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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해를 되돌아 보면 새천년, 새천년 하고 기대했던 것 만큼 모든 면에서 실망도 큰 한해였다. 환경면에서도 항상 현대적인 환경개념에 적합한 방향을 지향해 오면서도 실천면에서는 소극적인 면이 적잖았었다.

신사년 새해에는 모름지기 현대 환경론에 알맞는 사고에 입각한 정책 방향을 지향해야 하겠고, 또한 모든 국민들도 이러한 방향에서 능동적인 노력을 해야 함은 하나의 기본적인 실천 원리라 하겠다.

모두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환경이란 인간 생활과 깊은 관계가 있는 인간을 둘러싸는 외계를 말하는데, 인간을 중심으로 이렇게 말할 때에는 사회적, 심리적, 교육적인 의미를 가지는 일이 많다.

우리나라 헌법도 "모든 국민은 깨끗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문으로 환경권과 그 의무를 규정하여 인간다운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 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권리인 환경권을 보장하고 있다.

이러한 헌법과 하위 법체계의 환경법 법리에 따라 원칙적으로 환경권에 대한 주민의 침해는 곧 환경권의 침해로서 환경오염의 배제와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고, 현실적으로 환경오염이 당장은 없어도 앞으로 그 위험성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예방청구권까지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권의 이념은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UN 인간환경회의"에서 채택된 "UN 인간환경선언"이 "인간환경의 보호와 개선은 인간의 복지와 경제발전에 미치는 주요 문제이므로, 이는 전세계 인간의 절박한 염원이고 모든 정부의 책임이다"라는 결의문으로 선언되면서부터 각국 나라의 법체계에 도입되었다.

그러므로 한 나라의 환경정책의 목표는 종래의 피상적인 규제에 반성을 촉구하면서 환경오염의 소극적인 사후규제나 피해방지의 차원으로부터, 환경기준의 유지 확보를 중심으로 한 적극적인 환경보전 우선으로 전환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그 예외는 아니다.

또한 생물 일반에 대해서는 이들 문화적인 환경에 대해 자연적 환경이 문제가 된다. 생물이 생활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온도, 물, 빛, 공기, 흙 등이 필요하다. 이것들을 환경요인(환경요소, 또는 환경인자라고도 한다)이라고 한다. 어떤 환경요인에 대해 양적 변화가 있을 때, 이것을 환경조건이라고 한다. 환경과 생물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을 생태학이라 하고 이러한 연쇄적인 관계를 생태계라고 한다. 여기서는 생물을 둘러싸고 있는 외위, 즉 자연적 환경의 현대적 환경론 일반에 대해 논의하고 새해에는 관민 모두 이러한 근본적 환경원리에 충실한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

근대 산업사회는 인간의 욕구 충족을 위해 자연 생태계를 심하게 파손시켜 가며 자연을 생산의 동인으로 전환하기 위해 한층 더 과학기술의 발달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자연 생태계의 무분별한 파괴는 곧바로 부메랑 효과로 나타나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보다는 더욱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급기야는 인간과 자연 전체를 위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제 자연 생태계의 위기는 바로 인간의 위기와 인간성의 상실에게로까지 이어지는 바로 인간 위기의 근본의 문제가 되었다.

현대 환경의 문제는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시각 혹은 태도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자연을 보는 관점은, 자연을 하나의 거대한 기계로 보는 기계론적 관점과 하나의 유기체적 생명체로 보는 유기체적 관점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기술지향주의는 기계론적 관점과 긴밀히 연관이 되어 있는데,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 인간 중심적인 관점을 취하고,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서 자연계의 그 어떤 문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매우 낙관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에 따라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인간의 물질적인 욕구 충족이 우선이고, 환경보존이나 자연의 생물학적 권리는 부차적이기에 인간의 문명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생태계의 파괴나 환경오염은 불가피하다. 이러한 생태계의 파괴나 환경오염은 과학의 원리나 법칙을 활용하여 환경문제를 객관적으로 분석해 내고 첨단기술을 개발하여 이들을 적절히 조절함으로써, 그 피해를 충분히 줄일 수 있다는 낙관론을 취한다.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 기술관료들이나 학자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묵시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다.

첫째로, 기술적 혹은 도구적 합리성에 대한 지나친 맹신과 과학기술의 발전에 관해 지나친 낙관에 대한 경계이다. 만약 과학이 자연이 지닌 모든 신비를 진정으로 밝혀낼 수만 있다면, 자연생태에서 발생하고 있는 부정적인 영향들을 모두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적인 이성이 밝혀낼 수 있는 자연의 비밀에는 여전히 한계성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둘째로 새로운 기술이 개발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과학 기술의 이전 범위 안에서 예측할 수 없었던 새로운 환경에 위협이 되는 요인들이 과학 기술의 발전을 통해 감소되기는커녕, 더욱 더 증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면 유전적 질환을 치유하기 위해 개발된 유전공학기술이 인간복제와 관련된 새로운 문제들을 야기시키고 있는 것은 그 좋은 예가 된다.

생태지향주의는 환경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그 접근 방식에서 기술지향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선 자연을 이해하는 태도가 유기체적 자연관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유기체적 자연관은 자연을 하나의 생명체와 유사한 것으로 본다.

즉 인간을 포함하여 자연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마치 생명체의 각 기관들이 각자의 존재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긴밀하게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듯이 하나의 유기적인 전체를 이루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태도는 인간이 유용성만을 고려해 맺고 있는 자연과의 단순한 관계를 거부하고 자연은 더 이상 인간을 위한 도구적인 존재가 아니며, 인간과 동등한 생물학적 권리를 갖는 존재이고, 오히려 인간이 이러한 자연에 의존하여 살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이는 인간이란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생물학적 법칙에 순리적으로 따름으로써 자신이 일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전체 생태계와의 조화를 통한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입장에 극단적인 태도도 있으나,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수용하되, 그것이 자연생태계와의 조화 속에서 균형적으로 이루어질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생태지향주의도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즉 과학 기술의 합리적 행위에 대해 너무 지나친 제약을 가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점이다.

자연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소들 간의 유기적인 연관성을 규명하는 작업 역시 생태학을 통해 이루어지는 중요한 과학적인 활동이며, 이에 근거하여 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기 때문에 환경과 과학, 그리고 환경과 개발의 상호관계를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이며 이러한 신중한 생각 하에 환경정책도, 환경문제도 접근을 해야 되리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가장 결여된 환경권과 환경의 질에 대한 사회적 가치관을 재정립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또한 모든 국민의 능동적인 협조와 실천이 생활화되지 않고서는 결코 우리들의 환경문제가 단시일내에 해결될 수는 없는 것이며, 미온적 단기적으로 대처할 경우에는 그만큼 잘못된 결과가 악순환 되어 더 장기화됨으로써 보다 많은 예산과 노력, 그리고 희생이 강요될 것이므로 더 늦기 전에 현대 환경론에 입각한 보다 슬기롭고 합리적인 가치관과 사고로 사전 예방적 차원에서 장기적·능동적·적극적 으로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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