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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월)은 부산에 계시는 장모님(84) 생신이었습니다. 노인성 치매로 고생하다 2개월 전에 돌아가신 큰 누님(78) 생각이 나더군요. 두 분 생일이 하루 차여서 작년 생일까지만 해도 양쪽을 바쁘게 오갔거든요.   

두 분이 10년 넘게 부산에 살면서 서로 안부를 묻는 등 친척처럼 지내서 더욱 간절했던 것 같는데요. 심정을 털어놓고 얘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축송을 부르고 장수를 비는 날 돌아가신 분 이야기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더군요. 아무리 아내이지만, 예의에 어긋나기도 하고요.

2일 오후에 갔다가 3일 밤늦게 돌아왔는데요. 올해는 여섯 살 아래인 처남과 함께 다녀와서 또 다른 재미를 느꼈고, 의미도 있었습니다. 처남 직장이 수시로 옮겨 다녀야 하는 공사판이어서 가깝게 살면서도 2년이 넘도록 술자리를 못했거든요.

처남이 대학생일 때 아내를 만났는데요. 저를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대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해서 복잡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저녁을 사 먹으며 "오랜만에 처남하고 소주나 한잔하고 출발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운전 담당인 아내도 좋다고 하더군요.

처남하고 술자리를 하고 싶다는 얘기 속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깔려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보신탕이 생각나기도 했고, 돌아가신 큰 누님 생일이어서 마음이 심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내는 삼계탕을 시켰고, 처남과 저는 수육을 안주로 소주를 두 병이나 마셨는데요. 이상할 정도로 취기가 오르지 않더군요. 그래도 기분이 최고로 업그레이드된 처남의 신나는 얘기는 아내와 저를 즐겁게 했고, 지루한 줄 모르고 부산에 도착해서 편하게 잠들 수 있었습니다.

"여든네 살 생일상이 환갑상 같아요!"  

장모님 생일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오니까, 부산에 사는 처 외숙모도 와계셨는데요. 장모님에게 "평생 몸에 칼 한 번 대지 않고 살아오신 우리 행님, 노후도 기품 있게 즐기면서 사세요!"라고 덕담을 건넸습니다.

올해 여든네 살 되는 장모님 생일 아침상, 갈비에 서대탕, 민어 찜 등이 올랐지만, 호박잎에 된장만 못한 것 같았습니다. 아내와 처제도 호박잎쌈을 들고 있네요.
 올해 여든네 살 되는 장모님 생일 아침상, 갈비에 서대탕, 민어 찜 등이 올랐지만, 호박잎에 된장만 못한 것 같았습니다. 아내와 처제도 호박잎쌈을 들고 있네요.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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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바로 아침상이 차려졌는데요. 각종 나물과 생선찌개, 소갈비까지 성찬이었습니다. 엄지를 쳐들면서 그동안 다니면서 맛본 음식 중에 으뜸이라고 하니까, 처제가 기분이 좋았는지 "형부가 좋아하는 호박잎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요!"라면서 제 앞으로 가져다 놓더군요.

밥을 먹으면서도 장모님에게 건넬 덕담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다가 "야~ 여든네 살에 받는 생일상이 꼭 환갑상 같아요!"라는 말로 대신했는데요. 옆에 있던 아내가 폭소를 터뜨리며 "우리 엄마 회춘하셨네!"라고 했고, 돌아가며 한마디씩 하면서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장모님과 처 외숙모도 맛있다며 한 그릇, 아내도 한 그릇, 처남과 동서도 한 그릇 저는 호박잎과 된장으로 두 공기를 비웠습니다. 평소 아침을 우유와 빵으로 대신한다는 처제가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아무리 더워도 밖으로 나가 줄넘기라도 해야 할 것 같다고 해서 또 한 번 웃었습니다. 

장모님의 넋두리

출장 중에도 하루에 2~3회씩 안부 전화를 해올 정도로 막내 사위 사랑을 받으며 지내는 장모님은 "나는 이르케 잘 먹고 잘 사는디 그 냥반은 지지리 고생만 허다가 먼저 갔다니께···"하시며 진즉 돌아가신 남편(장인)을 생각합니다. 삶이 고단하면 이야기가 그런 식으로 나오지 않지요.  

그런데 가끔 듣는 장모님의 넋두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생일날 아침을 맛있게 먹고 TV 앞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장모님이 "나는 오는 사람도 없고, 갈 디도 없응게, 하루 종일 이르케 앉어서 TV 허고만 살어, 어디서 전화도 안 오니께···"라고 하시더군요. 

생일날 아침에 자리를 함께하지 못한 자식들이 생각났던 모양입니다. 해서 알면서도 "그럼 일요일에 교회에도 안 나가시고 집에만 계시나요?"라고 물었지요. 그러자 정색을 하면서 "아~녀, 교회는 꼭 댕기지···"라고 하시더군요.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모님 넋두리에서 자식들에 대한 서운함이 묻어나는 걸 느낄 수 있는데요. 생일은 물론, 평소에도 저와 아내를 포함한 자식·며느리들과 손자·손녀들이 안부전화를 자주 안 하는 데서 오는 외로움과 소외감을 넋두리로 표출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다 집에서 전화해도 비슷한 말을 하시는데요. 미안하면서도 허물이 없으니까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 같아서 고마운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점심은 중국집에서

별도로 주문한 탕수육. 미각과 시각을 함께 만족시키려고 정성이 들어가서인지 맛도 좋았습니다.
 별도로 주문한 탕수육. 미각과 시각을 함께 만족시키려고 정성이 들어가서인지 맛도 좋았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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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에는 근처 유명하다는 중식당에서 '해물 냉채', '광동식 샥스핀', '매생이 게살 스프', '매운맛 관자', '새송이 소고기 볶음', '중새우 칠리소스', '식사' 순으로 나오는 중국식 정식을 먹었습니다. 생각보다 비싸지 않더군요. 

꼬마들은 탕수육이 빠지니까 서운했는지 찾았고 식사 때는 자장면을 먹었는데요. 수많은 중국 요리 중에 자장면과 탕수육은 한국요리가 되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한국사람 입맛에 익숙해졌다는 뜻이지요.

장수를 기원하며 생일 축송을 부르는 자녀들, 흐뭇한 표정으로 웃으시는 장모님 표정에서 또 다른 고뇌를 느낍니다. 저도 고뇌의 대상에 포함되겠지요.
 장수를 기원하며 생일 축송을 부르는 자녀들, 흐뭇한 표정으로 웃으시는 장모님 표정에서 또 다른 고뇌를 느낍니다. 저도 고뇌의 대상에 포함되겠지요.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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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가 떠 넣어주는 아이스크림을 받아먹으며 활짝 웃는 장모님. 옆에서 바라보는 막내딸(처제)도 무척 행복해보입니다.
 손녀가 떠 넣어주는 아이스크림을 받아먹으며 활짝 웃는 장모님. 옆에서 바라보는 막내딸(처제)도 무척 행복해보입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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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축송도 부르면서 생신기념 케이크를 잘랐는데요. 장모님은 작은 손녀가 할머니 생신을 축하한다며 아이스크림을 스푼으로 떠서 넣어주니까 받아먹으며 흐뭇해했고, 옆에서 구경하는 형제들도 손뼉을 치면서 행복해했습니다.

자식들과 사위들이 축하의 인사를 건네고, 손녀들이 재롱을 피우니까 만족해하며 웃는 얼굴 한편에는 뭔가 아쉬워하는 표정도 엿보였는데요. 왜 그러시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아픈 곳을 건드리는 것 같아서 참았습니다. 즐거운 날 즐겁게 보내는 것도 선물 이상으로 중요하니까요.  

자식 교육열이 대단했던 장모님

자신은 굶어도 자식들은 시래기죽이라도 끓여 먹였고, 농사일에 시달리면서도 시부모와 남편을 뒷바라지해왔던 지난날 여인들이 우리들 어머니의 표상입니다. 장모님도 무척 힘들게 살아오셨다고 하는데요. 제가 보기에도 칠순이 가깝도록 가난과 싸워온 분입니다.

남에게 진 빚을 고민하다 집으로 가는 논둑길을 지나친 적도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듣는 순간 눈시울이 시큰거리더군요. 그렇게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서도 교육열이 높았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고생을 더 했던 것 같습니다.

장모님은 시골의 소작농에서 도시의 식모살이까지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자식들은 모두 대학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큰딸(아내)은 공부도 잘했는데 대학등록금을 제대로 대주지 못해서 항상 미음에 걸린다는 말을 해오셨습니다.  병원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생활비를 조금씩 보내주니까 더욱 미안하게 느껴졌던 모양입니다.

장모님을 뵐 때마다 미안하고 죄송한 생각이 듭니다. 장모님의 희망이었던 큰딸을 데려왔으면 용돈이라도 푼푼하게 드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죄의식은 갖지 않으려고 합니다. 몸과 마음으로라도 대신하면 되니까요. 


태그:#장모 생일, #자녀들 , #큰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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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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