 시간. 고독은 배(倍)가 된다. 누가 이 차가운 실존(失存)의 시간을, 고독의 아픔을 체험하지 않았으랴. 그러나 인간은 자위(自慰)의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은가.

작가 지성배는 스스로 나체의 몸이 되어 실존의 조각들을 기쁘게, 혹은 고통스럽게 맞이하고 있다. 그는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혹은 "인간정제소"라 명명한 문명속에서 정제되고 있거나..


<후기>

안토니오 포르치오네의 나일론 스트링 기타 연주가 돋보이는 음악 "Night Passage(밤의 항해)"를 들으며 그의 사진들을 바라본다. 그의 사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이다. 밤의 정적을 깨는 것은, 결국 인간의 고독이었다. 한 움큼의 고통을 토해내고선... 그리곤... 인공의 빛과 자연의 빛이 교집합을 이루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 안토니오 포르치오네(Antonio Forcione) - 이탈리아 태생의 기타리스트로 영국에서 활동 중, 현재 영국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멀티 기타리스트. 나일론 & 스틸 스트링 기타와 클래시컬 기타, 스패니쉬 기타 연주가 특히 뛰어남. 

# 전시회 안내
일시 : 4월 18일 ~ 24일
장소 : 인사동 하우아트갤러리 (한빛은행 건너편 주홍빌딩 3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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