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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길 위에서 편지를 썼던 날들이 언제쯤이었을까요.
흐린 저녁나절, 나는 청주 상당 산성 아래 마을에서 그대에게 편지를 씁니다. 강릉, 속초, 주문진, 설악산 부근 크고 작은 도시와 아름답게 늙어가는 마을, 美老理를 지나 꿈결엔듯 나는 어느새 이곳 청주까지 왔습니다.

날이 저물고 산성 둘레의 고요한 소나무들, 침묵 속에서 더욱 깊어져 갑니다. 저 아름다운 소나무들 말고, 지켜야 할 무엇이 있어 사람들은 높은 산 위에까지 성을 쌓아 올렸던 것일까요. 나는 산성에 왔으나 저 산성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산성의 역사와 내력을 알지 못하며 성의 구조를 알지 못하고, 성의 크기가 어떠한지 그것이 석성인지 토성인지 도대체 무엇 하나 아는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굳이 그런 것들을 알아보려고 성에 오를 생각도 없습니다. 나는 결국 산 아래 마을만 하릴없이 서성이다 돌아가게 되겠지요. 나의 여행이란 늘 이와 같습니다.

내가 우연히 떠나 왔듯이 나는 또한 갈 곳을 모르고 길을 갑니다. 그것은 여행의 본질이 목적지에 이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떠남에 있으며, 예정된 길을 따라 가는 데 있지 않고 자유롭게 길을 가는 데 있기 때문이지요.

아마도 인간의 삶이 여행에 비유될 수 있다면 바로 이 점에서 일 것 입니다.

오늘은 몇 시간 운전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고단한 잠이 밀려옵니다.
나는 자동차 의자에 기대 잠시 잠을 청해 보지만 쉽게 잠들 수 없습니다.

몇 번을 뒤척이다 내 잔기침 소리에 내가 놀라 눈을 뜹니다. 좁은 차 안의 의자가 불편해 잠들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나는 마치 간이역 대합실 의자에 누워서 잠들었을 때처럼 자동차 운전석의 불편함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얻습니다. 불편한 자리에서 얻어지는 고단함을 즐기느라 잠들지 못했던 것이지요.

날은 이미 저물었는데 산성을 오르는 자동차와 사람들의 행렬은 끊이지 않습니다. 이곳에서도 사람들은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을 좋아하는 군요.

높은 산과 성채, 높은 자리까지 사람들의 시선은 늘 높은 곳으로만 열려 있고 발길은 높은 곳만을 향해 철퍽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높은 곳에 올라서 보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진실로 높고 존귀한 것들일까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낮은 곳에 살고 있는지 확인해 볼 수 있을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결코 높은 곳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못합니다. 아, 어째서 우리들은 우리의 보잘 것 없이 무겁기만 한 몸뚱이를 자꾸 더 높은 곳으로 끌어 올리려고 애쓰는 것일까요. 어째서 우리의 영혼을 더 높은 자리로 밀어올리기 위해 애쓰지 않는 걸까요.

청주 상당 산성 아래 마을에 밤이 옵니다. 이 짙은 어둠 속, 밤을 새워 나는 또 어디로 가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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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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