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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하탄의 주거 여건에 관한 얘기가 나온 김에 앞으로 뉴욕에 올 계획이 있거나 뉴욕에 친지 등이 살고 있거나 해서 또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뉴욕 생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 맨하탄의 주거 여건에 대해 좀 더 쓰기로 하자.

맨하탄은 생활하기에 참 편리한 곳이다. 맨하탄의 어느 곳이든지 대개 사방 두세 개 또는 서너 개의 블록이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하나의 소도시처럼 되어 있다. 그 소도시의 어느 곳엔가 식품점, 빵집, 청과상, 꽃집, 약국, 문방구, 철물점, 이발소, 미용실, 세탁소, 식당, 술집, 뉴스 스탠드, 주차장, 영화관, 공원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상점이나 시설이 있기 마련이다. 맨하탄은 미국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자가용이 없이도 전혀 불편이 없이 일상적인 삶을 꾸리는 데 아주 편리한 곳이다.

게다가 맨하탄의 각 지역을 이리저리 잘 연결시켜주는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소도 많아서 출퇴근에도 아주 유리하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각종 박물관과 예술 공연이 열리는 극장이 있어 문화생활을 즐기기에도 좋다. 맨하탄은 도시생활의 유리함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아마 이것이 주거지로서 맨하탄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맨하탄에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맨하탄에 많이 몰려들고 맨하탄의 집값이나 집세가 중산층이나 서민이 부담하기에는 너무 비싸지게 된다. 이 점이 주거지로서 맨하탄이 안고 있는 결정적인 흠이며 역설이다. 맨하탄은 살기에는 좋지만 살기는 어려운 곳인 것이다.

그래서 본래 자산가이거나 벌이가 아주 좋은 사업가나 전문직 종사자가 아니면 맨하탄에 주거환경이 좋은 곳에 여유 있는 거주공간을 마련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구입에는 수십만 달러에서 수백만 달러가 필요하다. 우리와 같은 전세제도는 아예 없고 월세제도만 있는 데 좀 여건이 좋은 곳에 위치한 괜찮은 아파트면 월세가 엄청나다.

위치 좋은 곳의 잘 갖추어진 아파트의 경우, 침실이 따로 없이 부엌과 리빙룸만 있는 스튜디오가 2천 달러(2백2십만원)를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침실이 하나에 리빙룸, 식당, 화장실이 딸린 원 베드룸은 3-4천 달러 하는 것이 보통이고, 여기에 침실이 둘이면 4천 내지 5천 달러는 주어야 한다.

전망 좋은 곳에 너댓 개의 침실과 서너 개의 화장실을 갖춘 고급 아파트의 경우에는--독자 여러 분, 놀라지 마시라!--월세가 무려 1만 달러를 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리 돈으로 1천 1백만원이 넘는 액수니 월 100만원 봉급자의 1년치 수입이 한달치 집세에 불과한 것이다. 이 값이 믿어지지 않으면, 뉴욕 타임즈 최근호 아파트 렌트 광고나 온라인 아파트 렌트 정보 사이트서 여러 분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시라. 맨하탄은 부동산 소유주의 천국이고 임차인의 지옥이다.

이런 맨하탄에도 아파트 임대료가 아주 싼 지역이 있기는 있다. 바로 가난한 흑인이나 히스패닉이라 불리는 중남미계 사람들이 주로 사는 할렘 지역이다. 이곳에서는 투 베드룸도 월 천 달러 이하 심지어는 월 5-6백 달러에 임대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곳은 위험하고 지저분하기 때문에 아파트 임대료가 싸도 거기에 살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곳에서는 아주 어려운 서민조차도 살려고 하지 않는다. 백인이나 동양인들은 더더욱 살려고 하지 않는다. 손쉽게 범죄의 표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총소리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곳이어서 그러리라는 불안감은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혹 뮤지칼 같은 데서 할렘이 낭만적인 곳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실제로 그곳에 가보면 그런 기분은커녕 오싹한 느낌만 든다.

일반 서민이 맨하탄에 살기 위해서는 할렘의 경계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아파트나 비할렘 지역의 허름한 아파트에 드는 수밖에 없다. 이런 아파트 임대료는 비교적 싸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 기준으로는 상당히 비싼 편이다. 스튜디오에 천 여 달러, 원 베드룸에 천 수백 달러, 투 베드룸에 2천 내지 2천 수백 달러는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국에서 중산층은 연 3만 달러에서 7만 5천 달러 사이의 소득을 올리는 가정으로 규정된다. 미국의 7,200만 가구의 45%가 이러한 중산층의 소득 범위에 있다. 4분의 3의 가구가 연 평균 소득이 7만 5천 달러 이하다.

이런 중산층의 수입으로는 맨하탄의 좋은 위치의 여유 있는 공간에서 살기는 어렵다. 그러니 그보다 더 못한 일반 서민들은 여간해서 맨하탄에 살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대개 맨하탄 주위의 뉴 저지 주나 퀸즈, 브룩클린, 브롱크스, 스테튼 아일랜드와 같은 뉴욕 시의 다른 구에 살면서 맨하탄의 직장에 출퇴근을 한다. 한인들은 주로 퀸즈 구나 뉴저지 주에 많이 살고 있다. 필자도 퀸즈에 정착했다.

맨하탄은 서민은 말할 것도 없고 중산층조차도 거주하기에는 집세가 너무 높다. 그래서 중산층은 자꾸 맨하탄 밖으로 빠져나간다. 그러니 높은 집세가 계속 유지되면 유지될수록 맨하탄은 자산가, 부동산 임대업자, 벌이가 좋은 사업가, 월수입이 많은 의사, 변호사, 금융전문가와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과 같은 상류층과 할렘가를 중심으로 하류층이 주로 거주하는 곳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중산층과 서민들이 거주하기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맨하탄은 안전장치로 중무장된 채로 고립된 깨끗하고 잘 정돈된 고급 맨션의 부촌과 절망과 범죄의 온상인 허름하고 지저분한 슬럼가의 빈촌으로 양극화할 것이다. 여기에 수많은 마천루와 박물관과 문화 예술 행사로 빛나는 세계적 도시 맨하탄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는 것은 아닐까? 마천루의 그림자만큼이나 짙은 그림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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