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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노진수 씨(62년 생, 서울대 법대 81학번, 82년 4월 실종)의 최종 목격자, 독서실 총무를 찾아 나선 지 한 달이 지났다.

결과부터 말하면, 독서실 총무의 행방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취재 과정에서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지난해 7월, 노진수 씨 실종사건을 앞서 취재했던 박장호(MBC 시사매거진 2580) 기자의 첫 번째 딜레마가 풀렸다. 실종 직전 '노씨가 있었던 독서실이 무엇이었냐'는 것인데, '자하'나 '정우'가 아닌 '한림'독서실임이 확인됐다.

노진수 씨가 머물렀던 독서실은 한림독서실

'자하'라는 이름의 독서실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교육청 사설 강습소 열람 기록에 의하면 '정우' 독서실은 89년 4월 26일부터 발견된다. 그러면 어떻게 '한림'이 노씨가 머물렀던 독서실임을 확언할 수 있을까? 전화통화에서 노씨의 어머니와 누나는 '독서실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작년 박 기자와 함께 찾은 건물이 진수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독서실이 확실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장소는 틀림없다...?

기자는 동작교육청에 다시 한번 문의하였다. 그 결과, 군데군데가 빠져 있고 손으로 기재하는 등 비교적 오래된 사설강습소 자료를 어렵게 얻을 수 있었다. 보존 연한이 지나 파기 상태에 놓인 자료였기 때문이다. 이 기록에는 '한림독서실'이 89년 4월 26일자로 설립자 변경과 함께 명칭변경(정우 독서실로)한 것으로 나와 있었고, 그 소재지는 가족이 지목한 건물과 동일했다. 결국 82년 4월, 노씨가 머물렀던 독서실은 '한림'이었고, 한림은 89년 4월 26일, '정우'로 바뀌었던 셈이다.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 9동 238-9 3F. 한림, 정우 독서실이었던 이곳은 현재 '영상 비디오방'으로 바뀌어 있다. 비디오방 주인은 '비디오방이 들어서기 전 여기가 정우 독서실이었다'고 증언했다. 또한 방 구조는 그대로 두고 문의 모양만 바꿨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82년 4월 새벽, 노진수 씨는 여기 '영상 비디오방'의 몇 호실에선가 머물렀고 정체불명의 세 남자와 함께 사라졌던 것이다.

한림독서실 총무는 누구인가?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독서실 총무는 주인이 하지 않는다. 보통 독서실에서 묵고 있는 학생이 월 비용을 면제받고 총무를 겸한다든가, 혹은 아르바이트 형태로 사람을 쓰기도 한다. 한림 독서실은 소유주가 조○○(77)씨였으나 실지 경영은 그의 아들, 이○○(50)씨였다. 작년 MBC 취재에서는 이○○씨가 총무였을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본사 취재 결과 사실이 아님을 확인했다.

이○○씨는 전화통화에서 '노진수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고, 실종 사실은 기자에게 처음 듣는 일'이라고 밝혔다. 더군다나 그는 노진수씨가 실종됐던 82년, 독서실 경영을 동생인 이△△(43)씨에게 넘긴 상태였다. 그러나 이○○씨는 집안의 문제로 동생의 연락처나 주소를 가르쳐 줄 수 없다고 했다.

이△△씨를 수소문한 지 며칠이 지난 후, 어렵게 인천 부평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씨의 집을 찾았을 때, 이△△씨는 없었고 그의 딸만이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다음날 저녁, 이△△씨와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다. 그는 '82년 4월, 확실히 독서실 경영을 맡았으나 노진수 씨 실종 얘기는 처음'이라고 밝혔다. 경기도에서 방위생활을 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독서실은 총무가 전담해서 관리했다고 했다. 또한 '총무를 기억하겠느냐'는 질문에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고, 총무가 하도 자주 바뀌어 정확히 누구지 모르겠다'는 대답이다. 몇몇 기억나는 얼굴은 있으나 이름을 기억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1982년 4월, '관악구 신림9동 238-9'에 소재했던 한림 독서실에서 근무했던 총무는 누구일까?

어쩌면 노진수 씨 최종 목격자인 한림독서실 총무를 찾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마이뉴스 6천여명의 기자, 독자회원과 함께 '한림 독서실' 총무를 찾는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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