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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오래된 우스개중에 이런 것이 있다. 사오정이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러다 삼장법사를 만나 부딪혔다. 사오정이 "야! 너 몇 살이야?" 라고 물었다. 그러자 삼장법사가 "난 중이다..."라고 대답했다. 사오정의 대답은 "이게 까불고 있어 난 중3이야!"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썰렁한' 이야기이다. 요즘 이런 이야기하면 늙다리 취급받기 십상이지만 사실 이 사오정 유머는 우리 사회의 전통(?)인 '나이 서열주의(ageism)'를 잘 드러내고 있다.

길을 가다 두 사람이 부딪힌 경우, 그 경위가 어떻고 누구에게 얼마만큼 책임이 있으며 누가 무엇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를 따지기 전에 "너 몇 살이야?"부터 외치고 보는 것이다.

일단 상대방이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면 곧장 "그래 너 나보다 어리잖아. 나이도 어린 게 어디서 말대꾸야?"로 이어진다. 여기서부터는 논리고 잘잘못이고 없다. 무조건 나는 위, 너는 아래다.

여기에는 합리적인 의사 판단이나 논증을 떠나 나이 많은 사람이 나이 적은 사람보다 '윗사람'이므로 무조건 나이 많은 사람의 말에 따라야 한다는 식의 논리 아닌 논리가 깔려 있다. 즉 서열과 비논리가 이성과 논리를 전복하는 것이다.

사실 이거 동학농민혁명 나던 적의 봉건적 사고방식이다. 한데 이러한 나이서열주의가 한국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을 뿐 아니라 소위 이성과 합리를 진리로 여긴다는 대학도 여기서 예외가 아닌 것 같다.

확실히 "너 몇 살이냐?"는 한국의 고유문화 반열에 오를 만하다.

토론 잘 하다가 갑자기 "근데 너 몇 살이야?"나 "너 몇 학번이야?"를 들먹이는 사오정들을 대학에서 종종 만날 수 있다. 마치 너와 나의 나이 앞에 우리의 합리성은 무의미하다고 선언하는 것 같은 "너 몇 살이야?"의 외침이 있고 나면, 그때부터 주장과 논거의 옳고 그름이나 서로의 잘잘못과 책임을 따지던 자리는 임검 때 주민증 까는 나이트가 되고 만다.

"이게 까불고 있어! 나이도 어린 게 어디서 말대꾸야? 어른 말하는 데 왜 자꾸 토를 달고 그래?" "선배가 말하면 좀 고분고분 들어라!"

이때 나이 어린 쪽이 고분고분 서열에 따른 대접을 해준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경우엔 곧 삿대질과 욕지거리가 쏟아져 나오기 마련이다.

이런 사오정들을 상대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들의 오류를 조목조목 밝힘으로써 그들의 황당함과 그들의 어처구니없음을 가르쳐준다. 당신이 다소 친절한 인간형에 속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험을 통해 그것이 헛수고라고 느낀 나같은 인간형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그저 애처로움을 듬뿍 담은 시선을 돌려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시선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사실 그들의 "너 몇 살이야?"는 "내가 졌소. 논리? 나 그런 거 잘 몰라. 근데 나 나이도 많이 먹었고 체면도 있잖아. 좀 봐주라"는 항복선언에 가깝다.

제시할 근거나 논리가 얼마나 없으면, 하고 많은 것들 중에 '나이'를 들고 나오겠는가. 그래서 그들이 "너 몇 살이야?" 선언을 하는 순간 나는 애처로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의 그 빈곤한 개념이, 그들의 그 대책없는 사오정 정신이, 그리고 그들과 내가 같은 학문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현실이 나의 마음을 착잡하게 한다.

물론 내가 난데 없이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6년째 다니고 있는 이 학교의 학부와 대학원에서도 종종 이런 사오정족 선배, 후배, 동기들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사오정족들이 내 글을 읽는다면, 그리고 정말 만약에, 이 글의 내용을 그들이 제대로 이해한다면,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이 몇 살 더 많은 거 자랑 아녀. 제발 철 좀 들어라.' 하지만 그들이 내게 던질 말은 오직 하나. "건방진 놈, 도대체 너 몇 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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