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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머슴이다. 여러 마님을 섬기고 일하고 있는 나는 머슴이다. 영감님(관리자-편집자)들이 가끔씩 둘러 볼 때면 나는 겁이 난다. 오늘은 몇 시에 잠자리에 들 수 있을까...'

27일 오후 2시 을지로 롯데호텔 앞. 롯데호텔이라고 적혀 있는 이정표 바로 밑에 '파업 19일째'라는 명패가 붙어 있고, 호텔 벽면은 위와 같은 갖가지 대자보로 둘러싸여 있었다.

롯데호텔노조는 19일째 파업을 하고 있다. 지난 6월 9일 호텔 앞 농성장에 천막을 설치하고 철야 농성에 돌입한 것이다. 호텔노조 1300여명은 '비정규직 정규직화', '적정인력 확보', '봉사료 잉여금 쟁취'를 위해 파업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노조가 내세우는 요구 중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비정규직 정규직화'이다. 하지만 회사측은 절대불가의 방침을 보이고 있어 파업은 더욱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17일에는 롯데호텔의 계약, 촉탁직 200여명을 비롯 20일에는 3급 사원(지배인, 계장) 등 관리자급도 파업에 합류했다.

17일부터 파업에 참여했다는 오정훈(29, 제과부, 계약직) 씨는 "같은 일을 하지만 임금 및 근로조건이 정규직의 70%밖에 되지 않고, 해고의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언제 잘릴까 항상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미래를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울분을 토했다.

오씨는 지난 96년부터 롯데 호텔 제과부에서 4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 "회사는 절대로 처음부터 계약직이나 정규직으로 뽑지 않습니다. 저도 몇 차례 떨어지고 나서, 이 회사에서 근무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아르바이트로 월 50만 정도를 받으면서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했습니다."

아르바이트로 근무를 하게 되면 사업장에서 추천서를 써주기 때문에 입사할 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롯데호텔은 96년부터 정규직 사원을 한 명도 뽑지 않았다. 모두 계약직으로만 뽑은 것이다.

노조 자체의 조사에 의하면, 비정규직은 전체 직원의 56%를 넘어서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롯데 호텔만의 문제가 아니다. 스위스 그랜드호텔 경우도 IMF 이후 신규 입사자는 연봉계약직이다.

롯데호텔노조 상황실장 권순영(39) 씨는 "사측은 인건비 절감을 목적으로 노동자를 정규직, 비정규직을 구분하고, 비정규직만을 취업시키고 있는 것"이라며 "이는 전체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하향평준화시키려는 사측의 계략"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해 롯데호텔 회사측은 "5년 이상 6년차 계약직을 정규직화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노조는 "현행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6조 제3항을 보면 '사용사업주가 2년을 초과하여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2년의 기간이 만료된 날의 다음날부터 파견근로자를 고용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힐튼호텔의 경우 2년 이상 근무시 정규직으로 전환을 하고 있으며, 하얏트호텔은 분기별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발령하고 있다"고 말했다.

IMF 경제위기 이후 노동시장 유연화 경향이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가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IMF 경제위기 전인 97년, 전체 노동자의 45.9%인 607만 명에 머물던 임시·일용직 노동자가 2000년 1/4분기 현재 과반수를 넘겨 53%인 700만 명으로 급속히 늘었다. 정부 통계가 임시·일용직 이외의 파견노동, 불법용역 노동,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통계는 정규직의 비정규직화가 상당히 심각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정주억 위원장은 "현재 동일노동을 하는 정규직에 비해 비정규직은 차별 및 부당 대우(임금수준 50-70%, 근로기준법상의 각종 보호 및 단체협약 적용상의 취약)를 받고 있으며, 사회보험적용에 배제, 심리적 박탈감 등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정 위원장은 "노동시장 유연화 경향 속에서 6월 만료되는 파견법상 근로기간이 연장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노동력 충원 형태가 비정규직 고용구조로 고착화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법적, 제도 개선적 대응의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민주노총, 한국노총, 서울YMCA, 참여연대, 경실련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2000년 6월 26일 '비정규 노동자 기본권 보장과 차별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해결을 위해 역량을 집중시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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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남자. 산소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공희정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기자단 단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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