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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오연호, 공희정 기자
정리: 이병한, 김미선 기자
사진: 이종호 기자


지난 4월 20일 '미전향 장기수의 북송(北送) 을 인도적 차원에서 검토할 수 있다" 는 발언이 문제가 되어 4월 21일 전격적으로 사표가 수리된 이재정(전 민주당 정책위의장)씨.

그는 사임 이후 언론과의 접촉을 피했다. 오마이뉴스 열린인터뷰가 사임 이후 가진 첫번째 인터뷰다.

이재정 전 의장은 '말조심'을 많이 했다.

그는 최근 한 사석에서 "조선일보의 사설이 아니었다면 사표까진 내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우리사회는 아직도 냉전의식에 젖어있는 보수세력의 벽이 강고하다"고 말했다.

그는 열린 인터뷰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그의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는 '입'으론 '공식'을 이야기하고 표정으론 '본심'을 말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열린 인터뷰는 영상으로 중계되었으면 더 재미있었을 것이다.

이재정 전 의장은 4시15분경 '좀 일찍 왔습니다'라며 편집국으로 들어섰다.


-장기수 북송 발언 때문에 정책위의장이라는 당직을 내놓았는데. 요즘엔 좀 한가하지 않나?

"작년 9월부터 민주당 창당과정에 참여하면서 하루도 못 쉬었는데,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퍽 한가로운 편이다."

- 4월 21일 날 사표를 냈다. 그 날이 예수가 수난을 당했다는 날인데 이 총장도 수난을 당했다. 사표내기 전날인 20일날 문화일보 기자와 만나서 장기수의 북송 가능성을 말했는데, 그 발언은 우연이었나 아니면 일부러 기자를 만났던 것인가.

"예정에 있던 만남은 아니었다. 20일 아침 문화일보 기자가 우연히 들렀고, 정말 사적인 이야기로 편안하게 했던 것이다. 기사를 위한 인터뷰로 말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기자와 편안하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는 심정이었다."

- 그 자리에서의 발언으로 사퇴까지 하게 됐는데, 사퇴이후 발언배경을 충분히 설명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닌가. 그 자리에서 실제 장기수 문제와 관련된 어떤 발언을 했던건가.

"그 발언이후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것은 오마이뉴스 이 열린 인터뷰가 처음이다. 21일 아침에 사표를 내게 된 중요한 이유는 22일이 정상회담 실무자 회의가 처음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심경으로는 내 발언이 1차 회담에 가능한 한 영향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북간의 과제, 진행과정이 준비팀에 의해 성실하게 진행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은가. 밖에서의 이런저런 이야기로 혼선을 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의 장기수 북송 발언이 전적으로 개인의 의견이었지 당과 청와대, 정부와의 사전 교감으로 인한 게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사표를 낸 것이다. 지금도 회담이 진행중이기 때문에 그때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소상하게 밝힐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때가 오면 진위와 의도를 밝힐 때가 올 것이다."

- 그러나 이미 언론에 보도 된 것에 의하면 '미전향 장기수들이라 할 지라도 분위기가 조성되면 고향으로 돌려보낼 수 있겠다' 라는 발언이었다. 그런데 일부 언론은 이 의장이 그 발언을 하면서 북한에 억류중인 남한사람에 대한 언급을 안했다고 하는데.

"내가 한 발언의 전제는 금년이 6.25 50주년이고, 남북간 탈 냉전의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남북정상회담의 진전과 결과에 따라서 북에 억류돼있는 우리 사람들, 남에 있는 장기수들을 호혜적 입장에서 송환할 수 있지 않겠느냐의 의견이었다.

그런데 이 자체를 언론에서 거두절미하고 마치 '우리 당에서 비전향 장기수들을 북한으로 송환한다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과장 확대 포장해서 문제가 야기됐다. 지금도 준비회담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내 발언내용에 대한 것들은 이제 그냥 덮어두어야 한다고 본다."

- 평소에 장기수 문제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져온 것으로 아는데, 성공회대 소속 교수들도 장기수 분들을 많이 돌봐주고 있지 않나? 비록 사견이지만 이 의장의 발언은 그런 배경과도 연관이 있지 않은가.

"내가 한 10년 넘게 통일운동에 관계해 왔다. NCC통일위원장을 지냈고, 현재 문익환 목사 기념사업회인 사단법인 '통일맞이'에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남북 농업발전을 위한 민간단체협의회(약칭 '농발협') 법인체 이사장이다.

또한 성공회대학교 제자 두사람이 장기수들을 돌봐주고 있는 집을 운영하고 있고, 성공회대학교의 신영복 교수가 후원자중 한 사람이다.

나는 이미 이인모씨 북한 송환도 있었고, 장기수 북송이 전혀 새로운 이야기도 아닐 뿐더러 민간단체에서 장기수에 대한 송환문제를 제기해왔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때가 되면 논의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남북정상회담이 50년간의 전쟁 위협으로부터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큰 틀, 즉 평화관계를 정착시키는 데 집중해야 되기 때문에 가급적 첨예한 주제들은 밖에서 논의를 안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좋다고 생각한다."

- 사실 그렇게 첨예한 주제를 현 여권에서 들고 나오기는 힘들 것이라고들 말한다. 어차피 인도적인 차원에서 장기수 문제가 한번 거론돼야 한다면 그 문제를 거론해야 할 사람은 이 총장이 적격이겠다 싶은데, 지금 생각하면 경솔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누군가 지금 한번쯤 했어야 할 발언이었다고 생각하는가.

(약 10초간 말이 없다가)
"그 문제는 당에서 이야기하기 보다 정상회담 준비 실무위원회에 다루어야 할 과제이기 때문에 밖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이야기한 것도 적절한 발언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표도 낸 것이고..."

- 사표를 21일 냈는데. 우리가 알기로는 사표를 최종 결심한 것이 조선일보에서 사설로 문제제기를 한 직후였다는데, 조선일보에서 사설까지 동원해서 문제제기를 안했다면 사표를 안냈을 수도 있지 않나?

"꼭 그렇지는 않다. 아까도 말한 것처럼 내 발언이 적절치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표를 낸 것이지 꼭 조선일보에서 사설을 내고 한나라당에서 비판적으로 나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다음날 준비회담이 열리는데 준비위원도 아닌 사람이 역사적인 회담에 대해 공개적으로 제안하거나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물론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의 반응을 보고 내 발언이 적절치 않았다고 생각한 것은 사실이다.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의 반응에 상당히 경악했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정치인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21일 예수 수난의 예배가 끝난 뒤 바로 사표를 냈다. 서대표님께 직접 연락이 안돼서 비서실장이 정동채 의원에게 내 뜻을 전달했다."

- 사표를 내는 과정에서 청와대나 당 지도부쪽으로부터 '여론이 이러니까 사표를 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전달됐을 법도 한데.

(10여초간 말이 없다가)
"전혀 없었다. 아까도 말한 것처럼 언론의 보도와 한나라당의 반응을 보고 '내 발언이 결코 적절치 못했구나'라는 판단을 했고 그래서 사표를 냈다."

- 사표를 낸 이후에 장기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성공회대 교수들이 뭐라고 했는가.

"성공회 대학교 교수들 생각은 차제에 정치 다 관두고 학교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의견들이었다."

- 울분을 토하지는 않았는가.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 이번 이 의장의 사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제2의 한완상', '제2의 최장집'이라고 평하고 있는데, 그런 비유가 어떤가. 적절한가.

"적절치 않다고 본다."

- 차이가 뭔가. 보수언론의 문제제기에 의해서 자리를 내 놓는, 비슷한 패턴으로 보이는데.

"아까도 말한 것처럼, 언론 때문에 자리를 내 놓은 것이 아니다.
언론의 반응을 보고, '정상회담 준비에 내 의견이 적절치 못했다'고 생각해서 사표를 낸 것이기 때문에 최장집 교수의 경우와 한완상 부총리의 경우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물론 두분이 나와 뜻을 같이하면서 통일운동에 참여한 분들이기 때문에 내면적으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일은 그분들의 사임건하고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본다."

- 사표가 즉각 수리되었는데 DJ에게 섭섭한 점은 없는가.

"내가 재야 출신으로 '정책위의장'이라는 상당히 중요한 직책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물러난 것에 대해서는 나와 뜻을 같이 해왔던 시민사회단체와 재야여러분께 미안한 생각이 든다.

두 번째로 대통령께도 섭섭하기보다 책임을 다하지 못한 송구스러움이 더 크다. 그러나 일단 정치는 당직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미 16대 국회에 진출을 하게 됐으니까 좀더 길게 할 수 있는 역할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아무리 이재정씨가 사견을 말했다하지만 그래도 평소 디제이의 마음을 잘 읽고 있는 사람중의 하나였다, 때문에 청와대나 다른 여권과의 아주 깊숙한 물밑준비, 즉 장기수 문제에 대해 사전논의가 있었을 것이다'는 분석이 있는데 어떤가.

"전혀 아니다. 그런 유형의 비슷한 논의 조차도 없었다. 단호히 말할 수 있다."

- 보통사람들이 한달 사업계획을 세우면서도 이런저런 검토를 하게 되는데, 정상회담이라는 대사를 준비하는 여권의 입장에서 장기수 문제를 검토하지 않았다는 게 이해가 선뜻 가지 않는데.

"전혀 모르겠다. 당이 준비하는 것이 아니니까. 알다시피 당은 그간 선거에 집중해 왔다. 논의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 당으로서도 정상회담 발표를 보고 참 놀랬다."

- 현재 입장에서도 장기수 발언을 처음으로 보도해서 오늘의 사태에 이르게 한 문화일보 기자에 대해 섭섭하고 미운 감정이 있는가.

"개인적으로 밉다거나 섭섭한 감정이 없다.

기자는 기자로서 개인의 상상력과 또 뭐랄까…창조력에 의해서 기사작성을 할 자유가 있으니까 그것에 대해서 뭐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하고싶은 말은 특히 민감한 문제를 다룰 때는 '이 자체가 과연 국가와 민족, 미래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인가, 이 자체가 얼마만큼 역사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구제역에 대한 우리나라의 보도와 일본의 보도가 상당히 달랐던 것처럼 말이다. 남북문제는 우리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고 북쪽과 외국에도 영향을 준다. 그래서 남북문제는 정말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덧붙이는 글 | 약력

44년 충북 진천 출생
69년 고려대학교 독문과 졸업
72년 성공회 사제서품 받음
84년 캐나다 매니토바대학교 대학원 종교학 석사
88년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대학원 신학 박사
94년 성공회대 총장
99년 새천년민주당 정책위 의장

한국기독교회협의회 통일과 선교위원회 위원장
통일맞이 늦봄 문익환 목사 기념사업회 이사장
제4기 감사원 부정방지대책위원회 위원장
민주개혁국민연합 공동대표
종교단체 남북교류협력협의회 공동대표 의장
국민정치연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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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남자. 산소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공희정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기자단 단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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