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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돌입 74일째인 호텔롯데 노사분규가 드디어 타결됐다.

노사 양쪽은 지난 8월 20일 오후부터 철야 교섭을 갖고 21일 오전 4시께 '입사 3년 지난 비정규직 직원의 정규직 자동전환', '일방중재 조항 2002년 5월 31일 자동 삭제', '파업 관련 조합원 징계 최소화' 등 핵심 쟁점에 합의했다.

그리고 곧 이어 21일 오후 3시 조합원 총회에서 찬반투표를 통해 합의안을 통과시켰다.

지난 6월 29일 호텔롯데 정주억 노조위원장의 구속 이후 실질적으로 노조를 이끌어 오며 이번 협상안을 타결시킨 김경종 부위원장(노조위원장 직권대행)을 만났다.

김 부위원장은 호텔롯데에 경찰 병력이 투입된 지난 6월 29일 이후 명동성당에서 천막 농성을 해왔다. 짧게 깍은 머리, 덥수룩하게 기른 구렛나루가 이제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기자가 명동성당 천막으로 찾아갔을 때 그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 김 부위원장은 9일 간의 단식과 어제 밤샘협상을 통해 상당히 지쳐 있었다. 김 부위원장과의 인터뷰는 조합원 총회 시작 1시간 전인 21일 오후 2시부터 진행됐다.

"담담하다." 그는 파업 돌입 74일 만에 극적인 노사 협상을 통해 합의안을 이끌어낸 소감에 대해 한 마디로 대답했다. 그리곤 담배 한 가치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는 허무한 듯 했다. 70여 일 간의 투쟁기간 동안에는 느낄 수 없었던 것을 지금 느낀다고 말했다. "이제부터는 외로운 싸움이 시작될 겁니다. 지금 이 순간 진정한 노동조합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이번 합의안 찬반 통과를 떠나 조합원 동지들에게 "우리는 조합원들과 하나가 되어 열심히 싸웠다. 74일이라는 긴 기간을 열심히 싸운 조합원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오후 2시 10분, 롯데 노조원들은 조합원 총회를 준비하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다. 김 부위원장도 엉덩이가 들썩이고 있었다. 인터뷰는 빠르게 진행됐다.

- 이번 협상 결과가 만족하나.

"결과가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하지만 미진한 부분은 차츰 해결하겠다. 한번에 모든 것을 쟁취할 수는 없다고 본다. 순차적으로 조직력을 강화해 나가면서 정당한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키겠다.

그리고 이번 결과에 대해 조합원들이 인정해준다면 우리 지도부는 따를 것이다. 우리는 파업기간 동안 호텔롯데 조합원들에 대해 확실한 신념을 얻었다. 또한 민주노조에 대한 정확한 신념과 조직적 성과를 얻었다. 이러한 것들이 협상안과는 상관없는 결과물이다."

- 주변에선 이번 호텔롯데의 극적인 노사분규 타결에 대해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김 부위원장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싶나.

"우리는 파업을 했던 경험이 없었다. 70일 넘는 투쟁을 하면서 힘있게 회사쪽과 교섭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지도부를 신뢰하면서 함께 한 조합원들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호텔롯데에도 노동자의 권리를 정당하게 주장하는 진정한 민주노조가 될 것이다."

이번 협상 타결 의미에 대해 민주노총은 "공권력이 투입되면 무기력하게 무너져 내리던 노조투쟁의 굴욕적 역사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라며 "롯데노조는 한국노동운동사를 다시 썼다"고 밝히기도 했다.

- 21일 노사 협상안이 나오기까지 가장 어려웠던 점은.

"매번 어려웠다. 협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 회사는 우리 노조를 인정하지 않았다. 노사분규가 시작되자 일방중재를 신청해 불법 파업으로 몰았다. 노조가 협상의 파트너 지위를 얻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 것이다.

또한 9개 쟁점을 비롯 5대 현안 등 안건 모두가 어려웠다. 그 중 특히 가장 어려웠던 것은 파업 참여 노조원에 대한 징계문제를 조합원들에게 설득시키는 것이었다. 조합 지도부는 힘든 결정을 한 것이고 노조원들은 이를 따라 주었다. 지금도 감옥에서 고생하는 정 위원장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정 위원장은 우리의 협상안을 이해하리라 믿는다."

- 지난 8월 18일에는 정주억 위원장 2차 공판이 있었다. 구속된 노조 간부 3명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징계를 최소화하는데 합의를 보았으나 노조 간부들은 징계를 받을 것이다. 정 위원장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이번 노사 합의로 인해 재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회사쪽에서도 문제를 삼지 않는다고 했다. 집행유예로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호텔 롯데 성희롱 문제는 '회사가 파업과 관련해 노조와 민주노총 간부들을 상대로 한 소송을 취하하고, 성희롱 관련 민사소송 취하를 위해 노조가 노력한다'고 합의를 했다. 노조 쪽에서도 전에 언급했듯이 성희롱 문제는 법정에서 판가름 할 것인가.

"회사쪽에서도 명분이 필요했다. 교섭이라는 것이 한 쪽의 요구만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나. 회사쪽이 소송을 취하하는 대가로 성희롱 문제와 관련한 상징적인 명분을 주어야 했다. 합의안에서 적시한 것처럼 노조가 노력은 할 것이다. 하지만 성희롱 취하 문제는 조합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롯데호텔 문제가 협상에 의한 타결에 이르기까지 성과와 한계는.

"성과라고 한다면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조합원들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노조원들은 과거 기본적인 노동자의 권리도 이끌어 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파업을 거쳐 강해졌다.

한계라고 한다면 회사쪽은 노조에 대한 개념 정립을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과거에 대하던 어용 노조를 생각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아직도 회사는 노조를 고운 시각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 우리 노조원들은 호텔롯데를 누구보다 사랑한다. 그리고 노사 문제를 폭력진압으로 풀려는 정부의 노동통제 수법은 여전히 노동 문제를 대응하는 한계를 보여주었다."

오후 3시가 가까워오자 김 부위원장은 잔뜩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최선을 다했고 결과에 대해 노조원들의 뜻을 따를 것이라고 했다.

그 시각, 명동성당에는 노동가요 '철의 노동자'가 울려 퍼지고 있다. 노래를 따라 부르며 손을 치켜올리는 호텔롯데 노조원들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이제는 명동성당 앞의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이 아닌 사랑하는 가족 품을 꿈꾸고 있으리라.

민주노총은 호텔롯데 파업 74일 간의 교훈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노사 문제에 경찰이 개입해 파업을 폭력 진압하는 것은 결코 사태에 도움이 안되며 오히려 장기파업은 물론 노동계와 정부의 정면대결로 발전해 노·사·정 모두에게 큰 부담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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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남자. 산소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공희정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기자단 단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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