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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편집국 사진기자였던 오동명 기자(42)가 한국언론을 발가벗긴 책 <당신 기자 맞아?>(도서출판 새움)를 이번주에 출간한다. 이 책은 한마디로 오동명 기자가 작심하고 한국언론을 발가벗긴 책이다.

지금까지 언론 비판 관련 서적들의 대부분이 원론적인 내용이었다면, 이 책은 중앙일간지에 근무했던 한 기자가 자신이 실제로 겪었던 사실을 근거로 한 책이다.

아래의 여섯가지 사례는 오동명 기자의 책에 나온 여러 가지 사례 중 일부분이다. 이 사례들은 현재 언론사회에 팽배해 있는 문제의 극히 일부분이라는 것이 오동명 기자의 주장이다. 오 기자는 이 책을 통해 "이러한 작은 노력들이 모여 언론사회의 자기 정화하기를 바란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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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하나

내 개인적으로도 1992년 사진 기자로 국회 출입을 할 당시, "용돈 떨어졌지?"하며 안주머니에서 세어보지도 않고 사진 기자가 보고 있는 앞에서 정치부 기자에게 수표를 건네는 정치인(당시 내가 자주 목격한 그런 정치인은 한나라당 (당시 민자당) 강삼재 의원이었다)과 아무 거리낌없이 이런 돈을 받는 기자들, 더 심한 경우는 한 의원에게 "사진 기자에게 차비 줘야지"하며 알뜰한 배려(?)까지 일삼으며 의원의 주머니를 터는 기자들도 정말 많이 보았다. [언론인들의 정계진출은 법으로 막아야 한다 中 (187P)]


사례 둘

1999년 동계 체전이 열리고있는 용평 스키장의 기자실이었다.
"담배 안 사다 놨어?" 한 신문사의 체육부 기자가 신경질적으로 대한 체육회에서 나온 여직원에게 묻는다. "아까 두 보루 사다 놨는데…"하며 바로 제 책상을 뒤지고 있었다.

그리고"곧 사다 드릴게요."하며 문 밖으로 나갔다. 기자에게 줄 담배를 사러 나간단다. 내가 "기자들이 담배 값 미리 내 놓았습니까?"하자 오히려 그 여직원은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냐는 듯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사진기자님실에도 갖다 드릴께요."한다.

"담배도 사다 줍니까?"하고 묻는데 대꾸도 않고 돌아서려는 그녀를 다시 붙들었더니, 귀찮다는 듯이 "사다 줄께 기다리세요."한다. "그런 게 아니고, 늘 이렇게 합니까? 기자들한테 담배 사다 주는 일 말입니다."
관심이 다른데 있어 보였는지 그제서야, "이렇게 하는 게 제가 더 편해요. 뭐 담배뿐인가요."

그 이후 이 기자실 여직원의 행동에 눈이 자주가게 되었다. 그는 상냥하고도 눈치 빠르게 기자들에게 기록 자료를 하나하나 넘겨주고, 그러면서도 담배같은 과외의 일에도 짜증내는 기색은 전혀 보이질 않고 당연히 자기 일을 하는 양 열심이었다.

안타까웠다. 능력있는 여직원인 듯 싶은데 그렇기도 하고, 아무 거리낌없이 맡겨 놓은 담배를 달라고 하는 듯한 그런 몇몇 기자들의 몰염치한 행태를 보니 그런 느낌이 더욱 들었다. [29. 우선 일선기자가 바뀌어야 하고, 그것마저 기대하기 어려운 여건에서는…中 (309P~310P)]



사례 셋

오래 전이지만, 평소 존경하는 선배로부터, "지난 주말에 후배들 데리고 군부대 갔다 왔었지. 우리 부서 야유회 한 번 끝내주게 했다. 그 많은 군인들로부터 사열도 받고, 사병들 시켜 멧돼지 잡아오게 해서... 정말 끝내 줬어!"

"군인들 동원을 해 줍디까?"
"안 하면 어쩔 거야. 기자, 이 맛에 하는 거 아니겠어?"

그 선배는 국방부 출입을 오래해서 장성급 고위층을 잘 알고 있는, 군 관련 전문 기자였다. '출입처 있는 기자들은 정말 끝 발 좋은가 보구나'하며 솔직히 부러움도 가슴 한 구석에 있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은 황당했다. 취재원과 친해지다 보면 술도 얻어 마실 수 있긴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닌 군부대에까지 가서 군인들을 동원하여 그럴 수 있을까, 기자가?

기자 생활 1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장성급 군인들이 지시하니까 가능한 일 아닌가. 장교나 장성들이 기자한테 잘 보일 일이 있다 손치더라도 장병들을 사적으로 이렇게 부려도 되는 건가? 끌려나온 장병들은 그 기자들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기자, 이보다 더 좋은 직업은 없을 거라고? 정말이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사건, 정말 사건이지 않은가. 더욱이 평소 존경하던 선배가 그러니 다른 기자들은 오죽하겠는가 하고 넘겨짚어 생각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래, 나는 어떠했나? 이런 말할 자격이 있나? 92년도 국회 출입을 했을 때, 당시 여당인 민자당으로부터 여름 휴가비로 20만원을 받은 것이 께름칙하게 문득 떠오른다. 사진부의 국회 출입 3진으로 막내였던 나는 당시 1진으로부터 돈을 받았다.

"이 돈 받아도 돼요?"했을 뿐, 나는 '내가 이 돈을 왜 받느냐'고 하지도 못했었다. 그땐 국회 출입의 말단인 내가 선배들 하는 데로 하면 된다고 하며 슬쩍 그 돈을 내 주머니에 집어넣지 않았던가. 단 그 돈을 며칠 쓰지 못하고 내 락카에 넣어 놔두었다는 기억과 휴가비의 총액을 계산해봤던 기억이 난다. '3억이 훨씬 넘겠구나' 라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놈들 돈은 먹어도 돼!' 하며 스스로 위안 삼았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러니 나도 할 말은 없다. '기자, 정말 끝내주는 직업이다. 아마 이보다 더 좋은 직업은 우리나라에 없을 거다'라고 생각한 적도 정말 자주 있었다. 촌지 뿐 만 아니라 사회에서의 대접까지도.

"'내가 이제 철이 들어서 이제 서야 이실직고합니다'하면 '의리 없는 놈, 이제 와서 자기만 깨끗한 척해?'라는 욕을 먹겠지. 쉽지 않았다. 다들 하는 소위 관행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그것을 벗어나 보자는 게 정말 쉽지 않았다. 변명밖에 안 되겠지만, 이제라도 오랜 속앓이를 풀어야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5. 기자님 행차시다 中]


사례 넷

92년 대통령 선거 때 일이다. 민자당 김영삼 후보의 첫 유세지로 강원도 태백 탄광촌엘 따라갔다. 정치부, 사진부 기자가 족히 백 명은 넘었다.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각 신문사 사진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간사 (여러 신문사나 방송사가 움직일 때는 이런 간사를 뽑아 놓는다.

취재원과의 창구를 일원화함으로써 취재를 용이하게 할 목적으로. 그러나 이런 의도와는 다르게 간사를 둠으로써 촌지 같은 뒷거래가 종종, 아니 거의 자주 이루어진다.)인 선배가, "사진 기자들의 몫으로 2백만원 받았다. 어떻게 할까?"하고 후배들에게 물어왔다.

돌려주자는 얘기도 선배인 그 간사가 먼저 꺼냈다. 우리가 몇 명인데 고작 2백만원이냐며. 우리는 당연히 그러자고 했다. 일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왔다. 누가 어떻게 알았는지 그 2백만원은 민자당으로 되돌아간 게 아니고 그 간사와 다른 두 명의 선배(간사와 비슷한 차장급) 셋이서 나눠 가졌다는 것이다. 이 추잡스런 사건이 기자협회보에 실렸다.

문제가 된 후 다시 돌려줬는지는 나도 모른다. 이 후, 그들 세 명 모두는 각 신문사 사진부장까지 해 먹고, 그 중 한 사람은 판매국으로 옮겨 현재 이사보까지 승진해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게 우리 언론의 진면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부가 이럴 정도이니 다른 굵직한 편집국 내의 부서들은 더 어떻겠는가. 너무 추잡하고 창피한 일이다.

그러나 기가 막힌 일은 또 있다. 이런 사실을 기자협회보를 보고 안 정치부 기자 한 명이 그랬다.
"너희들 왜 그러냐? 나 혼자서도 받는 그런 정도의 돈을 가지고."
이건 더 웃기지 않는가. 난 사실 그 소릴 듣고 웃지도 못했다, 말문이 막힐 뿐이었지.[5. 기자님이 행차시다 中]


사례 다섯

얼마전 백령도 앞 바다로 북한 해군 잠수정과 전투함이 북방 한계선을 넘어와 접전이 벌어진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그곳에 기자들이 달려갔다. 전시 상황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새벽이었다고 한다. 다방 여주인과 동네 청년들이 기자 잡아죽인다며 여관을 뒤집고 다녔다. 그 전날 노래방에서 기자들끼리 놀다가 한 기자(기자 6~7년 차인 회사 후배이다)가 다방에서 여자를 불렀단다. 전시 상황인 그곳에서 여자를 불러 양주를 마셨단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화대마저 떼먹었단다. 그래서 동네 청년들이 기자 죽여버리겠다며 떠들썩하게 해서 전쟁터가 그렇게 다시 한번 시끄러웠단다. 그후 바로 화대는 주었다고 했다. 그 여자들이 없어져서 돈을 못 줬다는 변명과 함께. 이 사실이 타사 정보보고에까지 올라와 알려지자, 사진부 회의 중에 이 문제가 거론되었다. 부장은 아무 말이 없었다.

평소 사사로운 일에도 인간이 어떻다느니, 그렇게는 살지 말라느니 하는 말을 서슴없이 해대던 부장이 아무 말이 없었다. 오히려 지리를 잘 안다는 이유로 그 친구를 그곳에 다시 출장을 보냈다. 작은 수의 몇몇 기자나 부장의 수준이 이 정도라면 그나마 다행이련만, 기자 사회가 그럴까?

극히 일부분의 얘기를 기자 사회 전체인 양 욕 되게 하고 있다고 내게 손가락질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 있게 말하건대, 내가 알고 있는 이 정도의 기자 비리는 정말 일부분도 못 된다. [5. 기자님이 행차시다 中]


조선이 문제가 아니라 조선-중앙-동아가 문제다

오동명 기자의 이 책에는 안티조선의 선봉 강준만 교수가 중앙일보에 글을 기고한 것을 문제 삼았다.


1997년 7월 31일자 중앙일보 6면 오피니언란에는, '언론이 변해야 한다'는 제목의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글이 실렸다. 지역주의 극복에 관한 글이지만 그대로 발췌해서 옮겨본다.

'정치인은 잇속 계산에 매우 밝은 경제적 동물이다. 만약 지역 감정을 부추긴 경우 그로 인한 이익을 초과하는 비용을 감수해야할 정도로 사회로부터 응징을 당한다면 감히 어떤 정치인이 지역 감정을 부추길 생각을 하겠는가. 그런데 우리 사회엔 일체의 응징이 없다.

(중략)지역 감정을 부추기는 정치인 응징은 누가 해야 하는가. 우선적으로 언론이다. 그러나 언론은 원초적인 지역주의의 포로이다. (중략) 언론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런 강 교수의 충고로 우리 언론이 변할 마음으로 과거 반성이라도 한 번 했으면 좋으련만, 강 교수가 중앙일보에 이용당했다는 안타까움이 든다. 이런 외부인의 글 하나 게재하고 지역주의에 관한 한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할 테니까 말이다.

조선일보가 써먹고 있는 야비한 수법을 여기저기 답습해 1등 신문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걸 알았어야 했다. 중앙일보는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 구속 이후 지역주의에 더욱 빠져 있는 듯하다. [29. 우선 일선기자가 바뀌어야 하고, 그것마저 기대하기 어려운 여건에서는…中 (315P)]


오동명 기자는 "문제는 조선일보만이 아니며 조선-중앙-동아가 모두 문제"라고 했다.

오동명 기자는 1999년 10월 4일 중앙일보를 퇴사하고, 지금은 한국정치인포메이션뱅크(www.pibkorea.co.kr)에서 '포토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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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남자. 산소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공희정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기자단 단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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