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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절이 지나도록 꺽정이는 먼 산만 보고 있습니다.
암캐는 내놓고 구애를 하지만 꺽정이는 여전히 시큰둥 합니다.
오늘도 어제처럼 그렇게 끝나고 말 것 같습니다.
꺽정이의 봉순이에 대한 순정은 저렇듯 변함이 없습니다.

노파는 꺽정이를 며칠간 자기 집에 데려다 놓으면 어떻겠느냐고 합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자기네 개와 붙을 거라고 며칠만 빌려달라고 사정합니다.
나는 냉정하게 거절합니다.
그래봐야 꺽정이는 그집 개와는 교미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암캐는 더욱 대담한 포즈를 취합니다. 궁둥이를 꺽정이 코앞에 들이밀고 비벼댑니다. 꺽정이는 한번 킁킁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고 딴청만 피웁니다. 이곳에 찔끔 저곳에 찔끔 오줌만 갈겨대다 이내 덤불 속에 자리잡고 누워 버립니다.
그럴수록 암캐는 몸이 달아 꺽정이에게 매달립니다.
꺽정이의 성기를 핥고 빨고 온갖 교태를 다 부려보지만 꺽정이는 돌부처처럼 끄떡도 않습니다. 참 대단한 인내심입니다.
저 정도면 신통(神通)했다 할만 합니다.

이미 봉순이와 합방하여 다섯 마리의 새끼까지 만들어 냈으니 생식능력에 문제가 있어서는 아닐 것입니다. 봉순이가 발정났을 때는 3일 동안 무려 다섯 번의 교미를 했으니 정력이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보기에도 근육질의 탄탄한 몸매가 대단한 정력가처럼 보이니까요.
암캐가 마음에 안들어서 그런 걸까. 하지만 그도 아닌 듯합니다.
암캐의 인물이나 몸매도 저 정도면 빠지지 않습니다.

내가 꺽정이의 봉순이에 대한 사랑의 지순함을 처음 확인한 것은 작년 가을이었습니다. 한 어미 뱃속에서 함께 나온 남매간인 봉순이에게 꺽정이는 틈만 나면 구애를 했습니다.
하지만 봉순이는 꺽정이가 성에 차지 않는지 꺽정이를 철저하게 무시해 버리곤 했었지요.

그러다 봉순이가 발정이 났습니다.
그때도 봉순이는 꺽정이가 접근하려면 으르렁거리며 꺽정이를 물리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달밤 하얀 진돗개 한 마리가 찾아와 봉순이와 사랑을 나누다 갔습니다. 그 흰개는 이미 상일이 형네 암캐 다롱이와 살림을 차리고 살던 놈이었습니다. 다롱이가 묶여 있는 틈을 타 바람처럼 다녀간 것이지요.

그 밤이 지나고 다음날 아침부터 꺽정이는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갈수록 꺽정이는 야위어 갔습니다.
꺽정이는 그렇게 딱 일주일간의 단식으로 봉순이에 대한 배신감과 나의 무정한 처사에 항의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6개월 뒤 봉순이가 두 번째 발정기에 접어들었을 때 나는 더 이상 꺽정이의 애절한 눈빛을 비켜 갈 수 없었습니다.

꺽정이가 다른 암캐와의 교미를 마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러니 더욱 신통하지요.
지난 여름 고추쟁이 영감이 암캐를 끌고와 교미를 시켜 볼려고 하루종일 꺽정이 옆에다 묶어 놨을 때도 상황은 지금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 암캐는 더 노골적이었지만 고추쟁이 영감은 저녁무렵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자기 개를 끌고 가야 했습니다.
몸이 달 대로 단 저 암캐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오늘도 꺽정이의 순정은 흔들림이 없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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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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