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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만발했다.
일본 땅도 아니고 한국 땅도 아닌 여기 미국에.
투명한 봄 하늘 아래 눈부신 벚꽃.

요 아래 동네에선 벚꽃 페스티발이 한창인데 나는 왜 벚꽃 속에서 슬픔을 보아야 하는가.
그건 여기 아틀란타 골목마다 벚꽃이 만개하기 전에 내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 복도에서 먼저 그 벚꽃들이 활짝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건 역시 내 딸 때문이다.

그 아이가
"엄마 생각에는 내가 몇 학년쯤에 한국에 대해서 배울 것 같아?"
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글쎄, 엄마는 여기서 초등학교를 안 다녀서 잘 모르겠네."
하고 얼버무리고 말았기 때문에.

내 딸이 그렇게 묻지만 않았어도 벚꽃을 보는 일이 그다지 슬프지 않았을 것을.

북극과 열대 지방에 대한 1학년 사회 공부(social study)에 이어 2학년 때 배우는 사회 과목의 첫 번째가 "일본"이었다.
지난겨울 내내 하얗고 까맣고 그리고 노란 아이들이 모두 하얀 바탕에 빨간 동그라미, 일본 국기를 그렸다.
틀릴까봐 조마조마 연필심에 힘을 주어가며 山을 그리고 川을 그리고 木을 그렸다.
일본 글자라고.
스시와 가라데를 배우고 젓가락을 실습하고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를 말했다.

태평양위에 일본 지도를 수도 없이 그리며 중국과 러시아가 주변국가라는 것을 외웠다.
그렇지만 그 주변 국가 중에 한국이 있다는 것은 내 딸을 포함한 한국학생들 밖에는 몰랐으리라.

그렇게 그렇게 한 학기 내내 일본을 배우더니 일본 공부가 끝나는 마지막 날,
기모노 차림의 옷을 학교로 가져오게 해 모두 그 옷을 입고 복도를 행진했다.
그리고는 2학년 복도 학습 내용 게시판엔 일제히 벚나무가 심겨있었다.
아이들이 겨우내 그리고 그렸던 벚나무들이 거기서 꽃은 피웠다.

내 딸이 공부하는 반에는 한국 아이가 네 명이고 일본 아이가 한 명인데 학교에서 내 딸은 일본을 배우며 동양문화에 프라우드(proud)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스시를 배우며 "우리도 김밥을 먹어요"라고 말했고
절임 반찬을 배우며 "우리는 김치를 먹어요" 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바로 어제 내 딸이 물었다.
"엄마 생각에는 내가 몇 학년쯤에 한국에 대해서 배울 것 같아?"

민망해 얼른 밖으로 눈을 돌렸는데 거기 만발한 벚꽃 속에 슬픔이 살고 있었다.

"네가 중학교에 가도 한국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는단다."
마음속에서만 그 말이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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