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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안의 댓잎 서걱이는 소리에 저녁이 옵니다.
섬이지만 이곳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라 바닷가 마을보다 일찍 해가 지고 찬 기운 또한 오래 머물곤 합니다.

서재 방에 군불을 지피러 갑니다.
이제 다시 불을 피워야 잠들 수 있는 시간이 온 때문이지요.
한동안 뜨거웠던 날들이 가고 나는 다시 차고 맑은 물소리만 들어도
소스라칩니다.
토지 밑에 쌓아둔 장작을 한아름 안고 뒤안으로 향합니다.

겨우 눈을 뜨기 시작한 어린 강아지들이 어미 품을 파고 들며 맹렬하게 젖을 빨아댑니다.
새끼들에게 젖을 물린 봉순이는 넋을 놓고 누웠습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새끼들은 어미의 혼을 빼앗아 자신의 영혼을 키우고 어미의 피를 빨아 자신의 몸을 살찌워 가는 것을 알겠습니다.

굴뚝을 돌아 우물가를 지나는데 회양목 그늘 아래 먹이를 찾던 무당새 한 마리 대숲 위로 황급히 날아 오릅니다.
이제 더 이상은 쓸쓸해지지 말아야지 이제 더 이상은 뜨거워지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다짐하지만 저녁이면 서재방 아궁이로 향하는 발길을 어쩔 수 없습니다.

지난 며칠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곳에 정착하면서부터 애써 여행을 시도하지 않았었지요.
나는 평생을 떠돌며 살고 싶었고, 그것이 불가능한 바에야 여행지에 정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다 싶었습니다.
여행자를 만나는 것도 여행에 다름아니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은 가망 없는 꿈으로 드러났습니다.
여행의 목적지에 다다른 순간 그 여행은 이미 끝나게 되듯이 여행지에서의 정착 또한 그와 같았습니다.
태생적 여행자인 나에게 정착은 영혼의 부패를 불러오리란 것이 확연해졌습니다.
이제 나는 여행자를 만나는 것은 더 이상 여행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여행의 상실일 뿐이지요.

솥 안의 물이 끓기 시작합니다.
타닥 타닥.
아궁이 속 깊은 곳에서 차고 서늘한 불꽃들이 일렁입니다.
이 평화로운 저녁의 시간을 위해 나는 여행길에서 잠시 돌아온 것은 아닐까요.

바람이 붑니다.
그곳에도 바람이 부는지요.
다시 떠나고 싶으나 태풍에 묶여 배는 떠나지 못하고, 아궁이 속 장작 불꽃이 사그라들 때까지 나는 불가를 떠날 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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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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