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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무서운 내용이다. 한반도를 분단하고 분단체제를 유지해온 미국이 앞으로 예상되는 통일 과정에 적극 개입한다는 연구보고서가 나왔다.

미군 당국이 후원하는 랜드연구소의 애로요센터 전략 및 독트린 프로그램(RAND Arroyo Center's Strategy and Doctrine Program)이 지난해 작성한 보고서가 그것이다.

따라서 이 연구는 통일 과정에서 대응하는 미군의 군사전략을 검토하려는 미군 당국의 정책적 필요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랜드연구소의 조나단 폴락(Jonathan D. Pollack)과 이정민 박사에 의해 이루어졌다.

<한국의 통일 준비(Preparing for Korean Unification: Scenarios & Implications)>라는 제목의 이 연구보고서의 주제는 한반도 통일 과정에 대한 4가지 시나리오에 대응하는 미국의 군사적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100쪽 분량의 이 보고서는 먼저 한반도의 주변 정세와 북한의 대내외 상황을 분석하고나서 예상가능한 4가지 통일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여기에 적절히 대응하는 미군의 군사전략을 제안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미군은 어떤한 통일 과정에도 개입하여 한반도 통일 이후에도 미국의 영향력을 군사적으로 옹호한다는 것이다.

첫번째 통일시나리오는 가장 바람직한 평화통일의 길이다. 이 시나리오는 남북한의 화해협력으로 경제적 통합이 진전되고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어 통일을 향한 정치적 협상으로 이루어진다는 내용이다.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통일헌법이 제정되고 이에 따라 통일정부와 통일의회가 수립된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기존의 4자회담은 한반도의 장기적 안보를 위한 틀로 발전하며, 미군은 한미동맹관계의 유지, 강화를 통해 한반도에 그대로 주둔하는 것으로 돼 있다.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자의 역할을 자임하면서.

북한의 체제 붕괴를 통한 남한으로의 흡수통일 경로는 밟는 두번째 통일 시나리오는 북한 경제의 악화와 이에 따른 북한 지도세력 내의 분열로 군부 쿠테타의 발생을 가정한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는 세부적으로 다양한 경로를 예상하는데 이에 따라 미군의 대응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먼저 김정일정권이 쿠테타로 축출되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미군은 이 정권의 안정성과 남한에 주는 위협을 결정하여 대응한다.

그러나 새 정권이 군부를 통제하지 못하는 불안정한 상태에서 남북 간 군사적 갈등 가능성이 높아지면, 한미연합사령부(CFC)는 북한 군의 취약성과 위험성을 평가하여 그에 적절하게 대응할 요구를 갖게 된다.

한편, 새 정권이 체제붕괴는 물론 국가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면 미군은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한다. 우선, 북한 군부와 새 지도력과의 협상이 이루어진다면 미군은 북한 내의 안정을 기하는데 일차적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만약 북한내에 안정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미군은 한국군과 함께 북한에 들어가 평화적 기능(peace operations)을 수행한다. 이 때 한미연합사령부는 북한군 내의 대량살상무기 등 무기 체계의 해체 작업을 실시한다. 이 보고서는 이런 작업에 앞서 중국과의 정치적 동의가 긴요함을 지적하고 있다.

세번째 시나리오는 남북한 갈등을 통한 통일이다. 이 시나리오에 의하면 남북한은 상호 대립과 불신을 극복하지 못하고 북한의 게릴라전 등 국지적 갈등이 발생하다가, 끝내 남북한 간의 무력 충돌이 발생하여 북한의 패배로 통일이 된다는 가정이다. 이런 경우에 미군의 대응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미군은 군사력에 기반한 계획(capabilities-based planning)을 중심으로 한반도에 발생가능한 큰 적대행위를 관리한다.

둘째, 북한이 휴전선의 남한군이나 주한미군 기지에 공격을 가해올 경우, 한미연합사령부는 모든 경우에 대비하는 군사적 대응을 준비한다.

마지막으로, 북한에 정치사회적 혼란이 만연하고 이런 상황에서 우연하게 북한군이 공격할 경우에 대비하는 것이다.

보고서는 여기서 예측이 어려운 분쟁 발생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를 강조하며, 이때 미군은 한국은 물론 일본과의 긴밀한 군사적 연계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마지막 네 번째 통일시나리오는 "불균형과 외부의 잠재적 개입"으로 명명되고 있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북한의 경제적 사정의 악화 및 사회적 혼란으로 대량난민이 중국으로 밀려들고 북한의 지도세력은 이러한 현상을 통제할 능력을 상실한다.

이 경우 미군은 중국이 한반도 통일문제에 개입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미군은 중국의 개입 가능성 및 개입의 성격, 한미동맹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평가한다. 또 "공백상태의 북한지역(hollowed-out North Korea)"의 상황이 지속되면 미군은 한국과의 동맹 수준을 높이고 한-미-중 사이의 의사소통이 긴요하다고 지적한다.

미군은 중국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미군의 활동 범위를 남한으로 제한하면서도 주요 전략적 자산은 한반도에서 유지하지 않는다는 방안이다. 대신 중국은 한국 주도의 통일을 허용하고 한국과 우호조약을 체결하여 한미동맹관계를 일정하게 제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미국은 한반도 통일 시나리오와 관련,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는 물론 가능한 모든 상황에 개입한다는 대응책을 상정하고 있다.

이들 시나리오에서 미국은 중국과의 갈등 방지, 일본의 참여 유도 등 한반도 통일문제를 남북한이 통제불가능한 수준으로 확대하는 경우도 포함하고 있다.

미국이 통일 과정에서 군사적 관여를 하는 근거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하고 있다. 이 조약은 1953년 한국전쟁의 종전으로 한미간에 맺어진 것이지만, '상호'방위가 아니라 한국의 군사주권이 상실된 미국 일방의 군사적 관계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또 이 조약은 한미간의 '방위'에 국한되지 않고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에 따라 사용될 가능성도 내재하고 있다.

미군이 이 조약에 근거하여 통일과정에서 한국군과 연합하여 북한에 진주하거나 군사적 영향을 행사하려는 것은 이 조약의 문제점과 별도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또 하나 의문이 드는 것은 미군의 이같은 '통일 관여 전략'이 우리 정부 당국과 어느 정도의 정책적 조율을 가지면서 검토되고 있는지 하는 점이다. 이 보고서에서도 지적하는 바와 같이, 통일 과정에서 미국과 한국의 목표는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 과정과 그 이후에도 미군의 주둔을 통한 한반도 전체에 대한 군사적 영향력을 유지, 강화하겠다는 이같은 전략은 한국 또는 통일 한반도의 이해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미군 당국의 후원으로 작성된 이 보고서는 한국의 군사주권, 한겨레의 미래에 대해 심각한 침해라고 평가될 수 있다.

미국의 이같은 사고는 어떠한 통일 과정에서도 미국의 이익을 관철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지만 통일과정과 통일 이후 한반도 상황을 더욱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만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판단은 장래 주한미군의 지위를 평화유지군으로 변경하자는 대안을 무색하게 한다.

이러한 미군의 전략 앞에서 우리는 통일을 대비하는 전략적 사고와 준비를 얼마나 하고 있는지,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을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을 얼마나 만들어가고 있는지 되묻게 된다.

그러한 통일을 준비하는 출발은 남북한의 단합과 협력이 되어야 할 것으로 사려된다. 이 방안만이 미군의 일방적 통일 관여 전략을 견제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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