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부시가 외교 팀을 칭찬했다고? 외교가 뭔지 모르는 내가 봐도 위기를 잘 넘기긴 했다. 부시에게 높은 외교점수를 줄 만해. '하늘이 준 기회'라고 이 기회에 부시 행정부를 좀 태우고 싶었던 중국 정부가 결국 부시 외교 팀의 카드를 받아들였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잘한 일이다. 아직 미 정찰기 반환문제가 남아 있긴 하지만 인간애를 잃지 않으면서 사건의 책임을 모두 인정하지 않으면서 실리를 다 챙겼다고 하니까.

미국에선 첫째는 사건 발생으로 인해 중국 조종사가 목숨을 잃은 것은 유감스럽게 생각하지만 사건 자체에 미국의 책임은 없다는 주장을 관철시켰고, 둘째는 이걸 기회로 대만 무기 판매 중단과 미국 정찰기의 중국 군 공중 정찰에 관한 중국의 협상카드를 모두 되돌림으로써 미국의 이권을 하나도 잃지 않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사건이 처음부터 중국에 유리한 것처럼 보이긴 했다. 그런데 미국은 끝까지 침착하게 중국의 협상 조건과 중국 내의 분위기를 읽으며 차근차근 대처해 갔다.

미국 정찰기가 하이난 섬에 비상착륙하자마자 언론은 부시 정권의 첫 번째 위기니 일촉즉발이니 하고 떠들어댔지만 사건현장이나 워싱턴에서 이만큼 떨어져 있는 여기 아틀란타에서 이 사건을 읽을 때 미국은 애를 좀 먹고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여유를 잃은 것도 아니었다.

미국이 절대로 무시 못할 1천억 달러 규모의 중국시장이라는 점과 2008년 올림픽을 생각하면 중국이 그렇게 만만하게 미국을 다루지 못할 거라는 분석으로 자국의 실리를 잃지 않겠다는 분명한 입장과 함께 중국의 분위기 읽기에 열심인 것 같았으니까.

어떤 분위기 읽기냐 하면 중국의 국민감정! 미국이 중국 전투기 조종사의 사망에 대해 유감스럽다(regret)고 표현하니까 중국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정식으로 사과(apology)하라고 요구했지.

중국 국민들은 '유감스럽다'는 말로 해결될 일이냐고 반미감정에 잔뜩 분이 나서 소수 의견이 발 딛고 설 틈이 없을 정도라고 중국 특파원이 아틀란타 저널에 썼더군. 미국은 중국의 국민 감정이 99년 나토의 중국 대사관 오폭 사건이 오폭이 아닌 고의적인 폭파가 아니냐는 아직도 가시지 않은 의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도 잘 읽었다.

부시 행정부가 처음 바꿀 의사가 없다던 'regret'이라는 단어를 'very sorry'로 바꾼 건 바로 그 국민 감정을 달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듣기로는 중국정부도 국민들의 반미 감정이 너무 앞서는 것은 원치 않는 일이라고 하던데. 아무튼 미국이 사건을 해결해 가는 과정을 보면서 나는 엉뚱하게 이런 생각이 들었어. '스토리 맵'(story map)이 '독후감'을 읽고 있구나!

무슨 소리냐 하면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읽기 공부하는 걸 보니까 킨더 가든 때부터 몇 글자 쓰여 있지도 않은 그림책을 보면서도 스토리 맵을 그리더라구. 책의 앞 부분은 무슨 내용이냐, 중간 부분은 또 무슨 내용이냐,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무슨 내용이냐 하는 식으로 내용분석을 한다.

그러다가 3학년이 되니까 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본격적으로 스토리 맵을 그리는데 어떻게 그리냐 하면 이렇게 그려.

항상 책 속에 등장인물들이 처한 문제점(problem)이 무언가를 요약하는 박스가 가운데 있고 그걸 중심으로 왼편 위쪽에 등장인물들(Characters)의 외형과 성격분석, 오른쪽 위에 내용이 전개되어 가고 있는 무대 혹은 현장 분석(Setting), 왼쪽 아래엔 주요 사건 분석(Main Events),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른쪽 아래편에 해결 방법(Resolution)을 찾아 요약하면서 스토리 맵을 그리는 거야.

거기다 우리 큰 딸의 담임선생님의 특별 메뉴인 북클럽(Book Club)에서는 여기다 몇 가질 더 하는데 그건 바로,

1. 만일 네가 이 책의 작가로서 상황을 바꾼다면 어떤 상황을 어떻게 바꾸겠느냐?
2. 만일 네가 이 책 속의 주인공이라면 문제를 만났을 때 어떻게 처리하겠느냐?
3. 책의 내용 중 너의 실제 상황과 연관된 부분(text-to-self), 혹은 다른 책과 관련된 부분(text-to-text), 혹은 세계와 관련된 부분(text-to-world)을 소개해 봐라.

하는 거다.

그럼 미국 아이들은 책 읽고 감상은 쓰지 않느냐? 그렇진 않다. 감상은 어디다 쓰냐면 네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부분(favorite part)은 어디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 거길 읽어보면 슬프고 웃기고 속상했다는 이 아이들의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글쎄, 중국에서는 어떻게 스토리 맵을 그리면서 읽기를 배우는지 그건 내가 아는 바 없지만 내가 한국에서 책을 읽고 나면 독후감 혹은 감상문을 위주로 썼던 것을 생각할 때(하기야 지금은 그렇게 배우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같은 동양권이라는 점에서 중국도 별반 다르진 않을 것 같다(중국에 계신 기자님들 제 말이 사실과 다르면 꼭 지적해 주십시오).

읽은 후 감상을 적는 독후감이 더 좋은 거냐, 책을 읽으며 스토리 맵을 그리는 것이 더 좋은 거냐를 비교할 수는 없는 문제일 거야.

그런데 종종 합리와 현실성을 지독하게 따지는 미국을 상대하려면 중국이나 한국이나 '감정'을 앞세우기 전에 어려서부터 스토리 맵을 더 꼼꼼히 그려야 될 것 같지 않니? 그러면서 독후감을 쓰면 외교문제에 있어서도 국민감정을 해결하면서 실리를 챙기기가 더 쉬울 거 같아.

이번에 미국이 중국 정부에 보낸 편지 문구 하나 하나에 그렇게 신경을 썼다지?

남편을 잃은 부인과 가족들의 슬픔에는 동감한다. 그리고 정찰비행을 중단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중국의 입장도 그럴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무기도 팔아야겠고 정찰비행도 계속해야겠다.

결국은 그거 아니니? 결국은 그건데 그 논리를 저쪽이 받아들이도록 상황을 판단하고 조목조목 문구를 작성할 수 있는 힘은 아무래도 스토리 맵에서 오는 거 같아서. 내 비약이 너무 심하니?

덧붙이는 글 | 반말로 기사를 쓰는 이유

미국 사는 이야기를 처음 쓸 때 저하고 가까운 고등학교 친구에게 여기 사는 이야기를 전해 주려고 시작했기 때문에 어떤 문체로 쓸까를 찾다가 친구에게 말할 때처럼 쓰자고 결정했습니다. (미국 사는 이야기 1번)

물론 친구라고 모두 반말을 쓰지는 않을 거라는 어느 분의 지적에 저도 동감합니다. 그래도 반말을 계속 쓰기로 고집하는 이유는 솔직함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친구에게 얘기할 때하고 좀 거리가 있는 친구에게 이야기를 할 때하고 이야기 내용이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달라지는가 하면 거리가 있는 친구에게 이야기를 할 때는 아무래도 한번 더 생각하고 더 신중하고 조심성 있게 말을 하겠지요.

가까운 친구에게는 신중함이나 조심성보다는 솔직하게 그리고 정감있게 얘기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얘, 이런 건 좋구 이런 건 나뻐, 그리고 이런 건 힘들고 이런 건 속상해 하고 말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신중성과 조심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체가 거슬린다는 의견에도 그대로 쓰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제 문체를 싫어 하는 분들도 있지만 또, 좋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특히, 처음 이야기를 시작해 얼마동안은 제 문체를 지적하는 분들은 없었습니다. 

때로 제 문체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읽는 독자 여러분들이 어떤 감정을 갖고 제 글을 읽느냐에 따라서 좋게 느껴질 수도 있고 나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반미 감정이 미국에 사는 기자의 문체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제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나 한국을 폄하하기 위한 목적으로 반말을 사용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꼭 고쳐야 하는지 아직 스스로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독자의견에 제 답글을 쓸 때는 항상 존칭어를 쓰고 있습니다.
제가 글을 쓸 때는 미국에서 한국에 사는 친한 친구에게 전화로 말하듯 하는 일종의 이야기 형식을 택하고 있지만 제 글을 읽어 주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독자 여러분들을 향해 반말로 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