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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1일 이른 아침 6:45분 종합운동장 앞을 떠난 2대의 관광버스는 대학직장연대 예비군을 가득 태우고 경기도 용인의 한 예비군 훈련장으로 향했다.

약 1시간후 여러 곳에서 모인 버스에서 약 450명의 학생 예비군들이 훈련을 위해 버스에서 내려 꾸역꾸역 교장 안으로 들어갔다. 웅성거림과 흡연 그리고 개중엔 전날 밤 늦게까지의 음주로 정신이 없어 보이는 예비군들도 보였다.

현역 조교들과 교관들의 "통제에 따라 달라"는 외침은 외침으로만 끝나가고 있었다. 총기가 나누어지고 각각 총기를 지급받은 학생예비군들은 연병장에 그날 있을 훈련의 사열을 위해 집결하기 시작하였다.

각양 각색의 머리 모양과 군복들. 여기저기 모여서 서로 잡담과 흡연으로 무질서는 고조되어 갔다. 교관은 예비군의 비협조와 무질서에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고함과 짜증의 소리를 지른다. 절도와 폐기는 간곳 없고 오로지 법으로 정해진 예비군 훈련에 어쩔 수 없이 참가해 시간만 때우다 가면 된다는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보이기 시작 하였다.

웃고 떠드는 사이에 입소식이 끝나고 졸린 눈을 비비며 무겁게 보이는 전투화를 끌며 각 조별로 교관 및 조교의 인솔하에 교육장으로 하루의 교육이 시작된다. 교장으로 가는 사이에도 조교들은 마음을 놓지 못하고 벌써부터 통제에 따르지 않는 예비군들과 옥신각신이 시작된다.

어렵사리 첫째 시간인 정신교육을 시작하자 태반이 고개를 숙이고 잠을 청한다. 여기 저기서 예비군들의 잠을 깨우려는 현역병 조교들의 시도가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이날 교관인 부대장도 포기한 채 강의를 시작한다. 절반 이상이 조는 상황이니 45분으로 편성된 부대장 정신교육은 15분만에 끝나고 뒤에 이어지는 예비군 교육용 VTR이 상영되지만 이것도 잠든 예비군들을 깨우기에 속수무책이다.

결국 1시간 30분의 정신교육은 별다른 정신교육적 효과도 거두지 못해 끝이 나고 잠에서 깬 예비군들은 외양간 소들처럼 조교들의 통제에 다음 훈련 과제인 영점사격을 위해 사격장으로 이동한다. 사격장에서도 마찬가지 장면이 연출된다. 사격전 대기 중에 온갖 잡담이 오가고 총기는 옆으로 아무렇게나 방치하고 쭈구려 자거나 담배를 피운다.

교관은 예비군 규정에 대해 기계적으로 설명을 하고 예비군들은 그저 멍하니 하늘만을 보고 있다. 모든 것이 그저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드디어 차례 차례 사격장으로 입장해서 주어진 탄창을 총에 넣고 아무렇게나 방아쇠를 당기고 총알을 소모한 후 다시 교장을 빠져나온다.

이제 기다리는 건 아침을 거르고 나온 출출한 배를 채워줄 도시락뿐이다. 또 다시 소란이 이어지고 결국 식당으로 이동하여 식사를 한다. 거기서도 무질서는 여전하다. 도시락을 먹지 않고 부대 내 매점으로 가는 예비군들도 있다.

식사 후 30분후부터는 오후교육이 계속된다. 이날은 아침부터 날이 흐리더니 결국 오후부터는 비가 오기 시작했다. 교장에서 그저 앉아서 잡담을 하다가 비가 오자 모두 비를 피해 차양 등이 쳐있는 곳이나 실내로 들어가 그냥 넋을 놓고 앉아있거나 잡담과 흡연 심지어 동전내기같은 조그마한 내기 도박이 벌어지기도 한다.

몇몇 예비군들이 훈련도 안하니 그냥 끝내고 집에나 보내달라고 요구하자 교관은 규정된 시간을 지켜야 한다며 4시까지 앉아서 대기하라는 말만 하고 사라진다. 모두 무료하게 시계만 보며 시간을 흘려보낸다.

마침내 4시가 되자 오전에 모인 연병장으로 가 총기를 반납하고 퇴소식을 준비한다. 총기를 반납하면 교통비 명목으로 1,500원이 지급된다. 그리고 훈련은 모두 종료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 예비군의 현 주소이다. 이 부대뿐만이 아니라 안양, 의정부, 성남 등 수많은 수도권에 위치한 예비군 훈련을 담당한 모든 부대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현상이다. 전시나 비상시 국가의 수호를 위해 창설된 예비군제도이지만 아마도 현재 어떤 예비군도 전쟁이나 비상시의 임무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예비군 훈련은 1년에 한번정도 있는 귀찮은 행사일 뿐이다. 아니 시간과 힘의 낭비일 뿐이다. 이러한 소모적인 일이 수십년째 계속돼 오고 있다. 앞으로 더 얼마나 예비군 제도가 지속될지 아무도 모른다.

현재 북한과 남한 당국 사이에 교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6.25 민족상잔의 고통 이후 수십년간 지속되어온 대립과 불신의 허물들이 서서히 벗겨질 준비를 하고 있다. 군에서도 북에 대한 정신교육을 새롭게 개편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때에 지금의 예비군 제도가 과연 꼭 존속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 그리고 필요하다면 개선이나 변화가 필요없는지를 한번 심도깊게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한 해에 예비군에 투입되는 국가예산이 무려 수백억원에 달하고 예비군으로 편성된 인원들은 연 평균 20시간 이상을 전역 후 8년간 수행해야 한다. 그뿐만 수많은 현역군인들이 예비군 교육을 위해 가용되고 있다. 과연 우리의 예비군 제도는 국가를 위한 투자인지 아니면 낭비인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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