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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산삼을 먹은 백사를 최상급으로 치는데
산삼을 먹은 백사와 먹지 않은 백사의 차이는 실로
산삼과 인삼의 차이만큼이나 크다고 합니다.

산삼 먹은 백사냐 그렇지 않느냐는 눈을 보고 판단하는데
산삼을 먹은 백사는 눈이 빨갛다는군요.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갈퀴발도 없는 뱀이 땅속 깊은 곳에 뿌리 박은 산삼을 수시로 캐먹을 수 있을까요.

네 발을 가졌으며 거기다 도구까지 지닌 인간들도 평생 한 뿌리 캐기 어렵다는 산삼을 백사는 무슨 방법이 있어 수시로 캐먹는 것일까요.
오래도록 궁금해 하던 차에 마침 지리산에 갔다가 우연히 만난 윤 아무라는 도사를 통해 그 궁금증을 풀었습니다.
지리산 도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윤아무는 백사가 산삼 캐는 것을 수 차례 목격했다고 하더군요.

영물인 백사 보기도 어렵고 산신령이 점지해 주지 않으면 산삼도 보기 어려운 법인데 하물며 백사가 산삼 캐는 모습이라니!
윤아무의 도력이 제법 높은 경지에 오른 것인가.
지리산 속에 오래 살았다더니 산신령의 측근이라도 된 것인가.

하지만 이 도사가 날거나 둔갑하는 것을 본 바 없으니 거기에 대해서는 나도 무어라 말할 수 없습니다.
단지 나는 도사에게 들은 사실만을 옮겨 적을 뿐입니다.
윤도사는 말했습니다.

어느 날 깊은 산중, 산삼을 발견한 백사가 주위를 두리번거립니다.
심봤다고 외치려는 것인가.
말없이 백사는 산삼 곁을 떠났다가 잠시 후에 다시 돌아옵니다.
입에는 쥐 한 마리가 물려 있습니다.

겁에 질려 발발 떠는 쥐를 내려놓은 뒤 백사는 쥐를 산삼 곁으로 몰아갑니다.
그리고 쥐의 꼬리를 덥썩 뭅니다.
땅을 파!

백사에게 물려 죽지 않기 위해 꼬리 물린 쥐가 발버둥을 치자 자연히
산삼 주변의 흙들이 파헤쳐져 나갑니다.
그러다 그 쥐가 죽으면 백사는 다시 또 다른 쥐를 물고 와 땅을 파게 합니다.

백사가 왜 땅파기 전문가인 두더지를 물어 오지 않고 쥐에게 땅파는 일을 시켰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떻든 그렇게 백사는 여러 마리의 쥐를 동원해 산삼을 캐고
흙을 털어 낸 뒤 산삼을 잔뿌리 하나 안 남기고 다 먹어 치웁니다.

윤도사가 보았다는 광경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이제 알겠습니까.
갈퀴 발도 없는 백사가 발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어떻게 산삼을 캐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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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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