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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우리 엄마가 얼마 전 대학에 입학하셨다.
입학원서를 쓰시면서 엄마는,“재원아, 학력에다 뭘 써야 하냐? 내가 중졸이냐, 고졸이냐?”하신다.

“에이, 엄마도. 고졸이지. 그 유명한 ㄷ ㅁ 학교를 우수운(?) 성적으로 졸업했잖아.”
“야, 근데 졸업증명서 떼 오라면 어떻게 하냐? 졸업장도 못 받았는데.”
“졸업 앨범은 받았잖아. 걱정하지 마. 내가 빽 써서(사실 이제는 빽도 없다) 엄마 입학시켜 드릴게!”

엄마가 쓰고 있던 입학원서는 불교계에서 운영하는 사설 불교대학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런 걱정과는 무관하게 엄마는 “합격 처리되었음을 통보합니다”라고 적힌 어설픈 합격 통지서를 받았고 지난 주 토요일 입학식과 함께 그렇게 바라던 대학수업을 받게 되었다.

이날 엄마는 자식들 및 며느리, 사위까지 주욱 앉혀놓고 첫 수업에 대한 소감을 대신해 간단하게 말씀하셨다.
“니들만 대학 나왔다고 까불지 마.”
모두들 크게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설움에 복받쳐 내 방으로 들어왔다. 모두들 놀라 “쟤, 왜 그래?”한다.

우리 세대 어느 부모님 중에서 고생 안한 분이 있겠냐마는 우리 엄마의 고생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건 내가 엄마 자식이고 또 딸이기 때문일 거다.

엄마는 2남 4녀 중 딸로는 막내로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는 바람에 삼촌 둘을 키웠다. 이 덕에 국민학교 입학을 1년 늦게 한 것을 시작으로 국민학교 졸업 1년 후 중학교 입학, 중학교 졸업 2년 후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였는데 스무살을 목전에 두고 고등학교에 입학하셨던 것이다.

그것도 좋은 중학교, 고등학교에 보내줄 테니 “한 해만 쉬었다 학교 가라”는 말에 엄마는 정말인 줄 알고 그렇게 몇 년을 보내셨던 것이다. 물론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도 등록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낮에는 노트공장, 밤에는 수업, 집에 와서는 살림을 해야 했다.

그래도 엄마에게는 꿈이 있었다. 사범대학에 들어가 선생님이 되어 엄마와 같은 처지의 어린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나누어 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이 꿈이 엄마에게는 힘든 생활을 견디는 유일한 힘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엄마는 어렵게 졸업앨범 값을 준비했다. 종례시간에 앨범 값을 내는 엄마에게 담임선생은 “등록금도 제대로 못 내서 졸업도 못하는 주제에 앨범은 무슨 앨범이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휴지조각이 되어 버린 돈들은 엄마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교실 여기저기를 나뒹굴었고 그 기억은 차마 ‘고졸’이라고 말 못할 사연으로 엄마의 고등학교 학창시절의 마지막 장면이 되어 버렸다.

나중에 엄마는 친구들한테 앨범만 전해 받았다. 졸업장을 받지 못한 엄마는 대학은 물론 변변한 직장 하나 구하지 못하고 (당시 고졸이면 웬만한 곳에는 취직이 다 됐다) 가사일만 돌보다가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셨다.

아버지는 결혼한 후 얼마 안돼 사업 실패라는 고배를 마셨고, 내가 거의 다 자랄 때까지 엄마가 돈 벌러 다녔다. 큰 오빠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 친척들의 축하 메시지란 고작 ‘입학만 하면 뭐 해?’였다. 내가 국민학교, 중학교 다니는 동안 우리 집은 우리 반에서 ‘가난한 집’하면 다섯 번째 안에 들 정도로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엄마는 힘들게 살아왔지만 자식 셋을 모두 대학을 졸업시켰다. 이제 살 만하다 싶어졌는데 그것도 복이라고 너무나 쉽게 아버지를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셨다. 이승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아버지는 5개월이 넘도록 식물인간 상태로 엄마의 손길에 의지하다가 13살 연하의 아내를 남겨두고 연기처럼 그렇게 떠나가셨다.

작년 여름 엄마의 생신을 앞두고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다. 우리 엄마 생신을 어떻게 축하해 드릴까였다. 결혼하기 전 마지막 생신이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제일 필요한 건 뭘까. 물론 현찰이기는 하지만 현찰보다 값진 것. 그래 졸업장을 수여하자.

나는 엄마가 다녔던 학교에 전화를 했다. 서무과 직원과 통화를 했더니 남은 등록금을 다 내면 졸업장을 받아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2, 3기분 정도를 내지 않았다고 하니까 현재 등록금 액수로 한 70만원 정도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난 엄마가 졸업장으로 무슨 이력을 쌓거나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니 성의 표시만 하면 안 되겠냐고 되물었고 직원은 당시 생활기록부를 찾아놓을 테니 다시 전화를 하라는 것이었다.

잠시 후 다시 전화를 걸었다. 막 떨렸다. 서무과장과 다시 통화했다. 서무과장의 한마디.
“당시 졸업이 되셨는데요. 기록에 미납금이 나와 있지 않으니까, 먼저 말씀하신 대로 3기분 값 가져오시면 졸업장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근데, 지금 그까짓 졸업장 뭐가 필요하죠?”

새벽에 화장실을 가다 보니 엄마는 벌써 일어나 공부하고 계신다. 큰 오빠가 대학원을 졸업하던 해부터 일을 그만 두시고 수지침, 역학공부를 해 오시던 엄마가 늦게나마 만학의 열을 올리고 계시는 것이다. 당신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셨는지도 모르고.

난 잘 정리된 여건에서 그냥 하루를 보내고 있다. ‘세상이 왜 이래’라는 말 못할 한탄과 환갑 때는 졸업장을 꼭 수여해드려야겠다는 마음만 먹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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