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와 양상추를 경쟁시킨 <데일리 스타>
데일리 스타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사임한 지난 20일, 영국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언론은 총리만큼 양상추에 관심을 보였다. 영국의 <가디언>은 C. 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을 연상시키는 "리즈 트러스, 양상추, 그리고 독서대"라는 제목으로 총리의 재임 44일을 훑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양상추가 리즈 트러스보다 오래 살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양상추가 개인의 재정 상태를 위해 기도한다," <폴리티코>는 "양상추에 패하다: 리즈 트러스의 영광의 44일," <워싱턴포스트>는 "리즈 트러스의 영국 총리 임기가 양상추보다 짧았다"고 제목을 달았다.
왜 하필 양상추일까? 리즈 트러스 총리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연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를 정치적 이상형으로 삼는다고 밝힌 바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여기에 착안해 대처 전 총리의 별명 '철의 여인'(Iron Lady)과 비슷하게 트러스 총리를 '빙산의 여인'(Iceberg Lady)으로 불렀다. 그리고 빙산을 의미하는 아이스버그(Iceberg)는 양상추의 일종인 아이스버그 양상추(Iceberg lettuce)로 옮겨갔다. 트러스 총리가 '빙산의 여인'에서 '양상추의 여인'으로 격하된 셈이다.
리즈 트러스 총리- 쿼지 콰텡 재무장관의 '작은 예산안'으로 영국 파운드화 가치가 곤두박질한 주에 <이코노미스트>는 트러스 총리의 총리직을 "양상추의 진열대 인생"에 비유했다. 엘리자베스 2세 국장 기간을 빼면 총리직 수행은 고작 7일, 양상추가 진열대에 있는 짧은 기간에 영국 경제를 위기로 몰고 갔다는 비판이었다. 그리고 영국 정치 역사상 가장 수명이 짧은 총리가 될 것이라 독설을 퍼부었다.
트러스 총리를 양상추에 빗댄 주류 언론 풍자에 영감을 받은 <데일리 스타>는 14일 트러스 총리와 양상추를 실제 경쟁에 부쳤다. 양상추가 신선도를 먼저 잃을 것이냐, 총리가 총리직을 먼저 잃을 것이냐다.
슈퍼마켓에서 산 60펜스(약 1000원)짜리 양상추에 눈과 입을 만들어 주고 금발 가발까지 씌웠다. 트러스 총리 사진을 옆에 놓고 둘 사이에는 영국 국기를 놓았다. 힘들 때 먹으라고 어느 날은 바나나와 음료수를 놓았고 또 다른 날은 소시지빵을 앞에 놓고 양쪽을 공정하게 응원했다. 이 모든 과정이 실시간 방송되었다.
트러스 총리 사임으로 경쟁에 이긴 후 양상추는 승리감에 도취해 기쁨의 연설도 했다. 심지어 밤에는 대형 양상추 얼굴이 영국 의회 건물 위에 비치기도 했다. 19세기 정치적 자유가 언론의 팽창과 맞물리며 발달한 정치 풍자 문화의 정수였다.
트러스 대 양상추의 풍자는 영국 민주주의의 선진성과 위기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지난 7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사임 때 출시된 "보리스의 거짓말"(Boris Lie-PA) 맥주보다 훨씬 독하고 심지어 언론사가 주도한 것이지만 문제 될 기미도 없다.
양상추의 승리는 민주주의에서 국가 지도자가 스스로 내세운 공약을 지키지 못할 경우 그 권위가 야채의 신선도 유지 기간보다도 짧다는 것을 증명했다. 반면, 사회적 분노가 담긴 양상추 풍자는 보다 근본적이고 경고성 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소위 정치 엘리트들이 대중을 제대로 대표하고 있는가이다.
무너진 총리의 권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