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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에서 헌책방이란

서울엔 사람도 많고 갈 곳도 많고 헌책방도 많습니다. 이제는 그 많던 헌책방도 많이 줄었지만 거리를 이루던 곳에 몇몇 흔적처럼 마지막으로 남은 곳들도 있고 지역 헌책방으로 튼실히 자리잡는 곳도 있지요. 서울역에는 하나 남은 헌책방 <서울북마트>가 있습니다.

서울엔 볼 것도 많고 기릴 것도 많습니다. 기릴 것 가운데엔 '이순신 장군 동상'도 있고 얼마 앞서 자신이 그토록 섬기고 모신 일장기에 둘러싸인 채 자신이 민중을 목매달 때 쓰던 그 밧줄로 목매달려 내동댕이쳐진 박정희 동상도 있지요. 그리고 서울역 대우건물 뒤 힐튼호텔 뒤 백범 공원에 있는 김구 어르신 동상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 동상은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서 바라볼 수 없는 곳에 있습니다. 광화문 네 거리 큰길 복판에 자리하고 있어서 우러름을 받는다기 보다 온갖 자동차 매연으로 해마다 한 번씩 '목욕당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죠. 박정희 동상은 우리 겨레에 끼친 `좋음' 보다 `나쁨'이 훨씬 많기에 민중들 손에 이끌려 내동댕이쳐졌습니다.

백범 동상은?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를 만큼 외진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 동상 못지 않게 사람들이 가까이 하기엔 멀고 찾아가는 길도 어수선하며 높직한 계단을 땀 뻘뻘 흘리면서 올라가야 겨우 만날 수 있답니다.

아무리 우러를 만한 이순신 장군 동상이지만 사람이 가까이 갈 수 없는 곳에 있기에 `화석'이 됩니다. 사람들이 찾아가 쉬면서 바라보고 우러를 수 있는 공원에 있는 백범 동상이지만 찾아가는 길이 너무 힘들어 백범 동상은 `먼산바라기'가 되고요. 좋은 보다 나쁨을 많이 저질렀고 독재정권에 빌붙으려는 이들이 알랑방구뀌며 바친 박정희 동상은 역사에 씻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기에 우리들 손으로 목매달아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헌책방은 어떤 운명?

2. 서민과 가까운 헌책방이건만

어쨌든 책값이 싼 헌책방은 서민과 가까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값비싼 옛책도 구경만이 아닌 `만지고' `살 수도 있다'는 대목도 서민과 가까이 있다는 이야기로 풀이할 수 있지요. 더불어 아무리 오래 버팅기며 책을 보아도, 돈이 없어 책은 못 사고 책구경만 하고 가도 `괜찮음'도 서민과 가까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런 `서민 문화' 헌책방은 서민들이 오히려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깨끗하고 새로 나온 책'만을 바라는 탓일까요? 책을 굳이 읽으면서까지 자기 자신을 거듭날 까닭을 몰라가는 사회 분위기 나날이 깊어가는 탓일까요? 볼 만한 책이 없는 탓일까요.

공교롭게도 <서울북마트>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1974년에 펴낸 <국민회의록 5집>을 보았습니다. `서시'는 `미당 선생'이 쓰셨더군요. 아. 우리 미당 선생. 얼마 앞서 <중앙>에 미당 선생을 취재한 큼직한 기사를 멀거니 보았습니다. 서울 어느 백화점에선 미당 선생을 기린다며 그이가 낸 문집을 모아서 전시한다고 저에게까지 전화해서 자료가 있느냐고 묻더군요. 여유있게 물어 봤다면 `박정희 유신독재 찬양하는 기관지에 서시를 낸' 이 <국민회의록 5집>을 사다가 빌려 줄 수 있었을 텐데.

3. 한갓진 헌책방

서울역 언저리에 학원이 넘치고 학생들도 붐비던 때, 헌책방도 붐비고 장사가 잘 되었지요. 그러나 날이 갈수록 서울역 언저리는 찬바람만 붑니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찬바람이 불고 봄가을에도 따뜻한 햇볕이 들지 않지요. 서울역 언저리를 둘러싸고 햇볕이 길거리에 드리우지 못하게 막는 높직한 건물 탓일까요? 서울역 앞에 늘 서 있는 열 대도 넘는 닭장차가 서울역 언저리 분위기를 을씨년스럽게 만든 탓일까요?

한갓지면 책을 보기 좋습니다. 책을 보지 않더라도 마음을 가다듬고 살아가는 내 모습을 돌아보기 좋지요. 헌책방에 들어오면 바깥 시끄러운 소리와는 문을 걸어 잠급니다. 서울역 앞 차들이 씽씽 달려 시끄러운 곳임에도 <서울북마트>에 들어와 문을 닫으면 차소리가 들리지 않더군요. 그러나 너무 한갓진 바람에 홀로 책을 살피고 읽다 보면...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로 바글바글해서 숨이 턱턱 막히던데. 길거리에선 어깨를 툭툭 치고 지나가는 사람도 많던데. 왜 헌책방에선 사람에 치여 숨이 턱턱 막히거나 어깨를 툭툭 치고 지나가는 사람을 못 만나는지. 허허 참.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한갓진 헌책방이지만, `앞으로는' `좀 있으면' 조촐히 붐비리라 믿습니다.

4. 때가 오면 그대여

<서울북마트>에서 책을 두 권 고르고 나왔습니다. 하나는 <배해수-한국어내용연구 1, 국학자료원(1994)>이고 둘은 <정정순-때가 오면 그대여, 풀빛(1985)>입니다. <한국어내용연구 1>은 한 권이 더 있군요. `낱말밭 이론'에 따라 우리 말을 공부하는 분이라면 아주 볼 만한 책입니다.

정정순 씨는 양성우 씨 아내입니다. <때가 오면 그대여>는 유신 때 박정희가 옥에 가둔 탓에 헤어지고 만 두 가시버시가 주고받은 편지와 아내 정정순 씨가 남편을 그리며 쓴 일기를 모은 책이지요. 책이름 `때가 오면 그대여'는 유신독재라는 어두운 때를 이겨내고 밝은 나날을 맞이하면 헤어진 둘이 기쁜 눈물을 흘리며 다시 만날 날이 있으리라는 희망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즐겨 찾고 `서민과 가까우나 서민이 그다지 잘 찾아가지 않는' 헌책방도 `때가 오면 모두가' 자연스럽게 찾아가는 곳이 될 수 있겠지요.

믿음이 있으니. 그리고 `관심'이 있기에. 헌책방에도 `때'가 있고 그 `때'가 오면 우리 모두 즐겁고 환한 얼굴로 책방에서 마주할 수도 있겠죠.

덧붙이는 글 | * <서울북마트>는 서울에서 지하철 1호선과 4호선에서 내려서 찾아갈 수 있습니다. 서울역 앞을 지나가는 버스도 많으니 버스안내판에 `서울역'이 쓰인 버스면 아무 버스나 잡아타도 됩니다. 서울역에서 남영동, 용산쪽으로 걸어가면 됩니다 *

전화 : 02) 701-8327 / 017-365-3432 / 012-1871-8327

* <헌책사랑> 13호를 냈습니다. 헌책방 소식지를 받아보고 싶으신 분은 연락해 주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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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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