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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타임스는 4일 도날드 H. 럼스펠드 신임 미 국방장관의 유럽 방문 소식을 자세히 보도했다. 타임스에 따르면 그의 방문은 신임 부시행정부의 미사일 방어망 계획에 대한 유럽과 동맹국들의 반대를 희석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측은 이 자리에서 미사일 방어망을 통해 결국은 유럽과 동맹국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는 '당근'을 제시했다.

럼스펠드 장관은 뮌헨에서 열린 유럽의 고위 정치인 및 국방관계자들과의 회의에서 "앞으로 미사일 방어망 계획을 유럽 동맹국들과 상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유럽국가들의 근본적인 관심사인 "미사일 방어망이 전략무기제한 협정과 양립해 나갈 수 있는지의 문제와, 나아가 소련과 어떻게 건설적인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유럽국가들의 의문에 대해서는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럼스펠드 장관은 이 자리에서 "부시 행정부는 만약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유럽국가들의 반대를 극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미국 땅을 지키는 미사일 방어망을 추진하는 것에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천명했다.

그의 방문에 대한 유럽국가들의 반응은 "미국이 미사일 방어망 계획에 대해 자신들과 상의하겠다는 것은 반기지만, 이 계획이 세계의 군비통제 분위기를 해쳐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유럽 지도자들의 반응은 차가운 것이었다. 유럽 지도자들의 일차적인 우려는 우선 미사일 방어망의 배치가 핵무기를 통제해 온 토대와 러시아와의 관계를 해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쟈크 시락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달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은 "세계 군비경쟁의 재개를 피할 수 없게 만드는 사안"이라고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루돌프 샬핑 독일 국방장관도 최근 러시아를 방문한 자리에서 "군비 통제 조약은 지켜져야 한다"고 선언하는 한편, 미사일 방어망의 기술적 타당성 자체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시한 바 있다.

캐나다를 비롯한 대다수 서구 열강국가들이 이같은 입장인 반면, 북한으로부터 위협을 느끼고 있는 일본이 거의 '유일한' 잠재적인 미국의 우군세력으로 분석되고 있다. 미 외교가에서는 얼마전 미-일 외무장관 회담에서 미국의 계획에 대한 일본의 '양해'가 어느 정도의 가시화됐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러시아, "전략무기 제한 협정 포기" 경고

그러나 미국과 유럽 등이 가장 신경쓰는 상대인 러시아의 입장은 더욱 단호하다. 러시아는 만약 부시 행정부가 <미사일요격용 미사일 금지조약(ABM, 1972년 체결)>을 저버리고 미사일 방어망을 배치한다면 자신들도 전략무기 제한협정을 포기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러시아 안보위원회의 세르게이 이바노프 위원장 등이 이와 관련 성명을 발표하는 등 러시아는 강경한 입장을 누그러뜨리지 않겠다는 기세이다.

미국측은 이에 대해 미사일 방어망이 일부 군비통제 조약들과 병립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럼스펠드 장관은 유럽방문에서, 자신의 의회 인준과정과 심지어는 유럽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조차 말했던 "ABM 조약은 무정부주의적"이라는 강경한 톤을 낮추면서 유럽국가들의 우려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자 했지만 그의 시도가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그의 설명은 '미국이 고립주의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닌가'라는 유럽의 우려를 불식시키기에는 여전히 함량미달인 상황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만한 대목은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 이니셔티브를 계속 밀고갈 경우 NMD(National Missile Defense), TMD(Theater Missile Defense)로 불리는 미사일 방어망의 실전배치 여부를 둘러싸고 형성되고 있는 국제기류의 이동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무리하게 이를 추진하려 할 경우 미국은 미사일 방어망의 실전배치라는 전투에서는 이길지는 몰라도 '효과적인 세계주도권 유지'라는 큰 전쟁에서는 실패를 맛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미사일 방어망의 배치 이유로 제3세계 침략국들(third world aggressors)로부터 안위를 보장해 줄 우주 방어벽이 있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사전에 이들 국가에 대한 타격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는 논리를 들고 있다.

사실상 미국의 목표는 중-러 등 실질적인 위협국가

미국은 제3세계 '불량국가'(rogue state)들로부터 자국과 우방의 보호라는 구실을 겉으로 내걸었지만 이같은 미국의 논리를 그대로 믿을만한 순진한 국가는 거의 없다.

사실상 미국의 목표는 중-러 등 실질적 잠재력을 가진 위협국가들로 집약된다.

부시행정부는 표면적으로는 이란 파키스탄 이라크 북한 등 소위 불량국가들로부터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해 방어망의 배치를 추진한다고 내세우지만 실상은 러시아나 중국 등 사실상 그들의 적수가 될 만한 상대들을 보다 염두에 두고 있음은 러-중 등 잠재적인 적수가 될 만한 국가들이 가장 강경하게 반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또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미국측의 설명은 상당한 '과장'으로 보여진다. 제3세계 국가들 중 미국을 상대로 교전을 해올 국가는 적어도 지금은 찾기 어렵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수천 두의 핵폭탄과 세계최강을 자랑하는 첨단 육해공 군사력으로 무장한 미국에 덤비겠다는 나라는 상식적으로 '정신이 나가지 않고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미국이 먼저 치지 않는 한 '상대국에 의한 미사일 공격'은 여전히 '투정' 정도로만 비쳐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말하는 미사일 방어체제의 필요성은 미국 스스로는 상당히 맹신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실제 그런 미사일에 의한 공격 가능성이 희박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추진하는 미국의 집념자체는 만만치가 않다는 점이다. 처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다가 결국 '제한적인' 도입을 지지해야만 했던 클린턴 전 대통령의 입장은 미국 정치권이 만들어낸 이 사안에 대한 공감대의 정도를 말해 준다.

문제는 미국의 이 같은 '믿음'과는 달리 러시아와 중국으로서는 핵무기들을 제한해 나가는 단계에서 가장 현실성 있는 공격수단이 미사일인데 이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겠다면 이는 결국 자신들을 거세해 버리겠다는 말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최근 부시 대통령이 크리티앙 캐나다 총리 등과의 협의에서 거듭해서 핵무기 감축 조약의 준수를 역설하는 것은 러-중 등으로 봐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수 있다.

결국 미국의 방어망 시나리오는 중-러 등 실질적인 미국의 경쟁자들로 하여금 미국에 의한 힘의 균형 파괴로 받아들여지면서 이들로 하여금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한 동반자 의식을 더욱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있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힘의 독주'를 누리려는 미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느슨한 국가간의 견제동맹 형식으로 자리잡아갈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 준다는 점을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

소련과 중국이 최근 전례 없이 밀착하려는 분위기는 그 같은 분위기의 연장선으로 파악된다. 사회주의 블락의 균열 이후 무력감을 느껴야만 했던 러시아와 미국의 독주를 우려해 왔던 중국이 보다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나아가 일종의 이익 동맹관계를 형성하는데 미국의 '모험'이 기름을 끼얹는 악수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수면 아래 잠복된 구 사회주의권과 미국의 대결을 부상시키는 '뜨거운 감자'

특히 구 소련 연방해체 이후 심각한 진통을 앓아온 러시아의 경우 미국의 '불장난'은 자신들이 아직도 건재함을 회복해 나가는 단계에서 묵과할 수만은 없는 사안이 되고 있다. 푸틴의 등장과 함께 범 사회주의 동맹 추스리기에 나섬으로써 갈수록 국제사회의 발언권을 얻고 있는 러시아으로서는 결코 미국의 '오만'을 두고만 보지만은 않겠다는 기세이다. 푸틴의 러시아는 더 이상 '이빨 빠진 호랑이'가 아니라는 홀로서기 의지를 이번 기회에 어떤 식으로든 천명하겠다는 기세이다.

향후 최대의 잠재적인 미국에 대한 위협국가로 미국으로부터 공공연하게 평가받는 중국측으로서도 미국의 독주를 그냥 두고볼 리 만무하다. 탕 자쉔 중국 외무장관은 미국의 의도는 "시대의 조류를 거역하는 행위"로 "냉전적 사고로 국제정치와 국제관계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중국도 '그만 두고만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명한 경고이다.

이런 과정에서 여전히 외형적인 평온과는 달리 수면 아래 내재하고 있는 미국과 구 사회주의권이라는 실질적인 경쟁상대들간의 긴장관계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탈 이데올로기 군비경쟁이 다시 재현될 소지를 배제할 수 없게 된다. 만약 미국이 방어망의 배치를 고집하고 중-러를 중심으로 북한과 베트남 등 미국과의 친교쪽으로 기울던 전통적인 미국 주도 반대세력들이 가세하게 된다면 미국은 본의 아니게 상당히 난처한 입장으로 빠져 들어가게 될 상황이다.

궁극적으로 사회주의권 블락의 해체와 '무장해제'를 가져오는 데 일조했던 미국 주도의 군축 이니셔티브가 결과적으로 미국의 목적달성(사회주의 붕괴)을 위한 '꾀임수'였다는 메시지로 해석될 경우, 러시아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맹세력은 또 다시 연대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로 결집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이런 과정에서 느슨한 사회주의권 연대의 재등장과 이에 따른 국제 사회에 있어서의 발언권과 위상이 제고될 여지를 안겨주는 셈이다.

미국은 지금 도박을 시작하고 있는 셈이다. 미사일 방어망이라는 고기는 잡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그것도 기술적인 난제를 극복해야 가능하지만), 종국에 가서는 큰 어장을 잃고 마는 오판일 수도 있다. 국제 사회가 한결 같이 이같은 미국의 의도를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처사'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를 잘 말해준다.

결국 미국의 계획이 원안 그대로 달성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고 설사 어느 정도 양보를 통해 그것을 달성한다 하더라도 미국은 상대적으로 많은 것을 잃게 될 상황이다. 미국은 이 과정에서 자신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 상실이라는 '자산손실'을 일정부분 피할 수는 없다.

지금 미국이 세계사에서 결정적인 리더쉽을 구가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냉전시대 빅 파워들에 대한 각개격파식의 분리 정책이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부시행정부가 지금 나아가는 국제정책의 기조가 그같은 흐름에 역행하는 길이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에는 위험이 따르지만 어쨌거나 그것은 미국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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