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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헌책방을 `헌 책'과 달리

`헌 책'은 우리에게 `낡음'이란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헌책방이 `낡음'이란 느낌을 주지 않으면 낯설게 느끼는 사람도 있지요. 암사동에 자리한 헌책방 <책벌레>도 사람들이 깨끗하고 새로운 간판과 가게 모습에 `책 대여점'인 줄 알고 들어왔다는 사람도 있더랍니다. 사람들이 `책 대여점'인 줄 알고 들어올 만큼 <책벌레>는 아주 산뜻하게 깨끗한(?) 느낌으로 뭇 헌책방과는 첫 느낌부터 다릅니다.

노란 빛깔로 된 고운 간판을 달고 있는 - 이곳에서 만든 이름쪽(명함)도 노란 빛깔로 되어 있습니다. 사진 보세요 - 조그마한 헌책방. 지하철 8호선 마지막역인 암사역에서 내려 1번 나들목으로 나와 나온 흐름을 타고 곧바로 끝까지 200미터 즈음 걸은 듯합니다. 그렇게 큰 네거리가 나올 때까지 걸어가니 오른편 언덕길이 나오네요. 그 언덕길쪽으로 가면 구름다리가 있고 구름다리로 건너가면 신암중학교 옆에 있는 상가건물 1층에 예쁜 헌책방 하나를 찾을 수 있습니다. 버스는 569번과 959번 두 대만 지나갈 뿐이라 교통이 썩 좋지는 못합니다. <책벌레> 아저씨는 처음 이 자리에 세들어올 때 사람들이 꽤 지나다니는 듯하고 가게 앞도 넓어서 차대기 좋아 괜찮은 목이 아니겠냐 싶었답니다. 하지만 가게를 막상 열고 보니 퍽 한갓진 곳이고 교통도 좋지 못해 사람들이 찾아오기 쉽지 않음을 느꼈답니다.

나. 먹고살 생각으로 헌책방을 열었는데...

▲1987년에 보성문화사에서 나온 전집 가운데
요즘에도 많이 나오지만 명작선집이나 여러 이름을 달고 백 권이나 이백 권씩 나오는 전집물이 있지요. 가난했던 집안 아이들에게는 `선망하는 대상'이었던 전집물. 그 낡은 전집물을 헌책방에서 볼 때 느낌은 사뭇 다릅니다. 그 애틋함이 좋아 헌책방을 찾는 사람도 퍽 많이 있습니다. 참 사랑스러운 애틋함이니까요.
ⓒ 보성문화사

<책벌레> 아저씨는 "그냥 먹고살려고 열었다"는 헌책방입니다. 하지만 막상 책을 떼오는 일이나 책값 매기는 일은 몰랐으니 그런 여러 가지를 배우려고 다른 헌책방에 `손님'으로 찾아가 책을 사면서 이건 얼마, 저건 얼마쯤 매긴다는 걸 하나씩 배워갔답니다. 더불어 이렇게 헌책방 장사를 하면서 "모든 책에는 저마다 임자가 따로 있더라구요" 하며 어떤 책이든 나름대로 값어치를 갖고 있음도 배웠답니다. 그래서 지난날 <책벌레> 아저씨가 갖고 있던 그림 안내책자(도록) 여러 상자를 그냥 버렸던 일이 참 안타깝더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고요. 자기에게는 그다지 쓸모 없어서 버렸지만, 그 녀석들을 그대로 뒀으면 도록을 찾는 다른 이들에게는 소중한 책자가 될 수 있었을 테니까요.

`헌책방'은 그림 그리는 아저씨에게는 주업이라기 보다 부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아저씨는 그림 그리는 일은 못 하신답니다. 붓을 놓은 지 퍽 되다 보니 다시 붓 잡기가 쉽지 않고 마음을 한 곳으로 모아 그림 그리지도 못해서 힘들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 당신들이 어렸을 적에 읽던 책을 만나면, "와, 내가 찾는 책이 있다~!" 하고 즐거워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게 참 반갑답니다. 그리고 덩달아 <책벌레> 아저씨도 기분이 좋고요. 아무래도 사람 만나고 좋은 책, 바라는 책을 만나 신나 하고 즐거워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책벌레> 아저씨는 다시 붓을 잡기 어렵지 않나 해요.

다. <숨어사는 외톨박이>


▲1979년판 <숨어사는 외톨박이> 책겉장
1990년대에 고침판이 새로 나왔습니다. 돈 많이 버는 출판사에서도 전혀 하지 않은 이 땅 민중들 목소리와 삶을 담아냈던 작업 가운데 하나. 잡지 <샘이깊은물>은 지금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당신들 고장말로 이야기를 담아내며 달마다 꼬박꼬박 그 이야기들을 싣고 있습니다. `내시'부터 `백정'까지 우리 민초 삶을 담은 이 책은 꼭 읽어볼 책입니다. ⓒ 뿌리깊은 나무


<책벌레>에서 <숨어사는 외톨박이> 1권을 찾았습니다. <한상수 엮음-한국민담선, 정음사>도 보고 1987년에 `전집판'으로 나온 <속담풀이>도 하나 보고요. 전집판으로 나온 <속담풀이>는 제가 국민학교 6학년 때 나온 책이군요. 그때 이런 책은 방문판매로 자주 팔곤 했는데, 우리 집도 아버지가 책을 거의 우리들에게 사주지 못해서 전집 하나를 어렵사리 들여놓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박진관-분단의 나라,일월서각(1988)>도 고르고 <조르주 상드 창작동화-말하는 떡갈마누,산하(1991)>도 고릅니다. 박완서 풍자소설 <서울사람들, 글수레(1984)>도 골랐죠. 잡지 <샘이깊은물>도 제가 군대에 있을 때 나온 책으로 다섯 권을 골랐습니다.

생각해 보면 요즈음 헌책방을 하는 사람들도 `숨어사는 외톨박이'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지난날에는 없던 새로운 `외톨박이'라고 할까요? 언젠가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마산에 헌책방을 열었다는 사람 얘기가 신문과 방송에서 들끓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헌책방 일을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는 다시 언론매체에서 듣지 못했지요. 우리 언론은 뭔가 명함을 달고 있던 이가 헌책방을 한다고 하면 `뭔가 취재거리가 생겼다'면서 반짝하는 눈길을 보냅니다. 하지만 그렇게 문을 연 이가 꾸준하게 책방을 열어 사람들을 마주하고 책을 공급하면서 책 문화를 닦도록 이끌지 않아요. 그리하여 `헌책방 장사'를 언론이 자꾸 `숨어사는 외톨박이'가 되도록 만들지 않나 싶습니다.

헌책방도 꾸준한 눈길과 사랑으로 보듬어야 합니다. 썩은 정치판과 경제판 이야기가 날마다 언론에서 도배되어 나오지만 달라지지 못하죠. 하지만 헌책방 이야기는 다루면 다룰수록 더욱 힘을 얻고 아름다워질 수 있지요. 사람들이 헌책방을 찾고 또 찾으면 헌책방은 늘 새로운 힘을 얻으면서 거듭나지요.

라. 책을 그냥 갖고 오던 사람들이

<책벌레> 아저씨는 혼자 일하기에 책을 사러 다니기도 쉽지 않아 책손님들이 바라는 책을 못 갖출 때도 있어 그럴 때면 안타깝고 미안하답니다. 하지만 책방에 꼭 `책을 사러만 가는' 것은 아니지요. 시장에 가서 장보고 구경할 때 모든 물건을 사려고 구경하거나 장보러 가지 않듯 책방에도 꼭 책을 산다기 보다 이런저런 책도 구경하고 사람도 만나러 갑니다.

큰 책방과 작은 책방이 다른 구석은 여기에 있습니다. 헌책방도 크기를 넓게 갖추는 흐름이긴 하지만 크기가 커지면 커질수록 책방임자와 책손님 사이에 의사소통 하는 길은 좁아지지요. 이는 곧 헌책방만이 갖고 있는 `의사소통'이 줄어드는 일입니다. 책방은 `책만 사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곳'이기도 함을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책만 읽으며 사는 게 아니라 일도 하고 놀기도 하고 술도 마시고 이성도 만나듯 책을 마주해야 더 좋지 않을까 해요. 더불어 책은 어디서 굴러떨어진 임(존재)이 아니라 사람 손이 가면서 애틋하고 사랑스레 나온 임인 만큼 책방에서 `사람 없이 책이란 물건'만 덩그러니 있다면 그 또한 썰렁하고 딱딱하기만 하지 않나 싶습니다.

<책벌레> 아저씨 말하길 "예전엔 사람들이 책을 그냥 갖다 주기도 했는데 요샌 그런 게 없어요" 하며 사람들이 연락해서 책을 사러 가면 좋은 책은 다 뒤로 빼놓고 쓰잘데기 없는 녀석만 가져가라고 해서 그냥 돌아올 때가 퍽 된답니다. 더불어 책을 팔 때 무척 비싸게 팔려고 해서 힘들기도 하고요. 물론 값나가도록 산 책은 제 값을 팔면 좋긴 한데, "좀 더 널리 읽히고 다른 사람 손에 좋은 책이 가도록 나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이 줄었습니다. 세상이 하도 수상해 `돈'만이 으뜸이다 보니 헌책방에 책을 팔러오는 사람마다 `본전 이상'을 뽑으려 하죠. 그러면서 그렇게 책을 파는 이들이 다시 책을 살 때는 엄청나게 깎으려 하고요.

헌책방에서 우리가 책을 좀 더 싸게 사고, 좀 더 좋은 책을 살 수 있으려면 자기가 다 본 `좋은 책'을 기꺼이 내놓고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헌책방에서 우리가 만나는 좋은 책들 절반 넘는 거의 모두는 "이미 그 책을 본 사람들이 기꺼이 내놓았기에" 볼 수 있는 겁니다.

사실 `지은이가 사인해서 선사한 책'을 헌책방에서 만나면 어떤 분들은 "선사받은 사람이 너무 했다"고도 합니다. 사실 그렇죠.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하지만 선사받은 책과 자기가 손수 산 책을 굳이 다르다고 가르지 않고 똑같이 `책'으로 생각해서 헌책방에 내놓는 일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선사해준 사람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다 읽었다. 이제 다른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선사한 사람에게도 더 반가울 일이 아니겠느냐" 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선사한 사람도 더 기뻐하지 않을까 합니다. 더불어 책을 팔기 보다 그냥 책을 내놓아 낯모르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내놓은 책의 새로운 임자가 되어 알뜰한 생각을 나누고 앎을 얻도록 하면 그 씨앗이 싹내리고 떡잎을 틔워 우리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마. 일요일은 꼬박꼬박 쉽니다

처음 일요일에 쉴 때 애써 찾아온 손님들이 "왜 일요일에 문을 닫았느냐"는 말씀을 자주 들었답니다. 사실, 직장에 다니는 분들은 짬내서 찾아오려면 일요일뿐이라 일요일에 문을 열지 않으면 서운해 하고 찾아오기 힘들어 합니다. 그러나 <책벌레> 아저씨처럼 책방을 하는 분들도 `직장인'이죠. 넓게 보면. 그렇기에 한 주에 한 번씩 쉬면서 "완전히 몸으로 일해서 골병드는" 헌책방 일을 잠깐 쉬면서 자기 시간도 갖고 고단함도 풀어야 책손님들에게 더 좋은 책을 갖출 수 있도록 힘을 낼 수 있습니다.

간판도 예쁘고 책방 안도 깔끔하고 깨끗한 <책벌레>는 책장 높이가 낮답니다. 보통 헌책방들은 책장도 천장까지 닿고 빽빽할 뿐더러 여러 겹으로 책이 쌓여 있기 일쑤입니다. 아저씨에게 책장을 좀 더 높이 놓으면 어떻겠냐고 여쭈니 아저씨는 좀 트여 있고 넓은 느낌을 주는 게 더 좋다고 합니다. 책방을 좀 더 넓게 하는 편이 자그마한 곳에 책을 빽빽히 놓는 것보다 더 좋지 않겠냐 하시죠. 그래서 명일동쪽으로 새로 자리를 얻어 옮겨가면 좋겠다고 생각하십니다.

<책벌레> 아저씨가 여러 헌책방을 다니며 책방 살림 꾸리거나 책값 매기는 걸 배우면서 책방도 `연륜'에 따라 다 다름을 느끼겠답니다. 그래서 이제 갓 한 해를 살짝 넘긴 자기 헌책방도 많이 배우고 애써야 하겠다고도 하시고요.

<책벌레>에 들어가면 오른편에 아저씨가 그린 그림과 손수 만든 그림틀이 있습니다. 왼편 책장에는 가까이 있는 중고등학교에서 쓰는 참고서들이 주욱 꽂혀 있고 아이들 책이 있으며 안쪽에 일반 책들이 있습니다. 버려지는 사과상자를 책꽂이로 쓴 건 참 알뜰하다고 느꼈습니다. 더불어 저도 나중에 버려진 사과상자가 있으면 주어와 집에서 책꽂이로 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조촐하고 깨끗한 <책벌레>는 우리 헌책방이 시나브로 달라져가면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자리잡는 헌책방 문화를 보여줍니다. 헌책방은 꼭 `이래야 한다'는 틀과 `옛책(고서)을 많이 갖춰야 한다'는 틀도 물론 갖추면 좋지만, 여러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오고 이야기도 나누고 책구경도 하는 자그마한 문화공간으로 자리잡는 모습도 괜찮지요. <책벌레>가 서울 강남-강동권에서 알뜰하고 살뜰한 헌책방으로 자리잡고 아저씨도 아저씨가 좋아하는 그림을 마음껏 그리며 좋아하는 일을 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 <책벌레>는 서울에서 지하철 8호선 암사역에서 내려 1번 나들목으로 나와 신암중학교 쪽으로 걸아간 뒤 구름다리를 건너거나 엘지주유소 앞에서 길을 건너면 됩니다. 광화문이나 종로에서 좌석버스 959번이 있으며 천호동이나 강남에서는 569번 일반버스가 다닙니다. 자가용을 타고 가는 분들은 책방 앞에 차대어놓을 자리가 넓답니다 *

02) 428-6781  /  019-227-1377
 - 아침 11시부터 저녁 10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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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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