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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술자리에서 누군가가 한국정치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무엇으로 정의하겠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질문을 받고 무척 당황하였다. 하루하루 쇼킹한 사건들의 연속이고, 반전과 역전의 드라마가 계속되는 것이 한국정치이며, 일주일만 신문을 멀리 해도 그 다음부터는 정치면 기사를 이해하기가 힘들어질 정도로 역동적인 한국정치를 한마디로 정의하라니...... 많은 생각과 고민 끝에 문득 떠오른 것이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그리고는 그래 바로 그거야 하고 자신 있게 한국정치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다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한국정치와 크리스마스 선물 이 두 개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무척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 상관관계를 밝히기 위해 누구나 어릴 적 한번쯤 경험해 봤을 크리스마스 추억으로 돌아가 보자.

어릴 적 우리 집은 가난했었다. 3남4녀의 대가족에 아버님은 말단 공무원이셨고, 우리 집의 유일한 수입은 어머님이 늘 강조하셨던 아버님의 쥐꼬리만한 월급이 전부였다. 수입은 적고 식구는 많다 보니 대부분의 수입은 아홉 식구의 하루 새끼와 교육비로 나갔고, 여가니 취미생활이니 하는 것은 꿈에도 못 꾸는 일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가난한 집에도 1년에 한번씩 크리스마스는 돌아왔다. 내가 산타크로스의 존재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하였을 쯤의 첫 크리스마스는 기대와 꿈에 부풀어 있었다. 난 정말 누군가가 굴뚝으로 들어와서 내가 좋아하는 선물을 놓고 갈 것이라는 부푼 기대감을 안고 일찍 잠을 잤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의 상황은 여전히 아홉 식구가 변함없이 밥상에 앉아 별로 특별하지 않은 반찬에 밥을 먹는 변하지 않은 일상일 뿐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같은 동네에 사는, 좀 사는 애들인 경우는 다음날 만나면 산타크로스에게서 받은 선물을 들고 자랑하는 것이 아닌가? 이 무슨 조화인가? 난 바로 집으로 와서 아버지에게 물었다. "왜 우리 집엔 산타크로스가 안 왔어요?" 그때 아버님 얼굴에 비치는 어두운 상념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분명 산타크로스의 선물과 우리 집의 수입과 연관관계가 있구나 하고 그리곤 그 다음해 부턴 산타크로스에 대한 기대감을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 버렸다.

몇 해가 지났다. 아버님은 내가 크리스마스에 대한 실망감을 아셨는지 그 해에는 내 평생에 처음으로 그 선물이란 걸 받아보았다. 종합선물세트, 과자와 사탕들이 종류별로 들어 있었던 당시의 최고의 인기상품인 바로 그 선물. 그러나 난 별로 기쁘지가 않았다. 난 정말 로봇 장난감이 가지고 싶었는데 내 손에 쥐어진 것은 종합선물세트였기 때문이었다.

그 땐 이미 산타크로스의 실체에 대해 인식할 나이였기에 아버지의 주머니 사정이 그랬나 보다하고 생각하고 말았다. 이제 와서 보면 참 아름다운 추억이다. 이는 나만의 추억이 아닌 70년대 개발의 시대를 살았던 모든 이들에 가슴속에 한번쯤 간직하고 있는 추억일 것이다.

난 지금 나의 크리스마스 추억과 한국정치를 연관지을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내 추억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 아름다움을 겨우 한국정치와 연관지을려고 하냐고 나를 질책하는 것 같다.

하여튼 본 내용으로 가서 지금까지의 한국정치가 나의 어릴적 크리스마스의 선물에 대한 추억과 같았다라고 생각을 한다.

정치는 화려한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며 우리한테 다가왔다.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모든 것을 나눠주는 산타크로스라도 될 것처럼 선거 때 외치고 다녔다. 그러나 막상 그들이 국회에 들어가면 어땠는가? 현재 모든 정치인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메인 테마로 나오는 단골 글들이 있다. 서민정치, 정책전문가, 개혁의 일꾼 등등 그러나 그들이 그것을 이행했다는 신문기사는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귀족정치, 권모술수 전문가, 보수의 앞잡이 등으로 해석될 기사들만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 집의 크리스마스처럼 그들이 선물을 주는 곳은 있는자 가진자들이었지 정작 선물이 필요한 없는자 못가진 자들은 철저히 소외돼 있었다. 그래서 못 가진자들은 내가 혹 울어서 선물을 못받는 것이 아닌가 하고 다음의 크리스마스를 또 기대하면서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나 정작 순진한 서민들을 울린 것은 정치인이었지 서민 자체들은 아니었다.

선물 자체로 보아도 한국정치와 유사한 점이 있다. 산타크로스가 전해 주는 선물은 정말 산타크로스 마음이었다. 받는 사람들은 선물의 선택권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근데 더 웃기는 건 그 선물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밤에 잘 때 이런 선물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하더라도 다음날 내가 받아 본 선물은 엉뚱한 것인 경우가 많았다.

정말 선물 포장을 뜯어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산타크로스야 전 세계에 선물을 나눠 줄려고 하다 보니 개인 개인에게 신경을 쓸 여력이 없다고 치자, 근데 이 나라 정치인들은 뭐가 그리 바빠서 그러는 것일까? 그들은 밥을 먹을 때도 일을 할 때도 국민들을 생각해야 하는 게 그들의 일이 아닌가? 도대체 그 일도 안 한다면 뭘 하고 있는 건지... 이건 분명히 직무유기이다.

오늘 안으로 내년 예산안이 처리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치인들도 크리스마스는 집에서 보내고 싶은가 보다. 우린 이번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또 실망하고, 내년을 기다리게 되는 우를 범해야 될 것이다.

이제는 제발 우리집 문 앞에 내 양말 속에 희망을 담은 판도라의 상자가 배달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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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일반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이 사이트가 기존 제도권 언론에 대항하는 21세기형 새로운 언론매체의 패러다임이라는 생각에서입니다. 글은 주로 정치쪽 에세이를 중심으로 구성이 될 것입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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