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21 12:02최종 업데이트 24.06.27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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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의회 건물에서 유럽의회 선거의 잠정적인 첫 번째 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 연합뉴스


대서양 쪽이 선거 정국이다. 불과 한 달여 전만 해도 구체적 일정이 잡힌 선거는 6월 유럽연합(EU) 의회 선거와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였다. 하지만 지난 5월 22일 영국 보수당의 리시 수낵 총리가 노동당에 완패할 위험을 무릅쓰고 7월 4일 총선을 선언했고, 6월 12일에는 EU 의회 선거에서 저조한 지지를 받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6월 30일과 7월 7일 조기 총선을 결정했다.

경쟁하는 공약을 보며 1990년대 중후반의 기억 두 가지가 떠올랐다. 하나는 대학생 시절 수업에서 들었던 "현재 인류의 문명 수준에서 과연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는 말이었다. 당시 해외여행 자유화로 유럽 배낭여행과 어학연수 붐이 일었다. 전 세계 정보를 책상에 앉아 검색할 수 있는 인터넷으로 인해 국경에 기반한 사고는 촌스러웠다. 새로운 흐름에 찬물을 끼얹는듯한 위 발언이 뇌리에 박혔다.


다른 하나는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1992)이다. 외계에서 지구를 바라볼 때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 민족주의라고 포문을 연 홉스봄은 19~20세기 민족주의의 발현과 그것의 비이성적인 힘을 지적했다. 2차대전 이후 민족주의의 쇠퇴가 보이지만 1990년대 소비에트연방이 민족 단위로 해체되는 현상을 상기시키며 여운을 남겼다. 당시 대세였던 탈민족주의와는 결이 다른 결론이었기에 찝찝함을 느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과 탈민족주의가 다시 뒤집히고 있다. 존재했지만 그간 변방에 머물렀던 이 주장은 현재 정치 무대의 중심에 진출해 있다.

[유럽연합] 극우가 약진한 유럽의회 선거
 

지난 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극우 국민전선(RN) 마린 르펜 대표가 유럽의회 선거를 위한 유세 도중 지지자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세계화에 대한 반동은 6월 초 EU 의회 선거에서 명확히 보였다. EU는 1990년대 자유로운 노동 이동의 상징이다. 그 결과 EU 공식 통계에 따르면 각국 거주자 중 외국 출생 인구가 독일의 경우 1605만 명, 프랑스는 890만 명, 스페인은 820만 명에 달한다. 2022년의 경우 EU 바깥에서 EU 안으로의 유입은 510만 명이지만 그 반대는 약 100만 명으로 유입이 5배 많다. 자유로운 이동에 대한 반발은 반이민을 내세운 극우의 약진으로 나타났다.

가장 충격적인 결과를 보인 곳은 프랑스로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정당 국민전선(RN)이 가장 높은 31%의 지지를 얻었다. 이들은 자국인 우선을 외치며 각종 정부 복지와 임대 주택 정책에서 외국인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거에 참패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선언했다.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도 극우에 밀렸다. 그가 속한 중도좌파 사회민주당(SPD)이 얻은 지지는 13.94%에 불과했다. 15.89% 지지를 얻은 극우 독일대안당(AfD)에 밀리는 수치다. 다만, 중도우파로 분류되는 기독민주연합(CDU)이 30.2%의 지지를 얻어 극우의 약진이 프랑스만큼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이탈리아는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극우 이탈리아형제들(FdI)이 28.8%로 최대 지지를 받았다. 중도좌파 민주당(PD)의 24%와 큰 차이는 없지만 5년 전 선거보다 4배 폭등한 지지율이다.

EU 탈퇴 대신 반이주민, 반우크라이나원조, 반기후변화를 주장하는 이들이 EU 무대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분명치 않다. 국내 정치에서 민족주의적 입장을 견지했지만 EU는 구성 자체가 탈민족주의적이다. 이번 선거에서 극우의 약진이 두드러졌지만 여전히 EU 의회는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가 주류다.

[영국] 7월 4일 조기 총선
 

지난 13일(현지시간) 영국 맨체스터에서 제1야당인 노동당의 키어 스타머 대표가 총선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때 유행했던 대륙 극우의 EU 탈퇴론을 잠재운 결정타는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다. 브렉시트는 보수당에 시장이란 과제를 주었고 노동당에는 애국주의란 과제를 던졌다.

영국의 보수는 역사적으로 전통과 공동체를 중시하는 복고적 사회상과 개인과 시장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사회상을 가지고 있다. 마거릿 대처 총리 이후 신자유주의 기조를 유지했으나 브렉시트는 그에 대한 사회적 회의감의 표시였다. 보리스 존슨 총리가 중심축을 자국 정체성 중시로 옮기는가 싶더니 '파티 게이트'로 물러났다. 이후 시장주의자 리즈 트러스 총리는 다시 신자유주의를 극단으로 밀어붙이려 하다 혹독한 비판 속에 한 달여 만에 사임했다.

현 리시 수낵 총리는 온건 시장주의자로 무난하지만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불법 이주자를 제3국으로 보내는 르완다 계획은 유럽인권재판소(ECHR)와 영국 대법원이 불법으로 판결했다. 이후, 논란이 되었던 부분을 수정해 통과시켰으나 실행을 총선 이후로 미룬 상태다. 청소년 흡연 금지나 영국 청년의 군복무 의무화안은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비자 발급 수에 제한을 두겠다고 발표했다.

반면, 브렉시트가 노동당에 던진 숙제는 애국주의다. 전통적으로 노동자 계층을 대표하는 노동당은 국가보다는 계층, 사회 불평등에 초점을 맞추고 사고한다. 몇 년간의 내부 논쟁 끝에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애국주의를 수용했다.

지난주 발표한 노동당의 총선 공약을 보면 애국주의 색채가 배어 있다. 보수당의 르완다 계획을 철폐하겠다면서 대신 국경 수비대를 강화하고 불법이주 알선 범죄 집단을 막겠다고 했다. 영국 노동자 직업 훈련 과정을 필수로 함으로써 섣부른 해외 고용을 막아 이주민 수를 감소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기후변화 대처에 있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에너지 공기업(Great British Energy)을 세우는 안도 제시했다.  

노동당이 20% 앞선 상황에서 지난 3일 나이절 패라지 영국개혁당 대표가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보수당의 EU 회의론 측과 같이 브렉시트를 이끈 인물이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 후 영국 정치인 가운데 처음으로 만날 만큼 정치적 교감이 있다. 패라지는 유입 인구와 유출 인구의 차이를 0으로 만들겠다며 이민자 논의 축을 한 번 더 오른쪽으로 당겼다.

패라지의 재등장은 파급력이 있었다. 지난 13일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의 조사에 따르면, 영국개혁당의 지지도(19%)가 보수당(18%)을 1%포인트 앞섰다. 노동당은 37%로 멀찌감치 앞서있고 보수당을 앞선 영국개혁당의 지지도는 오차범위 내라 오래된 양당 구조에 변화를 주지는 않겠지만 노동의 이동 제한 논의를 어느 선까지 움직일지는 미지수다.

[미국] 11월 대선 앞두고 쟁점이 된 불법 이민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둘주라 인근에서 국경순찰대원들이 망명을 원하는 이민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5월 30일 미국 공화당의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6년 대선 당시 성추문을 덮기 위해 돈을 지급한 '성추문 입막음' 형사 재판에서 유죄 평결을 받았다.

이 일로 공화당이 어수선한 사이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일 난민 신청 권한을 제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백악관에 따르면 국경을 불법으로 넘을 경우 난민 신청 권한을 박탈하고 수일 내 추방할 수 있게 된다. 미국 땅을 밟은 모두에게 난민 신청 권한을 준다는 미국의 오랜 원칙이 뒤집힌 것이다.  

이 행정명령은 지난해의 이민정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작년 바이든 행정부는 국내 반이민 목소리와 국제적 대의 수호 사이에서 절충책으로 온라인 망명 신청제도를 도입했다. 미국 정부가 제공하는 앱으로 신청한 후 인터뷰 날짜를 통고받으면 국경 지대로 와서 심사를 받는 제도다. 신청은 미국-멕시코 국경에서 할 수 없다. 온라인 신청 없이 국경에 나타날 경우 불법 입국 시도로 간주해 5년간 미국 재입국이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이주자 수 최대치도 분명히 했다. 앱을 통한 망명 신청은 하루 1000명으로 제한하고 2023년의 경우 미국이 받을 수 있는 최대 망명자를 2만 명으로 제한했다.

트럼프와의 차별점이 사라진다는 지적에 대해 바이든은 "이주자들을 악마화하지 않겠다"며 "아이들을 가족들로부터 떨어지게 하지 않을 것이고 특정 종교적 믿음을 가진 이들을 막지 않는다"고 했다. "이민자가 미국의 피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발언이나 아동에 대한 무관용, 이슬람교도 이주 금지를 언급한 트럼프와 거리를 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영구적인 것은 아니라며 난민 숫자가 줄었다고 판단될 경우 재개 가능성을 시사했다.

반면 '1500만-2000만 명'의 불법 이주자들을 강제 추방할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트럼프는 지난 4월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웻백 작전'을 언급하기도 했다. '웻백 작전'은 1954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행정부 시절 불법적으로 입국한 멕시코인을 체포해 트럭에 실어 추방한 대규모 이민 단속 작전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대서양 세계는 선거를 계기로 한 세대를 풍미했던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재검토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각국이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공급했고 문화의 교류를 활성화시켰음에도 말이다. 과연 무엇을 잃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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