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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이후 처음 열리는 남북정상회담.
회담 성사 발표후 대성동 자유의 마을에 사는 김근수 씨(73)는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가보지 못하고 친지들과 헤어져 살며 고향에 갈 수 있는 그날만을 기다려온 세월이 끝이기를 기원하며 눈시울을 젹셨다.

김씨는 고향인 기정동이 육안으로도 보이는 대성동에서 살면서 접적지역이라는 이유로 여러 차례 어려움도 겪었다. 지난 97년 10월에는 군사분계선 부근에서 도토리를 줍던 부인 홍승순씨(70)와 막내아들 용복씨(40)가 북한군에 끌려가 5일 동안 고초를 겪었던 가족들의 고통을 회상하며 친지와 친구들을 만날 희망에 부풀어 있다.

김씨는 "50년 동안 휴전선인 철책이 걷혀 바로 앞에 있는 북쪽의 기정동 마을 친지와 친구를 만날 날을 학수고대하며 살아왔다. 이번 회담으로 가로막혀 있는 철조망이 걷혀졌으면 좋겠다"는 강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같은 희망섞인 기대는 김씨뿐이 아니다. 분단의 설움과 아픔을 가슴에 묻고 반세기를 살아온 대성동 자유의 마을 52가구 주민 대부분이 통일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이제는 남북회담을 통해 현실로 다가오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다.

남북회담 발표가 있은 직후인 11일 이곳 주민들은 색다른 아침을 맞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남한을 비방하던 대남방송이 귓가를 시끄럽게 했는데 정상회담 성사 발표후인 이날은 대남방송이 자취를 감추고 마을앞 3백m에 위치한 철옹성같은 군사분계선이 이날따라 옆집 담만큼이나 낮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들에게 정상회담 소식은 국민들이 거는 기대보다 몇배 더 증폭돼 있다. 주민들은 못자리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화두는 남북정상회담에 관한 이야기로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모판을 나르던 김남석 씨(44)는 "회담소식을 듣고 나니 10년 묵은 체증이 확 풀린 기분"이라며 "정상회담이 잘 진행돼 올 가을에는 북한 기정동마을에 대성동마을 주민들이 일찍 추수를 끝내고 추수를 도와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모판에서 잠시 손을 놓았다.

그리곤 바로 앞에 위치한 북한의 기정동마을을 바라봤다.
이곳 주민들은 농사일을 하면서도 북한 군인과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북한과 가까이에 있다.

같은 형제, 친지들이면서 평생을 떨어져 살아야 하는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고 이제는 가슴 한켠에 묻어둔 한을 풀어 헤칠 수 있는 그날이 회담이 끝남과 함께 전해지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사진설명 

자유의 마을 대성동 주민들이 농사철을 맞아 못자리를 위해 차에서 모판을 내리고 있는 모습. 사진 뒤편으로 북한의 선전마을이라고 알려진 기정동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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