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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옆에서', '자화상' 등 민족시인 고은마저도 한때 그의 시에 빠져들게 했다는 당대 한국 최고의 시인인 미당 서정주가 요사이 조선일보에 계속 소개되고 있다.

조선일보의 글을 읽어 보면 당대 최고의 시인인 그가 한국을 떠나 미국의 큰아들 집으로 이주한다는 내용으로 기사의 주 내용은 그처럼 눈부시게 모국어를 아름답고 풍성하게 했던 이가 모국을 떠나는 게 아쉽다는 그것이다.

서정주, 그런 그가, 우리 청소년들이 시험공부를 위해 국어책에서 위대한 한국시인으로 만나는 그가 일제 말기에 그 눈부신 재능을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찬양과 황국신민화 정책에 대한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한 이 땅의 창창한 조선 청년들에게 일본 천황을 위해, 저 간악한 일본식민지 전쟁에 나가서 아까운 목숨을 기꺼이 버릴 것을 주장하였고, 일본 군대의 대단한 활약상(?)을 미개한 조선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종군기사를 썼던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럼 이쯤에서 그가 썼던 대표적인 시 '마쓰이 히데오'를 감상해 보자. 가미가제라는 자살 특공대로 활동한 조선청년의 활약상을 숭고한 애국행위로 대단한 미사어구로 찬양한 1944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발표한 미당 서정주의 시이다.

마쓰이 히데오 !

그대는 우리의 오장(伍長) 우리의 자랑.
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 사람
인씨(印氏)의 둘째 아들 스물한 살 먹은 사내

마쓰이 히데오 !
그대는 우리의 가미가제 특별공격대원
귀국대원

귀국대원의 푸른 영혼은
살아서 벌써 우리게로 왔느니
우리 숨 쉬는 이 나라의 하늘 위에
조용히 조용히 돌아왔느니

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
정성껏 만들어 보낸 비행기 한 채에
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간 내리는 곳
소리 있이 벌이는 고흔 꽃처럼
오히려 기쁜 몸짓 하며 내리는 곳
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

수백 척의 비행기와
대포와 폭발탄과
머리털이 샛노란 벌레 같은 병정을 싣고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려쳐서 깨었는가?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장하도다
우리의 육군항공 오장 마쓰이 히데오여
너로 하여 향기로운 삼천리의 산천이여
한결 더 짙푸르른 우리의 하늘이여

서정주의 <오장(伍長) 마쓰이 송가(頌歌)> 부분

- 민족문제연구소(www.banmin.or.kr)에서 발췌 -


참으로 대단한 시인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에 전쟁에 아까운 조선청년의 목숨을 이토록 아름다운 어구로, 풍성한 언어로 미화할 수 있다니, 그는 분명 한국 최고의 시인이 틀림이 없다.

그런 그가 그토록 사랑한다는(?) 조국을 등지고 아들이 사는 미국으로 떠날 계획이란다. 여기서 그의 친일행적 이외에 이승만 정권에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전두환 정권에 빌붙었던 행동은 이야기하지 않겠다. 다만 이토록 대단한 친일행적을 한 그가 조국을 떠나 미국으로 간다니....

기자는 차라리 조국을 떠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그의 제2의 조국, 일본으로 가는 것도 좋을 듯하다. 하지만 어느 곳으로 가더라도 이제는 민족 앞에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사죄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조국 광복을 위해 이름 없이 사라졌던 독립투사들에 대한 최소한의 참회일 것이다. 민족 앞에 참회, 그와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에게 바랄 수 없는 것일까?

덧붙이는 글 | <조선일보에 난 서정주 관련 글>

지팡이 짚고 언덕 오르는 미당 보고 싶다 

아직도 서정주에 대해 더 할 수 있는 말이 남아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아직도 그에 대해 덜 한 말이 남아 있는 것일까. 지난 세기 동안 그의 이름은 한 개인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이기를 넘어 사실상 한국시와 동의어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시에 바쳐진 무수한 헌사와 감동의 언어를 상기해보라. 누가 뭐라해도 그는 오랜 기간에 걸쳐 시를 쓰는 이들에겐 막강한 정부였고 시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겐 둘도 없는 정부였다. 

그러나 최근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그의 근황에 대한 보도에는 단순히 한 시대를 대표하는 원로 예술가에 대한 예우의 차원에 그치지 않는, 뭐라고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정서적 자력이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부인과 사별한 후 그가 어쩌면 모국어의 산지인 이 땅을 영원히 떠날지도 모른다는 소식은 그 자체로 슬프고 안타까운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시와 일상이 박제화된 문학사적 유물이 되어버린 것이 아니라 아직도 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자석으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서 서정주, 그는 아직도 현재형의 시인이며 한국시는 본격적인 ‘서정주 이후’의 시대를 개막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의 정황이 상징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다고 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소설에서의 이광수와 더불어 시에서의 서정주는 20세기 한국문학의 ‘영광이자 상처’이다. 그들이 한 개인으로서 내비친 여러 인간적 약점과 실수들은 그들의 문학적 성과에 적잖은 그림자를 드리운 바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작품을 통해 살아 남았으며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멸을 약속받고 있다. 문학 이전이나 이후의 영역에서 서정주를 비판하기란 쉽다. 하지만 적어도 제대로 된 비판이라면 그것은 서정주의 시를 과녁의 중심에 놓는 비판이 되어야 할 것이며, 서정주의 시적 성과에 대한 응분의 인정과 더불어 이루어지는 비판이어야 할 것이다. 

서정주의 시는 그 이전의 한국시에 대한 반란으로부터 출발해서 한국시의 새로운 틀을 구성하는 데 성공했고 그리하여 그것에 도전하는 새롭고 다양한 반란세력의 등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화사집’에서 선보인 질풍노도의 언어와 상상력은 우리 시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미개척의 신대륙을 열었으며, ‘귀촉도’에서 ‘서정주시선’과 ‘신라초’를 거쳐 ‘동천’에 이르는 유현한 동양정신의 탐색은 한국어가 창출할 수 있는 희열의 최대치를 경험케 했고, 이어지는 ‘질마재 신화’나 ‘떠돌이의 시’의 시편들 또한 그의 언어가 가 닿는 모든 사물이나 경험을 시로 변환시키는 놀라운 연금술을 과시했다. 어느 정도 문학적 평가가 유보적일 수밖에 없는 ‘기행시’나 ‘산시’의 경우에서도 시인의 자연적 연령과 상관없이 여전한 녹슬지 않은 언어 감각과 활달한 상상력을 맛보는 기회를 풍성하게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서정주라는 산맥이 거느린 다채로운 시의 봉우리와 골짜기들은 명실공히 ‘시의 승리’라는 말로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는 일대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라는 도저한 고백으로부터 시작한 그의 시는 고상함과 비속함, 진지함과 익살맞음, 혼돈과 질서, 이 대립적인 영역의 경계선을 횡단하며 그때마다 주어진 공간과 시간을 전도하는 카니발적 세계 감각을 일깨워주었다. 그의 시를 읽다보면 바깥이 안으로 밀려들어오고 안이 바깥으로 밀려나가는 시공간의 착종현상을 종종 경험하게 되는데 이 역시 일상적 대립과 분리가 무화된 초월적 세계에 대한 희구이자 차원돌파의 의지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에 가득찬 전통적인 민간전승의 요소 또한 단순히 사라져가고 잊혀져가는 풍물의 재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곳의 실재성을 부정하고 상상 속에서 세계를 다시 주조해내고자 하는 창조적 욕망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시는 모험의 언어가 곧 언어의 모험이 되어버린, 우리 시의 희귀한 예로 자리잡고 있다. 

지금도 가끔씩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다. 대학 시절 시창작 시간. 강의실 옆 복도 창가에 서 있으면 저 아래 멀리서 서정주 시인이 파란 와이셔츠에 베레모를 쓴 멋쟁이 차림으로 단장을 짚고 느릿느릿 분수대 옆을 지나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한참 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옆의 복학생이 내뱉듯이 말했다. 저 전라도 문딩이! 그 말은, 표현의 무례함에도 불구하고, 그 시인에게 바치는 최고의 애정의 표시였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남진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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