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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또 한 분의 할머니가 중국 동북부 헤이룽장성 무린의 오지 마을에 생존해 있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할머니는 일제가 패망한 후에도 조국의 무관심에 방치된 채 60년간 중국 현지에서 어렵게 연명해오다 최근 한국으로 시집온 한 조선족 동포의 제보로 민간단체가 현지를 방문함으로써 비로소 피해사실이 알려지게 됐다.

16일 한국정신대연구소(소장 고혜정)는 지난 7일부터 일주일간의 일정으로 중국 현지를 방문한 결과 박옥선(78) 할머니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고혜정 소장의 면담조사 결과 할머니는 18살 때인 1941년 고향 경남 밀양에서 방직공장에 간다는 말에 속아 중국 헤이룽장성의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간 후 해방될 때까지 3년여 동안 일본군 병사들을 상대하는 지옥같은 생활을 해야 했다.

할머니는 이곳에서 일본 군인을 상대해야 한다는 말에 방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다 일본인 관리자에게 구둣발로 정강이를 걷어 채여 심하게 패인 상처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당시 함께 끌려갔던 20명의 여자들과 함께 기차에서 내려 대기해 있던 군 트럭에 실려 간 곳이 군부대 근처의 위안소였으며, 일본군 상대를 거부하면 일본인 관리자는 “이곳이 바로 공장”이라며 감금했고, 휴일이면 문 앞에 줄을 서서 재촉하는 병사들을 상대하다 죽을 생각도 여러 번 했다고 증언했다.

고소장은 “할머니가 위안부 생활이 수치스러워 그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이제 늙고 병들어 입을 열게 되었다고 울먹였다”고 전했다.

위안소에서 일본 이름 ‘아키코’로 불리던 할머니는 45년 소련군이 들어오자 패퇴하는 일본군 무리에 끼어 보름 동안 산중을 헤매다 밥을 빌어먹으러 내려간 마을에서 정착하여 지금까지 살고 있다. 할머니는 이후 현지인과 결혼을 하여 2남 1녀를 두었으나, 현재 큰아들은 병으로 죽고, 병치레로 진 빚을 갚기 위해 작은 아들과 딸이 외지에 나가 일을 하고 있어, 손주들을 돌보며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정신대연구소는 밀양시청 호적계의 도움으로 할머니의 남동생 박모(75) 씨를 찾았으며, 하루빨리 상봉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연구소는 관련 단체 등과 공동으로 당국과 협의, 할머니의 귀국을 추진할 계획이다.

연구소는 “아직도 일본군이 주둔했던 곳에는 상당수의 피해자들이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은 채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많다”면서 “노령인 이들이 죽기 전에 정부 차원의 해외생존 피해자 발굴노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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