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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익숙해지는 키부츠 생활

이곳에서의 생활은 점점 더 익숙해져갔다. 호텔 웨이츄리스일은 일주일만에 끝나고 이제는 '프레스'에서 일하게 되었다. '프레스'는 신문과 관련된 곳이 아니라 빨래와 관련된 곳이다. 말하자면 영어로, '런드리(laundry)'이다. 커다란 기계가 키부츠의 빨래를 돌린다. 작은 빨래는 그냥 찾아가지만, 커다란 침대보나 이불보, 호텔에서 쓰는 식탁보 등은 커다란 다리미를 통해 다려진다. 난 거기에서 빨래를 프레스 기계 안으로 넣고, 빼고, 접고 하는 일을 했었다.

프레스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은 영어를 못한다. 적어도 호텔에서 일할 때는 영어를 못하면 안되지만, 이곳은 어느 나라말이고 상관없다. 바디랭귀지, 아니면 아랍식 히브루.

"얄라 얄라", 즉 "빨리 빨리". 프레스기계보다 빨랫감이 늦게 돌아가면 번쩍거리는 목걸이를 한 아주머니가 "얄라 얄라"하며 약간은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얄라"는 아랍어다. 중동에 속한 이스라엘도 아랍어와 아랍문화의 영향을 받는가 보다.

반대의 경우는 빨랫감이 프레스기계보다 빠를 때, 이 때는 "레가 레가"한다. 즉, "천천히, 천천히"이다. 이 때는 이스라엘 특유의 제스쳐, 즉 손바닥을 위로 해서 손끝을 모은다. 그러면 기다리라는 뜻.

룸메이트 캐더린의 언니는 한국인이다. 즉 한국에서 입양된 언니는 지금 남자친구와 동거 중이고 임신 중이다. 유럽에서는 꼭 결혼을 해야만 가족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에 와 있는 대부분의 유럽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동거는 좋고, 결혼은 싫다"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그럼 너희 부모님은? 하고 물어보면, "부모님은 결혼하셨지"란다.

어떤 영국 아이의 이름은 가자(Gaza)이다. 왠 Let's Go? 원래 이름은 게리(Gary)인데, 가자는 애칭이란다. 한국 사람들은 가자만 보면 Let's Go, Let's Go 라고 불렀고, 그는 꽤 좋아하는 듯 했다.

이곳에는 예수님도 있다. 물론 홀리 랜드 이스라엘이니 예수님처럼 생긴 사람이 많다. 흘러내리는 부드러운 웨이브머리, 순한 양같은 눈, 거칠지 않은 수염... 하지만, 이곳 사람 말고 발룬티어로 '지저스(Jesus)'라는 콜롬비아인이 있었는데, 독일에서 온 여자들에게 인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섹시하게 탄 피부, 웨이브머리, 큰 키, 근육질, 하지만 우리 한국 사람들은 그가 지나갈 때마다 티 안내고 호흡을 멈추느라 참 힘이 들었다. 씻기는 씻는 모양인데, 물로만 대강 씻는지, 지저스가 한 번 지나가면, 그 땀냄새의 여운은 몇 초는 맴돌고 지나가고...

하루는 지저스가 눈을 붉히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설마 우리가 그의 냄새 때문에 놀리는 것에 화가 났을까싶어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그가 말하길, "너네 한국 애들은 왜 나를 지저스라고 부르는 거야? 지저스, 지저스, 그렇게 부르지 말고, 헤수~스라고 불러, 헤수~스!"
콜롬비아에서는 에스파냐어, J가 H발음이 난다. 그 날부터 그는 헤수스라고 불려졌다.

한국에서 새로운 발룬티어가 왔다. L. 그는 35살 정도의 아저씨다.
영국에서 마틴과 다니엘이 왔다. 다니엘은 18살, 마틴은 32살. 다니엘은 말라깽이 전통 영국아이고, 마틴은 약간 자폐증상이 있는 기타리스트이다. 그는 휴 그랜트를 닮았다.
사람들은 그를 멀리했지만, 난 그가 좋았다. 그는 이상하고 썰렁하고, 또한 조용한 사람이었다.

안식일 - 샤바트

이스라엘에서는 샤바트, 즉 안식일이 있다. 우리의 토요일은 이스라엘의 금요일, 우리의 일요일은 이스라엘의 토요일이다. 샤바트라고 하면 보통 금요일 오후부터 토요일 오후까지를 일컫는다. 안식일이 뭘까? 본래 안식일은 뜻 그대로 '쉬는 날' 이라고 한다. '샤바트'는 히브리어로 '쉰다'라는 말이다.

안식일의 가장 오래된 기원은 창조에 나와 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 2:3)....

보통 금요일은 일을 아예 안 하거나, 12시쯤 일찍 끝내고 저녁때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샤바트 초를 켜고, 샤바트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인사를 한다. "샤밧 샬롬" "샤밧 샬롬".

평소에는 딱딱한 빵(프렌치 바게뜨같은)을 먹지만, 샤바트에는 우리나라의 식빵과 같이 부드러운 빵을 샤바트빵이라고 해서 먹는다. 닭과 칠면조요리가 주 샤바트 음식이다.

샤바트에는 모든 유대인 상점, 공공기관, 공공교통수단 등이 운행정지되므로 여행 중에는 택시를 운좋게 잡아타거나 걸어다녀야 한다. 물론 히치하이킹이 이스라엘처럼 안전하고 잘 되는 곳도 없지만, 이것도 다 시골이야기다. 예루살렘 등, 큰 도시에서 히치하이킹은 되지도 않을 뿐더러 매우 위험한 일이다.

샤바트에는 모든 키부츠사람들이 다이닝룸에 모인다. 쫙 빼입고 말이다. 여자들은 화장을 하고 파티복을 입고, 남자들도 깨끗한 옷을 입고, 평소에는 거의 작업복을 입고 다니기 때문에 샤바트는 키부츠사람들에게 한껏 꾸미는 날이기도 하다.

발룬티어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파티를 한다. 5셰켈(2000원 정도)을 모아서 펀치파티를 준비한다. 펀치는 러시아 보드카와 쥬스. 사이다 등을 섞어 만든, 우리나라의 레몬소주, 오렌지소주 정도라고 하면 될까?

잔디밭이나 발룬티어 블락 옥상에 올라가서 서로 이야기를 하고, 음악을 틀고 춤을 추기도 한다. 꼭 샤바트 때만 파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생일파티도 한다.

그리고 밤 12시가 되면 펍이 문을 열고 젊은 키부츠닉(키부츠 사람을 일컫는 말)과 발룬티어들은 모두 펍으로 모여 술을 마시고 춤을 춘다. 보통의 키부츠는 시골에 몰려 있기 때문에, 달리 갈 곳도 놀 곳도 없는 젊은 키부츠닉에게는 키부츠 펍이 그들의 젊음과 열정을 내뿜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용광로인 셈이다. 평일에 펍은 밤 10시에 열어서 1시쯤 문을 닫고, 샤바트에는 자정 12시에 열어서 새벽 4시나 5시시에 문을 닫는다.

펍에서 오렌지붐(네덜란드어로는 오랑유붐)이라는 맥주를 3.5셰켈에 샀다. 키부츠 안에서는 맥주가 싸다. 펍에서 사마시는 캔맥주 500ml가 우리나라돈으로 1400원 정도니...

그래서 그런지, 마시고 또 마시고... 마셨다. 그래! 쌀 때 많이 마시자...

익숙해질수록 긴장감은 떨어진다. 이제 슬슬 이스라엘이 어떤 곳인지 '감'이 오는 것 같다. 옆쪽에서 머리를 빡빡 밀은 영국친구 에이먼(Amon)이 같이 춤을 추자고 나를 잡아당긴다.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춤을 추는 척하다, 출구 쪽을 지나칠 때 살짝 도망쳐 나왔다. '갈·지·자'로...

아마 이곳 생활이 더 익숙해지면 술에 취해 걷는 모습도 '히·브·리·어'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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