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일산 호수

오늘도 그대는 오지 않았다
그대는 소식 없다
안개의 그물에 걸린 일산 호수
부들꽃 연꽃 원추리꽃 미나리아재비
흰줄무늬석창 줄지어 피는데
물길에 갇혀 나는 그대에게 가지 못한다
떼까치들이 날아와 물살을 가르고
안개 걷혀 물길이 열려도
나는 그대에게 가지 못한다
시간의 지뢰밭에 묶인 그대
오늘도 그대는 오지 않았다
일산 호수 물빛 맑은데
그대는 소식 없다
사랑이 그대를 가둔 것은 아니다
일산 호수 바람 가르며
내 꿈길로 오는 송장 물고기떼.


일산에서 그대를 보았네

그대를 보았네
눈오는 날 저녁
아파트 공사장 부근에서
그대를 보았네
백화점 회전문을 나서며 문득
그대를 보았네
자동차 차창 밖으로 언뜻
그대를 보았네
가시그물에 걸린 내 꿈을 보았네
매운 눈보라 거친 벌판 떠도는
그대를 보았네
동문 아파트 상가
버려진 음식 찌꺼기 뒤적이는
그대를 보았네
그대 허기진 눈을 보았네
굽은 그대 등을 보았네
눈오는 날 저녁
일산에서 그대를 보았네


자기의 땅에서 유배된 자들

이방인들이 밀려오고
도시가 세워졌다
땅을 잃고 집을 잃고
마을을 빼앗겼다

고향을 등지고
울며 떠난 비포장 길
아스팔트가 깔리고
고층 건물이 들어섰다
승용차가 줄을 잇고
백화점마다 재화가 넘쳤다

거덜난 고향, 농토를 잃고
아파트 경비원으로
빌딩 청소부로
파출부로 공사장 잡부로
내몰리고 내쫓기고
고구마 쑥갓 산나물 광주리
안고 이고 뛰었다

신도시가 세워지고
이방인들이 밀려오고
원주민들은 고향에 남아 노예가 되었다


아파트

지상의 방 한 칸 얻지 못하고
공중에 집을 지었네
지상에서 그대 사랑 얻지 못하고
마음은 차가운 돌이 되었네
오래 묵으면 시멘트도 흙이 되고
철근은 나무가 되리
돌 꽃도 피어나리

지상의 방 한 칸 얻지 못하고
공중에 집을 지었네
어느 아침 태양은 빛나고
그리움 또한 눈 부셔
겨드랑이에서 붉은 깃털은 솟아나리
그대 향해 날아오르리
지상에서 그대 안에 깃들지 못하고
공중에 둥지를 틀었네


자유로

거침없이 뚫린 이 길이 두렵다
길이 있어도 갈 수 없는 길

그대에게 향하는 마음은 급브레이크를
밟아도 멈출 수 없는데
속도를 낼수록 나는 그대에게서 멀어진다

사랑이 있어도 사랑에 이를 수 없는 길
슬픔도 없이 곧게 뻗어
통로가 되지 못하고 단절이 되는 길
거침없이 뚫린 이 길이 무섭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