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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섭단체 구성 요건과 관련된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본회의가 무산됐다.

25일 밤 늦게까지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무리하게 본회의를 개최하는 것보다 다소의 냉각기를 갖고 신중하게 대처하는 것이 낫다"고 중지를 모으고, 25일 밤으로 예정된 본회의를 강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24일 국회 운영위에서 '날치기'로 통과시킨 국회법 개정안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지 않게 됐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날치기에 대한 여론이 워낙 좋지 않아 강행하는데 부담이 됐다"고 '강행 포기' 이유를 밝혔다.

한편, 민주당은 26일 오전 10시 다시금 의원총회를 열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노동법 '날치기' 때도 명분은 있었다. 지금 '날치기'는 무슨 이유가 있는가?

16대 국회는 도대체 무엇때문에 시작부터 날치기로 얼룩져야 했는가. 야당의 발목잡기 때문에 처리되지 못하는 시급한 민생현안 때문이었는가. 야당의 반통일정책 때문에 방해받고 있던 남북화해정책이라도 있었는가.

이도 저도 아니었다. 오직 자민련을 살리고 JP를 살려 이 땅에 다시 한번 DJP 연합의 시대를 펼치기 위한 일념으로 날치기는 이루어졌다.

민주당이여, 당신들이 말하는 개혁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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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회사에서 날치기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동안의 날치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따라 다녔다. 더 이상 처리되지 못하면 국정에 혼선이 초래되거나 국민생활에 불편이 초래되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식의 변명이 가능하기도 했다.

그 유명한 노동법 날치기 파동 때에도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라는 고상한 명분이 따라다녔다. 그러나 이번 날치기에는 그 어떤 명분도 논리도 없다. 그렇다. 원래 날치기에 무슨 명분이나 논리가 필요하겠는가. 거기에서 고상한 이유를 찾으려는 국민들이 어리석은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아무런 명분도 찾을 길 없는 이번 날치기에 가담한 집권당 의원들에게 분노한다. 16대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실날같은 기대를 여지없이 짓밟은 그들의 행위를 참고 지켜보는데 스스로 한계를 느끼게 된다.

그런데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날치기 장면을 보던 나는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고는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몸싸움의 한복판에서 날치기 통과를 선포하고 있던 사람은 평소 집권당의 소장파를 대변한다며 정치개혁을 말하던 천(千)아무개 의원이 아니었던가.

그는 선배 의원들의 모범을 따라 국회법 개정안을 30여 초만에 단독으로 상정하고 의사봉도 없이 통과를 선포하는 활약상을 보였다.

내 기억으로 그는 그동안 '개혁' 자가 들어간 무슨 무슨 당내 모임들에 참여하며 정치개혁을 주창해왔던 의원이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지금 그가 맡은 당직이 수석부총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당직자로서 당명에 충실했다는 변명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자민련을 살리기 위해, 그리고 JP를 살리기 위해 총대를 맸다는 엄연한 사실 앞에서 어떠한 변명이 통할 수 있겠는가.

JP를 퇴출시키는 데 앞장서도 시원치 않을 사람들이, 거꾸로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은 JP를 구출하는데 앞장서는 상황은 우리 정치의 비극적 현실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날치기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의 25일 본회의 통과 여부는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 여당은 국회의장의 본회의 직권상정을 통해 법안을 또 다시 강행처리한다는 방침이고, 야당은 본회의장을 지키며 이에 대한 극력 저지에 나서고 있다.

여기서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민주당에 속해있는 '386' 의원들이다. 오늘(7월 25일) 밤에 열릴 예정인 본회의장에서 날치기가 강행될 경우 이들은 과연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16대 총선에서 '386' 정치인들은 정치개혁을 내세우며 당선되었고, 당선 직후에도 정치개혁에 앞장설 것을 공언했다. 386 혹은 소장파 의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들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특권을 향유했다.

이제는 그 책임을 다해야 할 시점이다. 물론 나는 이들의 정치적 힘이 미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차피 힘이 있어야 소신대로 행동할 수 있는 곳이 우리 정치권이라면, 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시간을 주는 것은 필요하다.

도대체 무엇하고 있느냐고 몰아친다고만 해서 될 일은 아니다. 386 정치인들을 평가함에 있어서 하나하나의 나무보다는 숲 전체를 보고 평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민련 살리기'를 위한 날치기에 386 의원들이 가담해서는 안된다는 생각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 우리 정치의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자민련이라는 정치세력을 부활시키는 행동의 정치적 후과가 어떠할 지를 생각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치논리 이전에 기본적인 도덕의 문제이며 양심의 문제이다.

야당의 발목잡기 때문에 예산안이라도 통과시키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모르겠다. 어디 할 일이 없어서 자민련 살리기를 위한 날치기에 가담한단 말인가. 16대 국회에 들어와 처음하는 일이 자민련 살리기, JP 살리기라면 어디 가서 고개를 들고 386 정치를 말할 수 있겠는가.

386 의원들, 아니 평소 정치개혁을 말해왔던 민주당 소장파 의원들의 선택을 우리는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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