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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제가 다녀온 독일의 미술관 하나를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제가 한국에 있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모두 둘러본 건 아니지만 이 미술관을 거닐면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미술관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이 단지 멋진 미술관이라는 차원을 넘어 미술 이외의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문화마인드를 가진 공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갔던 그 미술관 이름은 '인젤 홈브로이히(Insel Hombroich)'라고 하는데 독일 뒤셀도르프(Duesseldorf)시에서 남서쪽에 자동차로 약 40분 가량 떨어진 작은 도시 '노이쓰-홀쯔하임(Neuss-Holzheim)'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선배의 추천으로 그냥 길을 나섰던 저는 그저 조금 크고 현대적인 미술관을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 도착해서 보니, 그런 큰 건물은 눈에 들어오질 않았는데 여기서부터 미술관에 대한 저의 상식이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작은 단층짜리 갤러리 크기 정도의 건물이 있어서 들어갔더니 그곳이 다름 아닌 매표소였습니다. 주말이기도 하고 또 늙은 학생(?)은 할인이 안된다는 매표원의 말에 씁쓸해 하며 25마르크(약12500원)를 입장료로 지불하면서 내심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미술관으로 가는 문을 열면서 곧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미술관 중의 하나 (타데우스 파빌리온)
@백종옥
입구를 들어서자 내 눈 앞에 펼쳐진 것은 거대한 현대 미술관이 아닌 비산비야(非山非野)의 지형에 크고 작은 강과 습지가 있는 아름답고 고즈넉한 숲과 목초지였습니다. 그리고 매표소에서 무심히 집어 들었던 미술관 안내장에 그려진 약도를 보면서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이 미술관은 하나의 미술관 건물이 아니고 20헥타의 큰 공원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미술관과 작가의 작업실, 음악회 등을 여는 행사용 건물과 구내식당등 16개의 건물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젤 홈브로이히(Insel Hombroich)'라는 이름에 '인젤(Insel '섬'이라는 뜻)'이라는 단어를 쓴 이 미술관 이름이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이 곳엔 실제로 물로 둘러싸인 섬이 있기도 합니다.(약도 사진 참조)

여기서 잠깐 이 미술관이 생겨난 배경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미술관 '인젤 홈브로이히(Insel Hombroich)'는 1983년에 '뮐러'라는 미술품 수집가가 처음 계획하였다고 합니다.그는 아름다운 자연속에 조화롭게 있는 공공 미술관과 작가들을 위한 작업실을 계획하고 오래된 건물 '로자하우스(Rosa Haus)'와 건축가 '헤어리히(E.Heerich)'교수가 지은 3개의 새건물로 그의 생각을 현실화 시킵니다.

그리고 그후 역시 계속되는 건물의 신축과 작품수집이 이어졌고 또한 헤르쯔펠트, 그라우브너, 헤어리히(Anatol Herzfeld , Gotthard Graubner,Erwin Heerich)등 교수나 작가들도 이곳 작업실로 입주하게 됩니다.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이곳에서 1983년 이래로 미술분야 외에도 건축,음악, 문학, 환경, 과학, 철학, 종교, 경제, 정치 등 다방면의 행사가 함께 이루어졌다는 점인데 94년부터는 이 미술관 근처 지역으로 예전의 군사시설이었던 '라켓텐슈타치온(Raketenstation)'에 여러나라에서 온 다방면의 예술가나 학자들이 체류하고 작업하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들을 만들어 활성화시키고 있어서 '자연과 예술의 조화'라는 마인드 아래 우리 삶의 여러 분야를 융섭(融攝)해 내려는 의도가 느껴집니다.

미술관 '인젤 홈브로이히' 약도-홈브로이히 안내 홈페이지 자료
결국 이러한 활동들로 인해 96년에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Nordrhein-Westfalen) 주정부와 노이쓰(Neuss)시의 도움으로 '인젤 홈브로이히 재단(Die Stiftung Insel Hombroich)'이라는 문화재단으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제가 그날 보고 느낀 미술관이야기로 돌아가서 특히 몇 가지 생각나는 점을 이야기 해드리겠습니다. 우선 이곳 미술관 건물들은 1층이나 높아야 2층 정도의 아담한 벽돌 건물들로 비산비야의 이 공원지형에 우뚝 솟아나지 않고 묻혀 있어서 전체적인 전망을 해치지 않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편안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미술관과 미술관 건물을 연결하는 숲길을 야외조각품들을 보며 걸었던 점이 좋았습니다.이 길들은 아주 작은 자갈들이 깔린 위로 낙엽이 쌓여 있었는데 보통 다른 대형미술관에서 수많은 작품들을 보느라고 힘들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마치 한적한 공원을 산책하다가 자연스럽게 미술품들과 미술관들을 만나는 듯한 정취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의아할 정도로 놀라웠던 점은 가족 단위로 온 많은 관람객들을 통제하는 관리자들이 각각의 미술관에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과 작품을 설명하는 이름표들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그렇다고 이 곳에 보잘 것 없는 작품들이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이 미술관들에는 중국의 한, 당, 명대와 금나라 시대 수집품들,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등의 민속미술품 등을 비롯해 슈비터스, 아르프, 피카비아, 마티스, 쟝 포트레, 칼더, 이브 클라인, 타데우스등의 작품들 그리고 브랑쿠지, 세쟌느, 쟈코메티, 클림트, 로트렉, 램브란트 등 유명작가들의 판화와 드로잉 등이 있습니다.

이런 작가들의 작품들이라면 삼엄한(?) 경비를 펼칠 만도 합니다만(물론 경보장치가 있을 것으로 짐작됨) 통제하는 사람이나 작품 이름표가 없어서인지 관람할 때 너무나 마음이 편했고 작품들이 더욱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물론 직접 통제하는 사람이 없어도 미술관 안은 평화로운 분위기였습니다.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것은 미술관 내부는 모두 자연채광으로 조명을 대신해서 눈의 피로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모든 게 자연스러웠습니다. 이렇게 작품을 감상하며 이리저리 숲길을 거닐다 보니 어느덧 배가 출출해졌습니다.

구내식당 @백종옥
그래서 마지막으로 들린 곳이 구내식당이었는데 이곳은 셀프서비스를 하는 작은 식당입니다. 여기서는 맛있는 빵, 감자, 계란, 치즈, 사과, 커피 등을 무료로 자유롭게 먹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구내식당 이용료는 이미 미술관 입장료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문닫기 전 이 미술관 공원 안에 있는한 이 식당을 몇 번 사용해도 무방합니다.

창밖의 풍경을 보면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미술관을 나설 즈음 이미 날이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정말 25마르크가 아깝지 않은 기분좋은 산책이었습니다.

물론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이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의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입장료가 자주 찾기에는 좀 비싸다는 것과 또한 미술관을 채우는 내용이 너무 소장품 위주라는 것인데 이는 젊은 작가들을 위한 기획초대전 등이 많이 열리기를 바라는 관객들의 바람을 반영하는 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술관 '인젤 홈브로이히'는 지금도 계속 성장단계에 있고 여러 가지 발전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그래서 이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더욱 이상적인 미술관으로 그리고 건축, 음악, 문학, 환경, 과학, 철학, 종교, 경제, 정치 등 우리 삶의 여러 모습들을 문화적으로 숙성시켜내는 공간으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예감을 갖게 됩니다.

끝으로 전문인과 시민들 모두에게 편안한 공간이 될 수 있는 자연 속의 미술관이 우리나라에도 많이 생겨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독일여행시 대도시의 큰 미술관을 보는 것도 좋지만 '인젤 홈브로이히' 같은 자연속의 미술관을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미술관 '인젤 홈브로이히'에 대한 자세한 안내 홈페이지는
http://www.neuss.de/stadtportrait/sehenswertes/hombroich.html입니다.

그리고 제가 찍은 '인젤 홈브로이히'에 대한 더 많은 사진(27점)을 보고 싶은 분들은 제 홈페이지( http://my.dreamwiz.com/maler100/ )의 '산책'코너에 있는 '사색'란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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