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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내와 함께 자전거로 금문교를 건넜다. 지난 1년간 샌프란시스코에서 살면서 금문교를 헤아릴 수 없이 왕복했지만 자전거를 타고 건넌 것은 이번이 처음.

바람이 셀 때는 시속 100km를 넘는 강풍이 분다는 말을 들은 탓에 따뜻한 봄날인데도 불구하고 윈드자켓과 안전헬멧으로 단단히 무장을 하고 나서야 다리로 향한다.

해변의 언덕길을 따라 달린 지 30분, 금문교의 거대한 교각 두 개가 눈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다리 우측은 보행자 전용로이고 자전거는 좌측으로 통행하라는 표지판에 지시에 따라 다리 밑의 좁은 길을 통해 드디어 금문교에 오른다.

다리의 길이는 2737m. 경치를 구경하며 쉬엄쉬엄 가면 20분 정도 걸릴 거리다. 5분 정도 달려 첫번째 교각에 이르자 앞서가던 아내의 자전거가 갑자기 쓰러진다. 교각을 스치며 몰아치는 엄청난 횡풍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지고 만 것.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세차게 부는 바람을 피해 교각 뒤에 자전거를 세운 뒤 아내와 같이 바다 밑을 내려다 본다. 다리 위에서 바다 밑까지 67미터. 태평양의 거센 파도가 교각 밑을 때리며 새하얀 물거품을 만들어 낸다. 아내는 현기증이 난다며 곧 고개를 돌리고 만다.

수면에서부터 재면, 교각 전체의 높이는 227m에 이른다. 서울의 63빌딩과 맞먹는 높이. <인터내셔널 오렌지>란 페인트로 채색된 두 개의 교각 안에는 다리의 유지보수를 위한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다. 언젠가 로컬 방송의 기자가 교각 끝까지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샌프란시스코 연안을 촬영한 장면을 본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TV 화면으로 봐도 아찔한 교각의 높이에 소름이 끼쳤는데 실제로 올라가면 어떨지 얼른 상상이 되질 않는다.

금문교를 건설하던 1930년대, 다리의 건설 노동자들은 까마득하게 높은 교각 위에서 밧줄 하나에 목숨을 의지한 채 아슬아슬한 곡예를 해야 했다. 다리는 1937년에 완성됐지만 중국인을 포함해 수 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은 뒤였다. 금문교 전망대에는 추모비가 있어 다리를 짓다 목숨을 잃은 이름 없는 노동자들을 기억하고 있다.

강풍에 놀란 마음이 진정되자 다시 자전거를 타고 다리 북단으로 향한다. 두 번째 교각을 지나 예상보다 10분이 더 걸린 30분만에야 북단의 전망대에 도착한다. 순전히 바다 위로만 2.7Km를 달려온 것이다. 하지만 금문교 전체를 한 번에 조망하려면 맞은 편의 언덕을 따라 한참을 더 올라가야 한다. 오늘은 자전거 왕복으로 만족하고 다음으로 미루자.

강풍에 견디기 위해 금문교는 좌우 8.4m, 상하 5m까지 흔들려도 문제가 없도록 설계되었다. 하지만 이런 설계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바람이 시계추처럼 주기적으로 불면 다리가 붕괴될 수도 있다고 한다.

1960년대 중반에 실제로 이런 일이 발생해 다리가 통제된 적이 있다. 다리 한 가운데 차를 세운 운전자들은 미친 듯이 흔들리는 금문교의 난간을 움켜 쥐고 공포에 떨었다고 한다. 금문교를 관리하는 CalTrans 측은 이 때를 'Close Call'이라고 부른다. 붕괴 일보 직전까지 갔다는 뜻.

이제 자전거를 돌려 집으로 향한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교각 옆의 강풍을 피해 잠시 서지만 이번엔 맘의 준비가 돼 있어 그리 놀라지 않는다. 그래도 다리 밑을 때리는 시퍼런 파도가 무시무시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현기증이 나는 단점은 있지만 금문교의 난간은 격자 형태의 철제로 돼 있어 차로 달리면서 바다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한국에 건설된 서해대교는 안전을 위해 콘크리트 방호벽을 높이 설치한 탓에 승용차를 탄 사람은 바다 밑 경치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안전을 지키면서도 관광가치를 높일 수 있는 대안은 없었을까?

남단에 있는 금문교 기념관에는 주탑과 상판을 연결해 다리를 지지하는 케이블의 샘플이 전시돼 있다. 어지간한 고목나무보다 더 굵어 어른이 한아름에 안기가 힘들 정도다. 12만9천km에 이르는 강철선을 한 가닥씩 엮어 이렇게 굵은 케이블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단면을 보면 수천 가닥의 강철선 다발을 확인할 수 있다.

대서양을 건넌 유럽 사람들이 보는 미국의 첫 모습이 <자유의 여신상>이라면, 한국의 부산항에서 출발한 배가 1만km가 넘는 뱃길을 따라 태평양을 횡단하면 우뚝 선 금문교의 교각 두 개가 이곳이 미국의 서쪽 관문임을 일러준다. 이곳의 무역항인 오클랜드 항구에 들어서는 뱃사람들은 왜 다리의 이름이 금문교(Golden Gate)인지 새삼 고개를 끄덕일 듯하다.

덧붙이는 글 | *3면이 바다인 샌프란시스코는 여름에 춥고 가을/겨울에는 따뜻한 특이한 기후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곳으로 여행 오실 분들은 되도록 가을과 겨울을 선택하시고 윈드자켓 챙기는 것을 꼭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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