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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개혁파의 힘으로 과연 국가보안법 개정의 전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여야간 정권교체가 이루어진지 3년이 다되도록 표류해온 국가보안법 개정 문제가 최근 다시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여야 개혁성향의 의원들은 그동안 몇차례 모임을 통해 국가보안법 개정안의 공동발의와 자유투표(크로스 보팅)의 추진에 공감대를 넓혀왔다. 지난 설연휴 기간에도 민주당과 한나라당에 속한 개혁파 의원 7인이 모여, 29일 열리는 양당의 의원연찬회에서 보안법 개정안에 대한 자유투표를 정식으로 요구하기로 했다.

과연 29일의 의원연찬회에서 자유투표 요구는 예정대로 제기될 것인지, 얼마만한 숫자의 의원들이 그에 동조할 것인지, 그리고 당 지도부의 반응은 어떠할 것인지가 주목되는 상황이다.(필자는 지난해 12월 4일자 '정치전망대' 칼럼 '표류하는 국보법 개정, 차라리 의원들 소신에 맡기자'를 통해 자유투표를 통한 국가보안법 개정안 처리를 제안한 바 있다)

사실 민주당에 속한 의원들의 경우는 보안법 개정문제에 대해 특별한 부담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당 총재인 김대중 대통령이 보안법 개정 필요성을 밝히고 있는 여건에서, 개정 찬성 주장이든 자유투표 주장이든 비교적 자유롭게 처신할 수 있는 입장이다.

하지만 자유투표의 관철여부는 보안법 개정 작업의 추이를 좌우할 중요한 변수이다. 김중권 민주당 대표는 자민련과의 공조를 의식하여, 보안법 개정은 자유투표보다는 자민련과의 공조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 자민련만 바라보는 기약없는 기다림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며, 내용적으로도 개정의 폭이 크게 제약받을 위험이 커보인다.

민주당내에서도 자유투표를 통한 보안법 개정으로 입장을 정리하는 것은 보안법 개정이 자민련이라는 변수 때문에 지체되는 상황에 종지부를 찍는 것을 의미하며, 결국 보안법 개정안의 조기 처리 의지를 가시화하는 것이 된다.

또한 민주당의 자유투표없이는 한나라당의 자유투표 보장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여당측이 당론으로 통일되고 양당 공조까지 추진되는 마당에, 자기들만 자유투표하고 있을 순박한 야당이 어디 있겠는가. 민주당이 자유투표를 천명해야 한나라당 개혁파의 운신도 다소나마 자유로워지고 결국 보안법의 조기개정이 가능해질 수 있다.

보안법 개정 입장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에 비해 한나라당의 사정은 매우 어렵다. 이회창 총재가 근래 들어 거듭해서 보안법 개정 불가 입장을 밝혔고, 사실상 이 입장이 준(準)당론화되어 있는 상황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보안법 개정을 주장하는 것은 이 총재에 대한 항명을 의미하는 것이며, 자유투표 요구도 이 총재의 입장에 불복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보안법 개정 불가 입장은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가 김대중 정부와 대비되는 자신의 보수적 성향을 의식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각별히 신경을 쓰고있는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는 한나라당 주류측이 개혁파 의원들의 보안법 개정 찬성, 자유투표 요구 등에 대해 예민하고 거칠게 대응할 가능성도 있다.

한나라당내 일각에서는 자유투표가 보장될 경우 보안법 개정에 대해 30-40명 가량의 의원들이 찬성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자유투표를 하더라도 민주당 의원들 경우는 대다수가 찬성을 할 것이라는 예상을 한다면, 이러한 상황은 곧 보안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반대로 이 총재측이 보안법 개정 불가에 완강하게 집착할 경우 몇 명의 의원들이 소신을 지키며 찬성을 하게 될 지는 아직 예측불허다. 항명이라는 낙인과 그에 따른 정치적 불이익을 감수하려는 용기가 필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보안법 개정문제에 대한 한나라당내 입장 정리의 추이는 개정의 성사여부를 좌우하는 변수가 되고 있다. 설혹 민주당과 자민련간의 공조가 가까스로 이루어진다 해도, 그에 불복하는 이탈표를 예상한다면 한나라당내 개혁파의 동조없이는 보안법 개정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제 여야 개혁파의 단합여부가 보안법 개정여부를 좌우할 수 있는 갈림길이 되고 있다. 여야의 개혁파가 단합하여 보안법의 공동개정안을 마련하고 자유투표를 추진하는 것은 커다란 의미를 갖는 일이다.

물론 그 과정에는 당내의 질시와 견제, 그리고 박해가 이어질 것이다. 개혁파 의원들의 적극적인 의지만이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29일 각기 열리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의원-원외위원장 연수회에서 개혁파 의원들이 용기를 갖고 제 목소리를 내주기 바란다. 자민련의 눈치만 보고 아직껏 보안법 개정 시도조차 못하고 있는 민주당 지도부, 그리고 당내의 이견을 억누르며 보안법 수호에 나선 한나라당 지도부를 향해 이번만큼은 할 말을 다해주기 바란다.

정치를 하다보면 종종 현실을 인정하며 정치적 유연성을 가져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때가 아니다. 보안법 개정문제는 의원 개개인의 역사의식과 정치적 신념과 관련되어 판단할 원칙적인 문제이다. 정치적 박해속에서도 소신을 저버리지 않는 정치인들의 이름을 우리 국민들은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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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 수술 이후 방송은 은퇴하고 글쓰고 동네 걷기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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