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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 책 많이 들어옴

아는 분들을 데리고 <숨어있는 책>에 잠깐 들렀습니다. 신촌 언저리에서 책과 얽힌 일을 하는 분을 데리고 갔지요. 책을 좋아하는 분이기에 보통 새책방에서는 쉽게 찾지 못하는 이야기책을 만날 수 있는 헌책방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어제 낮에 찾아갔는데 마침 `산하'에서 나온 어린이책이 퍽 많이 들어와 있더군요. 어느 분이 갖고 있던 책이라 합니다. 상태는 아주 깨끗하네요. 그 가운데 제게 빠진 몇 권을 챙기는데 그 책들 가운데 <통일은 참 쉽다>가 눈에 확 띕니다. 지금은 나이를 많이 잡수시기도 하고 몸이 불편해 활동을 거의 못하시는 이오덕 스승이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들에게 글을 받아서 엮은 책이지요. 말 그대로 `쉬운 통일'을 아이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하자는 뜻에서 글을 모았지요.

통일은 쉽다. 그러나

통일은 참 쉽다
남쪽 북쪽 철조망
둘둘 말아올리면 되지 <윤동재>


우리가 널리 아는 이름이 퍽 됩니다. 그렇게 이름을 잘 아는 이들이 쓴 시와 글이 있는데 사실 웬만한 글은 `이름값'만 있고 `글값'은 없더군요. 뭐랄까. "아이들이 모조리 병들어 가고 있는 이 땅에서, 아이들은 읽을 수 없는, 어른들만 읽는 문학을 아무리 애써 만들고 걱정한들 우리에게 무슨 희망이 있고 그런 문학에 어떤 기대를 할 수 있겠습니까" 하는 끌탕을 풀어줄 만한 글을 다들 써내지 못했더군요.

아이들에게 읽힐 글이라 해서 눈높이를 아이에게 억지로 끼워맞춘 글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실망을 참 많이 했지요. `동시'라고 쓴 글 가운데는 윤동재 씨가 쓴 "통일은 참 쉽다"를 빼고는 가슴에 와닿는 감동을 주는 글이 없어서 참 안타까웠습니다.

제 개인 느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분들은 감동을 받으실 수 있지요. 글은 쉽고 `어린아이 느낌'은 나지만 뼈대가 없고 알맹이가 없기에 감동이 없는 동시. `동'이란 말에 너무 매달린 게 아닌지. `동시'라 할 때 `동'에 매달려 `시'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글을 쓴 민족문학작가회의 분들. 그래서 요즘처럼 민족문학작가회의가 문제되는지도 모르겠더군요.

헌책방은 참 좋다

그래서 저는 이런 말을 한 번 해 보렵니다. "헌책방은 참 좋다"고요. "책방 가기도 참 쉽다"고요. 책을 보는 일도 참 쉽습니다. 그냥 두 눈을 책에 갖다대도 글자를 읽을 수 있지요. 앞을 보지 못하는 분들을 헤아리는 점글책은 너무 드물어 장님들에게는 안타까우나 두 눈을 잘 뜨고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책을 보는 일은 아주 쉬운 일이랍니다.

두 손이 있고 두 발이 있고 몸뚱이가 살아 있는 사람들은 일하기 쉽습니다. 입이 있는 사람은 말하기 쉽지요. 귀가 있는 사람은 듣기 쉽지요. 몸 어느 곳도 고장나지 않은 사람이 못 할 수 있는 일은 없지요. 그러나 우리는 몸 어느 곳도 고장나지 않았음에도 "입을 열어야 할 때" 입을 닫고 "귀를 열어야 할 때" 귀를 닫습니다. "눈을 뜨고 봐야 할 때" 보지 않습니다. "주먹을 쥐어야 할 때"도 슬그머니 꽁무니 빼고 "두 발을 힘차게 내딛어야 할 때"도 제자리에 멈추지요.

동시 "통일은 참 쉽다"를 `통일은 머리 아프고 복잡하고 재산권 문제가 있고 주적 문제가 있고 국가보안법 문제가 있고...' 이렇게 말하는 우리 어른들. 조건이 많고 이것저것 헤아리고 살핀다면서 핑계거리만 찾는 어른들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앞에서 얘기했듯 민족문학작가회의가 할 수 있는 일이 지금은 코딱지만큼도 없어진 현실이 무얼 말하겠습니까. 바로 입, 귀, 눈, 주먹, 발 모두 성한 사람들이지만 그 모든 몸뚱이가 제 구실을 다 하도록 움직이거나 애쓰지 않기에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있지요.

그러나 헌책방은 모든 걸 다 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걸 제대로 알아주거나 살펴보아 주는 사람이 없을 뿐입니다. 어떠한 책도, 어떠한 종이뭉치도 모두 따뜻하게 보듬어서 껴안는 헌책방. 저는 이런 헌책방이 좋습니다. 고서도 좋고 허접한 관공서 홍보자료도 좋습니다. 살뜰한 이야기책도 좋으며 알뜰한 낱말책도 좋지요. 물건너온 원서도 좋고 독재시대 지하에서 찍어낸 등사판 소식지도 좋습니다. 철지난 잡지도 좋고 지난 흔적을 담아내고 있는 사진책도 좋습니다.

그래서 헌책방으로 가는 발걸음은 언제나 가붓합니다. 어떤 책을 `꼭' 보고 읽어야 한다는 짐스러움이 없습니다. 늘 새로움을 느끼고 늘 고개숙임을 배우며 온누리를 보듬고 껴안고 담아내는 온갖 `책'을 만날 수 있으니 헌책방이 좋고 헌책방으로 가는 발걸음은 가볍습니다.

나만 좋을 수 없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첫머리에 꺼내는 이야기는 으레 `정치'입니다. 그러나 저는 백범 어르신 말씀처럼 정치는 `아름다운 문화'가 밑거름이 되어야 제대로 꽃피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문화가 아름답지 못한 땅에서 정치가 참답게 꽃피울 수 없다고 믿습니다.

서로를 헤아리고 아끼는 문화가 없는 땅에서 어찌 만 백성을 아우르며 두루 살피는 정치를 할 수 있겠습니까. 작은 것 하나도 소중히 여기는 문화가 없는 땅에서 어찌 가난하고 힘여린 이를 보듬는 정치를 하겠습니까. 겨룸이 아니라 함께 함을 모르는 문화만 있는 땅에서 어찌 서로 돕고 힘을 모아가며 함께 살아갈 정치를 할 수 있습니까.

헌책방이 좋고 헌책방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저는 이 자체로도 너끈히 헌책방 `문화'를 도닥이며 빚어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좋은 헌책방 이야기를 혼자 안으면 늘 마음 한 곳이 무겁더군요. 옛말에도 좋은 것은 함께 나눠야 한다고 하잖습니까.

헌책방은 `자기'만이 아닌 `우리'를 생각하도록 이끕니다. 제 정신 똑바로 박힌 채 100해 넘게 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 아무리 `개인소유장서'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첫 임자를 떠나 새 임자에게 갑니다. 헌책방은 이렇게 `첫 임자'를 떠나 `새 임자'를 만나는 곳이죠. 책들이 말입니다.

이렇게 늘 `새 임자'를 만나는 책은 "모든 것을 내가 가지려고 해 보아야 다 가질 수 없다. 언제나 책은 제 임자가 있는 법이니, 내게 쓸모를 다 했다면 다른 좋은 임자가 이 책을 만날 수 있도록 내놓으라"는 가르침을 몸으로 보여 줍니다. 오늘은 이 책들이 내 손에 들어오지만 내일이 오면 또 다른 사람 손으로 가지요. 곧 좋은 책을 `나만 혼자 껴안으며 보는 마음가짐 몸가짐'은 헌책방에 오면 여지없이 허물어집니다. 그리고 허물어야죠.

책이든 다른 어떤 것이든 `가장 쓸모있게 여기고 다룰 수 있는 사람' 손으로 가야 합니다. 정치 또한 정치를 가장 아름다게 할 수 있는 사람 손에 맡겨야 하지요. 교육도 사회도 경제도 과학도 `가장 아름답게' 할 수 있는 사람 손에 떨어져야 합니다.

저는 헌책방을 다니며 이런 깨우침을 얻습니다. 늘 `임자'가 있다고요. 그리고 자기가 `임자'가 아니다 싶을 땐 주저하지 말고 자리 털고 손 털고 일어서야 함을 배웁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헌책방을 찾으며 이같은 깨우침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노고산동 숨어있는책] 02) 333-1041  /  xbooks@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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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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