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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만에 만난 72세의 큰오빠 앞에서는 67세의 할머니도 어린 소녀로 돌아갔다.

8월 17일 오후 3시 마지막 개별 상봉시간. 북쪽의 오경수 씨와 남쪽의 동생들은 워커힐 호텔 709호실에서 마지막 만남을 가졌다. 그 곳에서 동생들은 형님의 손에 무언가를 쥐어줬다.

녹음테이프.
이 테이프에는 가족 50여 명의 자기 소개와 구구절절한 사연, 그리고 각자의 노래가 한 곡씩 담겨져 있다.

"북쪽 큰형님께 노래를 한곡씩 불러드리자"

큰형이자 큰오빠인 오경수(72)씨를 만나기 위해 남쪽 오길수(69), 오덕림(여, 67), 오점례(여, 64), 오춘자(여, 61), 오병수(48)씨 등 5남매와 그 2·3세는 상봉 전날인 8월 14일 밤 서울 송파구에 있는 올림픽파크텔 611호에 모였다. 다 모이니 약 50여 명.

오씨 가족은 작은 녹음기와 공테이프를 준비했다. 상봉 인원이 5명으로 제한돼 있고, 이 마저도 3박4일이기에 가족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공테이프에 녹음하기 시작했다. 오씨 가족은 때로는 크게 웃으며, 때로는 눈물을 지으며 상봉 전날의 심정을 여과 없이 테이프에 담았다.

[오디오] 조카 오양숙 양의 뵙지못한 큰아버지께 올리는 인사

60세의 오길수 씨는 50년대 유행한 '비 내리는 고모령'을 불렀다. 장성한 여조카 2명은 90년대 유행한 노사연의 '만남'을 불렀다.

녹음기를 가운데 둔 오씨 가족은 67세의 오덕림 씨가 노래를 시작하자 모두 눈물이 나도록 웃었다. 북쪽 오경수 씨의 여동생인 오덕림 씨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큰오빠에게 어릴 때 유행하던 이런 노래를 띄웠다.

"오빠, 오빠, 날 시집보내줘,
전깃불 반짝이고 기적소리 울리는,
도회지에 날 시이집 보내줘."


[오디오] 오경수 씨 가족이 50년의 회포를 푸는 즐거운 한때

상봉 첫째날, 당황한 가족들

50년 만의 만남에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다.
상봉 첫 날인 8월 15일 코엑스 3층 상봉장에서 북에서 온 오경수 씨는 "나는 김일성주의자다, 김정일 장군님 덕분에 이렇게 만나게 됐다"고 크게 말했다. 오경수 씨의 이 말은 여과없이 생방송으로 전국에 나가 남쪽의 오씨 가족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코엑스 단체 상봉을 마치고 나온 남쪽 오씨 가족은 그날 밤 다시 올림픽파크텔 611호에 모여앉아 가족회의를 열어야 했다.

다음 날인 8월 16일 개별 상봉시간. 워커힐호텔방에서 오경수 씨는 동생들에게 자신의 행동을 사과했다. "내가 너무 강하게 말해서 너희들의 입장이 난처했겠구나. 미안하다. 어제는 너무 긴장된 상태였단다."

상봉 셋째날, 휴대폰과 캠코더 '가까이 좀더 가까이'

8월 17일 오후 3시 마지막 개별상봉시간. 오씨 5남매는 휴대폰과 캠코더를 들고 오경수 씨의 숙소인 워커힐호텔 709호에 올라갔다. 잠시뒤, 호텔 로비에 있던 조카들이 휴대폰으로 전화했다.

"큰아버님, 창가에서 어디가 제일 잘 보이십니까?"
"수영장 부근이 제일 잘보인다."
"예,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잠시뒤 709호의 휴대폰은 또 울렸다.

"큰아버님, 창밖을 보세요."

오경수씨는 창밖을 내다봤다. 수영장 부근에는 조카와 손조카 20여명이 모여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먼거리였다. 그때 오경수씨의 동생들은 캠코더를 건네줬다. 처음 만져보는 캠코더. 오씨는 동생들이 시키는 대로 캠코더의 줌기능을 통해 남쪽 조카와 손조카들 얼굴 하나하나 클로우즈업했다.

아직 어린 손조카들은 창가의 큰할아버지에게 손으로 하트를 그렸다.

50년을 이어주는 녹음 테이프

이제 50년을 기다려온 3박4일이 끝나간다. 하루밤만 지나면 오경수씨는 다시 북으로 가고, 남쪽에 남아있는 동생들은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북쪽의 오경수 씨 손에는 테이프가 하나 남게됐다. 남쪽의 사랑스런 동생, 조카, 손조카들의 목소리가 담긴 테이프.

이제 오경수 씨는 북에서 그 테이프를 듣고 또 들으며 고향과 통일을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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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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