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설날이 가까워 옵니다.
오랜만에 고향에 온 친구를 만나러 막 사립을 나서는 참인데 고추쟁이 영감님이 들어옵니다. 푸대 하나를 들쳐 맨 영감님의 어깨가 마당 어귀에서 잠시 기우뚱합니다.

"어쩐 일이요, 오춘?"
"어여 들어 가세"
영감님은 푸대를 마루 위에 가만히 내려 놓습니다.

"이거 방금 잡은 돼질세, 흑돼지 앞다링께 설에 삶아 자시게"
"아따 오춘 이런 걸 머 할라고 가꼬 왔소, 도로 가져가씨오. 폴아 가꼬 아주머니 약값에나 보태씨오"
"암 쏘리 말고 받으시게. 내 성잉께"
'가져가시오, 받으시게' 몇 번의 실랑이가 오고 갑니다.

"이 사람아, 저번 참에 뱅원 댕게와서 우리 안사람이 자네 야글를 듣고 고마와 눈물을 흘렸다네, 그러니 성이로 알고 받으시게. 자네야 받든 말든 그냥 놔두고 갈라네."
영감님은 서둘러 사립을 빠져 나갑니다.

나는 영감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망연히 서 있고, 담장 밖에서는 영감님의 말소리 멀어져 갑니다.
"설 잘 쇠시게, 나 가네이-잉"

너무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겠다싶어 영감님을 더 이상 쫓아가지도 못하고 나는 돼지 앞다리를 추녀 밑에 걸어 놓습니다.

지난 연말이었습니다.
진작부터 한번 들여다봐야지 하던 것을 미루고 미루다 소주 한 되와 과일을 조금 사들고, 봉투에 약간의 돈을 넣어 고추쟁이 영감님 댁을 찾아갔습니다. 아주머니는 광주 병원에 다니러 가고 안계시더군요.

암환자가 입원을 해서 치료를 받아도 시원찮을 판에 불편한 몸 이끌고 겨우겨우 통원 치료만 받고 있습니다. 그만큼 고추쟁이 영감님의 사정이 어려운 때문이지요. 나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마음의 위로나 되시라고 약간의 약값을 보태드렸지만 영감님댁을 다녀오는 길 내내 마음이 편치가 않았습니다.

영감님은 본래 광준가 어디 대처에 살다가 하던 사업이 망하자 빚쟁이들에게 쫓겨 이 멀고 외딴 섬까지 흘러 들어왔습니다. 여지껏 사람들이 버리고 떠난 빈집을 전전하며 남의 밭을 빌려 농사를 짓고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지요.

육십 넘어 시작한 객지살이가 팍팍할 것이야 두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좀체로 문을 열지 않는 섬마을의 폐쇄적인 공동체 속에서 영감님은 늘 겉돌며 살아왔고 이곳에 정착한지 5년이 넘어가는 지금도 형편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은 십년, 이십년이 지나도 외지 사람으로 여길 뿐 공동체 구성원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배타적인 섬의 풍습으로 인해 영감님은 여전히 한 때 고추를 사다가 팔러 다녔던 전력으로 인해 고추쟁이 영감으로 불리우고 있지요.

물론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이라고 다 그렇게 배척 당하지는 않습니다. 지위가 높았거나 재산이 많은 사람들은 변함없는 존경과 우러름을 받지요. 반면에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일수록 공동체로부터의 배제는 더욱 커집니다.

그런 연유에선지 아주머니가 암투병중이란 소문은 이미 마을에 자자하지만 영감님은 누구로부터도 도움을 받고 있지 못합니다. 아주머니가 눈물을 흘리시고, 영감님이 굳이 나에게 어렵게 키워서 직접 잡은 돼지 다리 하나를 들고 오신 까닭도 내가 드린 약값이 도움이 되서라기보다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해 준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을 것입니다.

이제 곧 설입니다.
객지 살던 사람들이 너나 없이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온 나라가 귀성객들로 몸살을 앓게 되겠지요.
모든 언론 방송들은 귀성전쟁이라는 살벌한 용어를 쓰면서도 따뜻한 고향의 품을 찾아가는 아름다운 풍습이라고 호들갑을 떨겠지요.

하지만 명절이 돌아와도 고추쟁이 영감님은 고향에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즐거운 명절을 보낼 때 영감님은 암투병 중인 아주머니와 둘이서 외로운 설을 보내게 되겠지요.

꼭 영감님네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는 명절 때만 되면 고향을 찾는 귀성의 행렬이 마땅치가 않습니다. 가족끼리, 친척끼리, 고향사람들끼리만 어울려 돌아가는 배타적인 명절이 결코 미풍양속으로 보이지가 않는 까닭이지요.

우리가 명절이라 해서 고향을 찾지 않아도 될 날은 언제일까요. 이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혈족 공동체의 잔치에 초대받지 않아도 될 날은 언제일까요.

태어난 곳이 아니라 지금 발 딛고 사는 곳이 모두에게 고향이 되고 그곳에서 명절을 기쁘게 보낼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요. 설과 추석이 가족, 친지들끼리만 즐겁게 지내는 날이 아니라 함께 사는 가난한 이웃들과도 함께 어우러지는 잔칫날이 될 때는 언제쯤일까요. 그 때가 되면 우리는 비로소 열린 공동체의 아름다운 제의로서 참된 설과 추석 명절을 되찾게 되겠지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