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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미시령의 내리막길에서 보는 속초는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그 절경을 보던 순간 이후로 우리에게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사고의 아수라장 속에서 현경이의 이름을 계속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현경아. 여기는 봄이다. 그곳은 어떠한지... 네가 그토록 기다리던 새내기들도 많다... 그래서 더 네 빈자리가 커 보이는구나."

"우리는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지금 현경이가 어디에 있는지, 왜 그 아이가 그렇게 멀리 가버렸는지, 살아남은 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나 확신한 것은, 유달리 작은 이목구비에 반짝이는 눈을 하고 웃을 때마다 입술이 얇아지던 현경이가 다시 한 번만 "선배, 밥 사줘요" 하면서 달려왔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네가 생각날 때 부르는 내 노래다. 힘들었던 날들을 함께 해 줄 수 없었던 때, 우리는 서로를 생각하며 버텼을지도 모르겠다. '청한 하늘 위로 날아가는 새'처럼 그렇게 날아가거라. 나도 잘 지낼게."

"엄마는 우리 현경이가 꼭 아씨가 되었을 것 같애. 비록 육신을 떠났지만 혼이 있다면 항상 엄마 곁에 머물러, 엄마가 바른 삶, 네가 갈망했던 진실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채찍질 해 주렴."

이 글들은 모두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현경'이라는 이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산 자들의 노래다.

스물 살의 꽃다운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대학생의 추모문집이 나왔다. 동국대 동국문학회가 펴낸 '저 길을 돌아서면 - 서현경 지음'이 그 책이다.

지난 2월 17일 동국대 새내기 새로배움터 문예공연단 일원으로 버스를 타고 강원도 고성군 미시령을 넘다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故 서현경씨가 추모문집의 애절한 주인공.

현경씨는 동국대 사회과학부 99학번으로 동국문학회라는 문예동아리에서 생활을 했다. 현경씨는 지난 2월 17일 새로배움터에 새내기를 위한 문예공연단으로 참가하다 미시령 고개에서 버스전복사고로 꽃다운 나이에 청춘을 피워 보지 못하고 절명했다. 이날 사고로 동료학생 6명이 함께 사망했고 36명의 중·경상자가 발생했다. 중상자들은 현재까지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지난 2일은 현경씨의 평소 현경씨의 어머님이 다니는 한 절에서 가족들과 선후배, 친구들이 참석한 가운데 사십구제가 있었다. 모교에도 미시령 사고로 사망한 7명의 희생자들을 위한 사십구제 추모의식이 있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유가족, 동료학생, 선후배, 학교 관계자들은 모두 숙연한 마음으로 이들 사망자들의 안식을 기원했다.

이날 사십구제에 맞춰 동국문학회 학생들은 현경씨가 생전에 쓴 글들과 가족, 친구, 선후배들의 추모글을 모은 '저 길을 돌아서면'이라는 추모문집을 발간했다. 추모문집을 발간한 동국문학회 회장 송영호씨는 현경씨에 대해 이같이 말한다.

"현경이는 여는 후배들과 달리 바른 일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후배 같지 않은 후배였습니다. 선배들의 가슴을 선득하게 만들 줄 아는 후배였습니다."

송씨는 추모문집 머리에 "현경이와 함께 지냈던 지난 1년. 너무나 소중한 기억이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현경이를 잊기 위함이 아니라 기억하기 위한, 떠나보내기 위함이 아니라 간직하기 위한 문집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현경이의 영전에 바칩니다."라고 썼다.

추모문집은 △추모시 △현경씨가 쓴 시글, 산문, 편지글, 일기, 문학회 유리거울 등에 남긴 글과 △가족들의 글 △친구들·문학회 추모글 △현경이의 문학회 1년 나기 △현경이에게 보내졌던 e-mail △닫는시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현경씨가 쓴 시, 산문, 일기 등에는 현경씨의 대학생활의 면모가 소박하게 잘 담겨 있다. 선배와 동료들을 북돋워주고, 실직한 아버지가 다시 일자리를 구해 책을 사다줬을 때 기쁨 등 일상사와 고민 끝에 범민족대회에도 참가하는 새내기의 일상, 동유럽 나치주의 부활에 대한 사회과학도의 인식 등이 가감없이 나타난다.

추모문집을 받아든 현경씨의 아버님 서동식씨는 "가족들은 가슴이 아프지만 현경이의 웃음들을 기억하고 또한 되새기며 상처를 딛고 일어서려 한다"며 "현경이의 사십구제에 추모문집을 펴내게 되어 사랑하는 현경이를 마음 속에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현경씨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녀의 어머님은 추모문집에서 '현경이의 꿈은 기자'였다고 말한다.

"현경이의 꿈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해서 기자가 되어 세계를 누비며 지구촌의 생생한 뉴스를 우리들에게 전하고 싶어했었다."

현경씨가 동국문학회의 '종이거울'에 올린 글중 한 문장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종이거울에 참 많은 글이 있다. 그 많은 글들 중에서 나는 익균이형이 써 놓은 시가 참, 좋다. 시집을 잘 읽지 않은 내가 그래도 시를 읽을 수 있는 건 종이거울을 보면서이다. 방금 그 친구가 와서 아리랑(노래패)에 다녀왔다. 친구가 만들었다는 그 노래의 가사... 내 시였다. '하루살이'. 황당하면서도 기분은 나쁘지는 않았다. 그 황당한 놈은 문학회에 뿌리라며 무려 두 장이나 복사해서 나에게 주었다. 친구는 혹시 이 노래가 희망의 노래 같은 곳에 쓰여질 수 있다면서 나에게 고마워했다. 그걸 믿지는 않았지만 나는 친구가 처음으로 고마웠다."

끝으로 현경씨가 쓴 글 가운데 추모문집의 제목이 되고만 시 '저 길을 돌아서면'의 전문을 소개한다.


저 길을 돌아서면

오래된 성곽처럼
무너진 생활 앞에
폐허를 감싸 도는 바람에
묻어나간 희망 한자락
그래도
저 길만 돌아서면

수분이 부족한 땅 위에서
참, 오래도 견뎌 왔지만
돌아서는 저 길에
펼쳐질 바다가 그리운 것은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한 誘惑

가도 가도
바다는
길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나는 그만
주저앉고 싶다.

바다로 가는 길이
갈증을 재촉하란 것을
알면서도
길을 돌아설 때마다
어느새 바다를 쫓고 있는
나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저 길을 돌아서면

덧붙이는 글 | 고 서현경 - 1980년 4월 19일 경북 청도 출생.
              1999년 2월      풍문여고 졸업.
                     3월      동국대 사회과학부 입학.
                              소모임 '새로운 사회연구회' 
                              동국문학회 입회.
                     7월      여름농촌봉사활동 참가.
               2000년 2월 17일 새터 문예공연단으로 참가중 
                               미시령 버스전복사고로 사망.
   

* 살아오면서 이같이 애절한 추모문집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바다를 앞둔 미시령 고개에서 져버린 서현경양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추모문집이 필요하신 분은 동국문학회(02-2260-3788)로 연락하시길 바랍니다.    

* 안타깝게도 현경씨는 오마이뉴스가 창간되기 5일전에 사고를 당했습니다. 현경씨가 이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분명 오마이뉴스 기자로 우리들과 함께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가 남긴 글들을 오마이뉴스에 올릴 수는 없을까요. 고인의 생전 꿈을 오마이뉴스가 실현해 줄 수는 없을까요? 그녀에게 뉴스게릴라들의 연대 오마이뉴스 명예기자직을 부여하는 것을 오마이뉴스 독자들과 기자회원, 오마이뉴스 운영진에게 건의해 봅니다. 그녀가 살아생전 쓴 글들에는 대학 새내기의 일상과 고민, 신념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분명  많은 대학생들에게 좋은 감동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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